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세입자 명시적 동의`받아야 내집 팔수있다니…
입력 2020-09-11 16:55 
[사진 = 연합뉴스]

"1000만원 주면 집 뺄게요."
용인에 월세로 거주중인 A씨(40)는 몇해 전 집 근처 아파트를 샀다. 매매가 4억원중 3억원은 전세금을 받아 해결했다. 몇달전 남편 일터가 지방으로 바뀌면서 A씨는 아파트를 팔아 지방에 전세를 얻기로 결심했다. 곧 매수 희망자가 나타났고 A씨는 세입자에게 "새 집주인이 실거주를 원하니 전세계약이 만료되는 11월에 집을 비워달라"고 요청했다. 세입자는 흔쾌히 "그러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얼마 후 세입자 권리를 대폭 강화한 주택임대차보호법이 국회를 통과했고 세입자는 말을 바꿨다. 전세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아파트 매도 계약금으로 6000만원을 받은 A씨는 마음이 급하다. 세입자가 나가지 않을 경우 매수자에게 계약금의 두배인 1억2000만원을 물어줘야한다. 세입자는 최근 A씨에게 "이사비와 추가로 받게될 전세대출금 등 1000만원을 주면 퇴거를 고려하겠다"고 요구했다. A씨는 "계약금을 배상하지 않으려면 세입자 요구를 들어줘야할 판"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정부가 개정된 주택임대차보호법을 악용하는 일부 세입자의 행태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지난달 당초 법을 개정할때 입장과 또 달라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집주인들에게 불리한 조건 투성이라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국토교통부는 11일 "세입자가 '전세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명확한 의사표현을 한 상태에서 이를 신뢰한 집주인이 집을 팔기 위해 매매계약을 맺었다면, 이후에 세입자가 마음을 바꿔 갱신청구권을 행사해도 집주인은 이를 거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경우는 주택임대차법 제6조의3 제1항 9호 '임대차를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로 해석하기로 한 것이다.
다만 몇가지 조건이 있다. 먼저 세입자의 갱신청구권 포기 의사가 명확해야한다. 다음으로 계약갱신 시점 6개월 이전에 한 포기 의사는 인정하지 않는다. 또 매매계약이 체결된 뒤 뒤늦게 세입자가 갱신청구를 할 경우로 한정된다. 물론 집을 사기로 계약한 새 집주인이 실거주를 하는 경우에 한한 얘기다.

법개정 직후부터 최근까지 국토부는 '집주인과 세입자가 갱신청구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약정했더라도 세입자가 갱신청구권을 사용키로 마음을 바꾸면 임대인은 거절할 수 없다'고 해석했다. 사전 약정은 임차인의 권리를 배제하는 불리한 약정이라는 이유다.(본지 8월29일자 2면) 임차인에게 그야말로 '절대방어권'을 부여한 셈이다.
이렇게 되자 일부 세입자들이 국토부의 기존 해석을 근거로 집주인에게 금품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집주인이 매매계약을 맺은 상태에서 세입자를 내보내지 못하면 거래 상대방에게 계약금의 두배를 물어줘야한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커뮤니티를 통해 '집주인에게 위로금 000만원을 요구했는데 적정한 수준이냐', '왜 그것밖에 안했느냐. 최소 000만원을 요구하라'는 식으로 정보를 주고받기도 했다.
국토부가 새로운 해석을 내놓은 이유는 이처럼 부작용이 심했기 때문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그동안 접수된 관련 민원을 분석해 법무부와 협의를 거쳐 새로운 해석을 내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새로운 해석이 나왔음에도 논란은 여전하다. 우선 세입자들로부터 명시적인 권리포기 의사를 받는게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서울 양천구 아파트를 소유한 장모씨(44)는 "세입자들이 포기의사를 밝히는 대가로 웃돈을 요구해도 거부할 방법이 없다"며 "여전히 집주인이 '을'임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이미 전세시장에선 세입자가 계약전 문서 등으로 명시적인 권리포기 의사를 해주는 조건으로 '위로금'혹은 '권리금'조로 일정한 돈을 요구하는 것이 관행으로 자리잡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정부의 어설픈 규제로 부작용이 나타나고 그 부작용으로 황당한 관행이 자리잡는 악순환이 임대차시장에서도 발생할 것이란 얘기다.
실제 세입자의 '명시적'인 전세갱신요구권 포기 의사라는게 구체적으로 무언지도 불명확하다. 국토부 관계자도 "세입자가 '알았다'고 말했다면 이를 '집을 비우겠다'로 해석할수도 있지만 '집주인의 상황을 이해했으니 생각해보겠다'로 해석할 수도 있다"며 "정부가 이런 부분까지 선을 그어주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법이 지난달부터 이미 시행되고 있어 유권해석이 한달만에 달라진데 대한 불확실성도 집주인과 세입자 등 당사자들이 감당해야 한다. 이같은 해석이 있기전 세입자의 명시적 포기의사를 받아둔 집주인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면밀한 검토없이 법안을 만들어 놓고 부작용이 심각해지면 한발 늦게 땜질 처방을 이어가는 여당과 정부의 행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더 커지고 있다. 김현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은 "임상실험도 안한 백신을 접종해놓고 문제가 생기자 부산을 떠는 셈"이라며 "설익은 정책에 실수요자만 골탕을 먹고 있다"고 말했다.
[김동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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