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미국 요즘 것들의 재테크`…월가 "청년 세대의 복수, 자산시장 뒤흔들 것"
입력 2020-09-11 13:30  | 수정 2020-09-12 14:07
미국 뉴욕시 소재 나스닥증권거래소, [사진 제공 = 나스닥 증권거래소]

부린이와 주린이. 밀레니얼(2030 청년세대) 부동산 투자 초보자와 주식 투자 초보자를 '어린이'에 빗대어 부르는 우리나라 유행어다. 요즘 월가에서는 중국발 코로나바이러스19(COVID-19)를 기점으로 청년 세대가 자산 시장을 뒤흔들 것이라고 보고 긴장하는 분위기다.
코로나19 재난 지원금을 받아 주식과 파생상품(선물·옵션 등)에 과감히 투자하는 청년들의 재테크 열풍은 단순히 일하기 싫어서 '불로소득'을 꿈꾸기 때문에 불어온 것이 아니다. '상향 평준화'된 사회에서 취업이 로또인 것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치열한 경쟁과 도저히 바꾸기 힘든 불평등한 현실을 살아가는 전세계 청년 세대들이 불안한 미래에 대처하는 생존법을 찾으면서 나온 대표적인 현상 중 하나다.
코로나19팬데믹(전세계 대유행)에 대응하기 위해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풀어둔 전례없는 대규모 유동성은 청년 세대 재테크 열풍 촉매제가 됐다. 미국에서도 청년 세대는 학자금 등 대출 상환 부담이 줄어들지도 모른다는 위로를 얻은 후 현금을 들고 '로빈후드'(주식 거래 중개 수수료 무료 앱)를 이용해 주식 투자에 나선다. 나이든 세대가 유동성이 늘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해 화폐 가치가 떨어질 것이라고 걱정하는 것과 생각이 다르다.
9일(현지시간) 경제매체 배런스는 올해 뉴욕증시에서 개인 투자 붐을 일으킨 것은 '청년 초보 투자자들'이라면서 미국 온라인 금융자산 거래 플랫폼인 이트레이드(E*Trade) 조사를 인용해 미국 청년 세대 투자 성향을 소개했다. 지난 달 19일 이트레이드가 발표한 최근 '활동적(단기) 투자자들의 위험 성향 조사'를 보면 청년 세대는 위험을 과감히 수용하는 성향이 두드러진다.
조사에 따르면 만 34세 이하 연령대 단기 투자자들은 절반 넘는 51%가 '위험 적극 수용할 것'이라고 답했다. 다른 연령대를 포함한 전체 평균(23%)을 훌쩍 뛰어넘는다. 이와 관련해 만 34세 미만 연령대의 34%가 현금 보유를 줄이고 주식 등 다른 자산에 투자하고 있다고 응답했는데 이는 전체 평균(19%)보다 높다. 이트레이드는 만 34세 이하 연령대는 주식보다 더 위험한 자산으로 꼽히는 파생상품(선물·옵션 등) 거래에도 더 적극적이며 단기 거래 성향도 더 짙다고 분석했다.
젊은 층은 미국 경제 회복에 더 낙관적이다. 팬데믹 탓에 지난 3월 뉴욕증시가 패닉에 빠지는 바람에 만 34세 미만 투자자들 도 손실을 봤다. 다만 이들 중 9%만이 팬데믹에 따른 투자 손실을 만회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연령대의 절반인 50%가 앞으로 6개월 내에 경제가 회복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는 전체 평균(33%)보다 높다.
이번 조사는 온라인 거래를 통해 최소 1만 달러 이상의 자금을 굴리는 미국 단기 투자자들 총 874명을 대상으로 올해 7월 1일~9일에 걸쳐 이뤄졌다. 874명은 미국 전역을 대상으로 고르게 선정한 것으로 남성 60%, 여성 40%로 구성된다. 단기 투자자라 함은 주 1회 이상 금융 자산을 매매하는 '활동적(active) 투자자'를 말한다. 이트레이드는 주1회 이상 매매하는 경우를 '활동적인 투자자', 주1회까지는 아니지만 한 달에 1번 이상 매매하는 경우를 '스윙(swing) 투자자', 한 달에 1번 미만으로 거래하는 경우를 '소극적인(passive) 투자자'로 나눴다.
청년 투자자들의 재테크 발판이 된 로빈후드 앱은 사용자 평균 연령층이 31세다. 로빈후드는 올해 1월~5월 동안 300만 개의 거래 계정이 추가될 정도로 인기를 끌어모았다.

