사회
치밀한 보이스 피싱, 검사실까지 차려놓고 여성을 수차례나…
입력 2020-09-23 08:59 

20대 여성 A(25)씨는 지난 7일 오전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 속 남성은 자신을 서울중앙지검 '윤선호 수사관'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이 남성은 A씨 명의의 여러 시중은행 통장이 범죄에 연루됐고, A씨가 대포통장을 양도한 가해자인지 정보를 도용당한 피해자인지 밝히기 위해 검찰 수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남성은 이어 약식조사 녹취를 시작해야 한다며 A씨를 사람이 없는 조용한 공간으로 이동시켰다.

그는 그리고 "담당 검사를 연결해 줄테니 무고한 피해자로 입증받으라"고 했다.
얼마 후 또 다른 남성의 전화가 A씨에게 걸려왔다. 이 남성은 자신을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 성재호 검사'라고 소개했다.
이 남성은 A씨 통장이 '중고나라' 등에서 벌어진 조직 사기에 사용됐고 이 통장에 6400만원의 피해액이 입금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주범과 사기 조직원 28명은 이미 검거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A씨가 스스로 피해자인지를 입증하지 못하면 2주 뒤 법원에 나와 재판을 받게 될수 있다고 덧붙였다.
수사 상황을 남에게 발설하면 '보안이 취약하다'는 이유로 48시간 동안 구속수사를 할 수 있다는 말도 했다.
A씨는 "각종 법 조항을 들먹이며 윽박지르는 전화기 너머의 상대가 진짜 검사라고 믿게 됐다"고 했다.
협박성 전화를 하던 이 남성은 여성인 A씨가 같은 여성 검사에게 조사를 받으면 편할 것이라며 '손정현 검사'라는 이에게 전화를 넘겼다.
이 여성은 A씨가 피해자로 인정받으려면 계좌에서 현금을 찾아 금융감독원에 넘긴 뒤 자산을 합법으로 취득했음을 증명하는 '금융거래명세서'를 발급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화상 공증을 한다며 검사실로 꾸민 장소에서 영상통화를 하기도 했다.
서울중앙지검 소속 검사들의 낙인과 서명이 있는 가짜 공문을 보여주며 실제처럼 믿게 했다.
결국 A씨의 발걸음은 은행을 향했다.
A씨는 이후 9일까지 사흘간 서울시내 은행 10여군데를 돌아다니며 1억4500만원을 인출해 수차례에 걸쳐 '내사 담당 수사관'이라는 남성 등에게 전달했다. 이 돈은 어머니의 유산을 비롯해 A씨가 7년 넘게 모은 청약통장과 적금, 보험 등 전 재산이었다.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강동경찰서는 23일 "보이스피싱 일당 중 1명은 경기남부 모처에서 검거돼 조사를 받았다"며 "CCTV를 토대로 60대 남성으로 추정되는 다른 피의자가 택시에 타는 모습을 포착하고 나머지 조직원들을 추적 중"이라고 밝혔다.
[디지털뉴스국 news@mkinterne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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