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정구용 상장사협의회장 "상법개정안, 투기자본만을 위한 공정입법"
입력 2020-09-22 16:39 

"상법개정안이 통과되면 상장회사들은 돈 벌어서 투자 못하고 경영권 방어하는데 다 써야한다는 걸 정말 국회만 모르고 있는 겁니까"
22일 만난 정구용 한국상장회사협의회 회장은 기업규제 3법에 대한 얘기를 꺼내자마자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했다. 정 회장은 23일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 강호갑 중견기업연합회장, 서병문 중소기업중앙회 수석부회장 등과 함께 여야 대표를 만나 최근 주요 입법안들이 통과되기 전에 경영계의 우려를 전달할 예정이다.
코스피와 코스닥에 상장사 3개를 경영하고 있는 정 회장은 "상법개정안은 대주주·소액주주 모두에게 불공정하고 오로지 투기자본에만 공정한 입법"이라고 강조했다. 정 회장은 "굳이 외국계 펀드가 아니어도 국내에도 경영권을 공격해 시세차익을 노리는 펀드가 많다"며 "지난해 헤지펀드 엘리엇의 현대차 공격을 보면서도 이런 법을 통과시켜준다면 대한민국 국회는 누구 편인거냐"고 꼬집었다.
한편 22일에는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여야 대표와 회동하고 법안 통과에 앞서 막판 설득에 나섰다. 박회장과 만난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와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경제계의 의견을 경청하겠다며 긍정적인 입장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법개정안과 관련 경영계가 가장 큰 우려를 표시하는 것은 상장사들이 투기자본의 위험에 그대로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이다. 상법개정안의 감사위원 분리선출제는 감사를 주주들이 뽑은 이사 중에서 선임하지 않고, 독립적인 인물로 따로 뽑을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이를 위해 감사위원을 선출할 때 대주주는 특수관계인의 지분까지 다 합쳐서 3% 이내로만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제한된다. 3% 이하의 지분을 가진 투기자본, 외국계 펀드 등이 세를 합치면 얼마든지 맘에 맞는 감사를 뽑을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 엘리엇은 현대차 지분 2.9%를 들고, 중국계 대주주 회사의 회장을 사외이사로 추천했다. 상법개정안이 만일 통과된 경우였다면 경영권 위협은 물론이고 기업 정보까지 그대로 새나갈 수 있는 상황에 처해졌던 것이다.

정구용 상장사협회장은 특히 국내 상장사들이 규모가 작아 이같은 경영권 위험은 더욱 크다고 보고 있다. 정 회장은 "우리나라 전체 상장회사중 대기업 비중은 9.5%인 반면, 중견·중소기업이 90.5%"라며 "정부의 상법개정안이 도입되면 재벌 대기업이 아닌 중소·중견기업의 성장에 걸림돌이 된다"고 지적했다. 투기자본의 공격을 받더라도 대기업은 체계적인 경영권 방어 전략을 쓸 수 있지만 중소·중견기업들의 경우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상법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중소·중견기업들이 이익을 내더라도 미래를 위한 투자를 못하고 경영권 방어에 치중하게 만들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정 회장은 "미국의 경우 신생 회사들은 차등의결권, 포이즌 필 등 경영권 방어수단을 갖추고 있지만 우리는 그런 방어권 조차 없다"며 "결국 기업가들이 회사를 상장시켜놓고나면 이익을 내서 그걸로 우호지분 확보하고 자사주 매입하는데 써야하는 안타까운 상황에 처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 회장은 "전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3%룰을 굳이 한국에서만 유지·강화하게 되면 한국 자본시장만 해외 투기자본의 놀이터가 되는 것"이라며 "다중대표소송제도 소송 리스크만 늘려 우리나라 기업들의 경영활동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한예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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