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엔비디아가 ARM을 인수하기로 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에 중장기적으로 미칠 영향에 대해 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업계에서는 엔비디아가 향후 인공지능(AI), 자율주행 등 비메모리 분야로 사업을 적극 확대하면서 국내 기업들과 미래 시장에서 잠재적 경쟁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한편 삼성전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와의 협력 관계는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소프트뱅크가 보유한 ARM홀딩스를 400억달러(약 47조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거래대금에는 215억달러 규모의 엔비디아 주식과 120억달러의 현금이 포함된다.
업계에서는 그래픽처리장치(GPU) 사업 중심의 엔비디아가 ARM 인수로 AI·자율주행 등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로 사업을 공격적으로 확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엔비디아는 이날 자사의 앞선 AI 컴퓨팅 플랫폼과 ARM의 기술 생태계를 결합해 혁신을 가속화하고 최고의 컴퓨팅 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ARM의 성공 기반이 된 오픈 라이선스 모델을 계속 운영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도현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엔비디아가 ARM 기술력 흡수를 통해 자사 칩 설계 핵심 역량이 강화됐으며 베이스 아키텍처 기술 내재화를 통해 경쟁사 대비 제품 설계가 최적화됐다"며 "무엇보다 120억달러의 현금을 투입해 IT업계에 절대적 영향력 발휘가 가능해졌다"고 평가했다.
ARM은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의 두뇌 역할을 하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비롯한 반도체 설계 기반이 되는 명령어 구조도(ISA)를 반도체 설계 기업에 제공하고 로열티를 받는 기업으로, 모바일 관련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 애플, 구글, 퀄컴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ARM의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엔비디아가 ARM의 기존 오픈 라이선스 사업을 유지한다고 밝힌 만큼 당장 국내 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는 삼성전자가 ARM의 기술을 활용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등을 설계해 생산하고 있다.
다만 엔비디아가 향후 ARM과의 시너지를 통해 AI를 비롯해 자율주행, 사물인터넷(IoT) 등 비메모리 분야에서 사업을 적극 확대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관련 연구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와 미래 사업 분야에서 잠재적 경쟁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 반면 파운드리 사업을 키우고 있는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엔비디아가 사업을 확장할수록 양사의 협력 관계를 더욱 확대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엔비디아에 인수된 후 ARM의 라이선스 정책 변화 여부에 주목해야 한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엔비디아가 기존의 ARM 사업 모델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히긴 했으나 향후 수익성 확보를 위한 비용 인상이나 특정 업체에 기술 개방을 하지 않는 등 배타적으로 운영했을 때의 리스크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유진투자증권은 엔비디아가 이 같은 정책을 펼쳐 나간다면 ARM 생태계가 무너지고 ARM의 잠재적 대안으로 떠오른 오픈소스 RISC-V(리스크 파이브)가 급부상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모바일 분야에서 ARM의 영향력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당장 큰 변화가 나타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전경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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