팬데믹 혼란과 더불어 청년 투자자들이 뉴욕 증시에 대거 등장하면서 과거 분석 모델에 기반한 월가 전문가들의 목표 주가 예상과 증시 전망은 흔들리게 됐다. 월가는 기술주와 단타(단기 매매)를 선호하는 청년 세대 투자방식이 시장 불확실성을 키운다고 경고하지만 이런 가운데 도이체방크같은 대형 투자은행은 앞으로 이런 불확실성이 대세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월가의 박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청년 투자 열풍의 한가운데 선 것은 도요타를 제치고 '전세계 자동차 업계 시가총액 1위'를 따냈던 전기 자동차(EV) 제조업체 테슬라다. 뉴욕 증시를 들썩이는 악동으로 등장한 로빈후더(로빈후드 사용자)들은 테슬라 주식을 집중 매수해왔다.
이런 가운데 테슬라 주가와 더불어 뉴욕 증시가 3거래일 연속 급락한 지난 8일, 번스타인의 토니 사코나기 분석가는 "우리는 EV 시대를 낙관하고 있으며 테슬라가 EV 시장에서 구조적으로 유리한 업체라고 믿고 있지만 그간 테슬라 주가는 너무 높아서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지경(mind-boggling)이었다"고 평가했다. 사코나기 분석가는 테슬라 목표 주가를 1주당 180달러로 설정하고 '매도'의견을 냈다. 배런스는 사코나기 분석가의 목표 주가 전망에 따른 테슬라 시총은 1700억 달러 정도인데 이는 도요타에 시총 순위를 내준다는 계산이 나온다고 전했다.
다만 테슬라는 이달 1~8일 주가가 30.49%떨어졌다가 9일 이후에는 빠르게 반등했다. 10일 뉴욕증시 거래 마감 가격를 기준으로 테슬라 시총은 3460억 1800만 달러(약 411조 3461억원)이고, 11일 도쿄 증시 장중 도요타 시총은 22조 6700억엔(약 253조 8745억 원)이다.
테슬라를 증심으로 한 기술주 시세 급변에 대해 글로벌 투자은행 도이체방크의 짐 레이드 전략가는 "우리는 기술 혁명 한 가운데 살고 있으며 현재 상황에서 기존의 가치 평가가 놀랍게 붕괴하고 있다"면서 "기술주 상승세가 버블(거품)낀 결과인지 혁명의 결과인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다만 막연한 코로나19 백신·치료제 개발 기대감으로 바이오 기업 주식을 사들이거나 파산 위기에 놓인 기업 주식을 단기 매매하는 식으로 청년 투자자들이 위험한 투자에 나서는 것은 문제로 지적된다. 베테랑 투자 전문가이자 오메가 어드바이저의 레온 쿠퍼만 최고경영자(CEO)는 "로빈후드 투자자들이 파산기업과 항공 등 위험한 분야에 멍청하게 '투기'하고 있다"면서 "결국 눈물로 끝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 도이체방크 "예측불가 무질서 시대 온다"…좌절한 청년들의 복수
한편 9일 도이체방크는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자산 시장에서 청년 세대의 반란이 시작됐다는 내용을 담은 '무질서 시대' 분석 리포트를 냈다. 리포트를 주도한 레이드 전략가는 "코로나19 이후의 2020년을 기점으로 새로운 시대가 온다"면서 "역사상 주식·채권 등 자산 가격이 국경을 넘나들며 최상의 조화를 이뤘던 세계화 시대가 코로나19 팬데믹(전세계 대유행)을 계기로 안녕을 고할 것이며 무질서의 시대 올 것"이라고 언급했다.
코로나19 이후의 글로벌 자산 시장을 바꿀만한 주요 변수는 '미·중 갈등'을 비롯한 여러 가지가 꼽히지만 특히 눈여겨 볼만 한 것은 '청년 세대의 복수'다. 레이드 전략가는 보고서에서 "부와 소득 불평등은 한 국가 안에서도 세대간 정치 갈등을 일으키는 핵심 변수이며, 청년들은 도저히 닿을 수 없는 집값 상승세와 정치적 좌절을 맛본 세대로서 기성 세대에 복수(revenge)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지금의 청년세대는 정치적 다수가 주도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탈퇴) 찬성 국민투표와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을 보며 좌절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정치권에 소득 재분배(상속세·부동산세·법인세 인상, 저소득 층 연금 확충 등)를 강력히 요구할 수 있는 새로운 다수 유권자로 등극할 것이라는 전망에서다.
무엇보다 청년 세대는 인플레이션을 기꺼이 수용함으로써 나이든 세대의 자산 가치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 도이체방크는 "밀레니얼은 부채를 많이 지고 있는데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록 실질적인 부채 부담이 줄어들기 때문에 이들 세대는 인플레이션에 더 관대하다"면서 "반면 채권 보유 연령대인 나이든 세대는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자산이 줄어드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또 "밀레니얼 세대의 소득이 늘어나지 않는다면 나이든 세대들은 지금보다 더 낮은 자산 가격 상승률, 어쩌면 자산 가격 하락을 지켜봐야할 지도 모른다"면서 "자산 가치 측면에서 세계화와 다르게 더 혼란스러운 상황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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