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반려견 호텔·스파 이어 미술 전시까지…`개판` 된 국립현대미술관
입력 2020-09-21 12:58  | 수정 2020-09-21 17:52
국립현대미술관 `모두를 위한 미술관 개를 위한 미술관`

개공장에서 낳자 마자 팔려나가는 새끼들을 보면서 울었던 종견 이탈리안 그레이 하운드 '세상이'가 신나게 전시장을 누비고 다녔다. 그의 동생 세동이도 조형물을 올라타고 영상을 들여다보면서 쾌활하게 짖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이 사상 처음으로 마련한 전시 '모두를 위한 미술관, 개를 위한 미술관' 주인공은 반려견이다. 내로라하는 국내외 작가 18명(팀)의 미술품 25점과 영화 3편으로 전시장과 계단, 마당을 '개판'으로 만들었다.
전시작에 노란색과 파란색이 유난히 많은 이유는 개가 적록색맹이기 때문이다. 빨간색과 녹색을 보지 못하고, 파란색과 노란색만 본다. 김용관 작가는 개들을 위해 노란색 나무, 파란색 식물 등을 제작한 작품 '푸르고 노란'을 펼쳤다. 또한 파란색과 노란색을 교차로 배열한 바둑판 같은 이미지를 2배씩 확대하는 애니메이션 '다가서면 보이는'을 통해 적록색맹인 개에게 녹색을 소개한다.
미술관 마당에 설치된 조각스카웃의 작품 '개의 꿈'에서도 파란색과 노란색 비율이 높다. 개와 인간의 협동 스포츠인 도그 어질리티(dog agility) 경기에 사용되는 오브제들과 추상 조각들이 반려견을 위한 놀이터를 만든다.
국립현대미술관 `모두를 위한 미술관, 개를 위한 미술관`.
건축가 김경재 작품 '가까운 미래, 남의 거실 이용방법'은 개와 인간의 눈높이를 맞춘 회의실과 거실을 펼쳤다. 탁자와 의자 다리를 없애거나 낮췄다. 실제로 개는 고개를 잘 들지 못해 주로 바닥보다 조금 위에 시선이 멈춘다고 한다. 개만 입장할 수 있는 푸른색 나선형 조형물은 주인과 시선을 맞출 수 있도록 준비했다. 덴마크 작가 한느 닐센 & 비르기트 욘센 영상 작품 '보이지 않는 산책'은 안내견 머리와 시각장애인 가슴에 카메라를 달아서 찍은 영상을 2개 화면에서 보여준다.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의 목표인 '모두를 위한 열린 미술관'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했다. 한국 전체 가구의 약 30%가 반려동물과 살고 있는 상황에서 미술관이 지향하는 '모두'의 범위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 실험하는 전시다. 반려동물이 공적 장소에서도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될 수 있는지 질문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예술가에 수의사, 조경가, 건축가, 법학자 등 다양한 전문가들이 참여해 전시를 완성했다.
전시장에서는 코로나19 시대에 전염병으로부터 아이들을 구한 썰매견을 애견 사료로 만든 정연두의 설치 작품 '토고와 발토-인류를 구한 영웅견 군상'이 눈길을 끈다. 토고와 발토는 1925년 알래스카 극한의 추위에 전염병으로부터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밤낮으로 썰매를 끌어 면역 혈청을 옮긴 개들이다. 작가는 인류를 구한 영웅견의 군상을 사료로 만들어 미술관에 온 개들이 공감하길 바란다. 전염병의 위기가 동물로부터 왔다는 점과 동물이 인류를 구한다는 역설적 병치는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아이러니다.
개를 위한 미술관.
반려 로봇 아이보(Aibo)와 미술관을 산책하는 남화연의 'Curious Child', 반려조(앵무새)와 사람이 함께 참여하는 양아치의 '창경원 昌慶苑' 등 퍼포먼스도 예정돼 있다. 달팽이와 비올라 연주자가 비올라 활을 중심으로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순간을 관찰한 안리 살라 감독의 '필요충분조건'(2018), 애견 록시의 눈을 통해 눈먼 인간 세계의 고통과 작별하는 법을 말하는 장뤼크 고다르 감독의 '언어와의 작별'(2014) 등 영화도 상영된다.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연장에 따라 미술관 휴관은 지속되지만 25일 오후 4시 유튜브 채널을 통해 전시를 볼 수 있다. 성용희 학예연구사의 설명, 참여 작가 인터뷰를 비롯해 작가들의 개가 직접 전시장을 방문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전시는 10월 25일까지. 전지현
[전지현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