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핫이슈] "나랏돈이 니 돈이냐"
입력 2020-09-11 09:22  | 수정 2020-09-18 09:37

13세 이상 전 국민에 2만원씩 지급한다는 통신비 지원은 문제가 많다. 나랏돈으로 국민에게 아부하는 것을 보통 포퓰리즘이라고 한다. 한해 예산이 550조가 넘는 나라에서 인당 2만원, 전체로는 9300억원짜리 포퓰리즘은 '애교'로 봐 줄수도 있지 않을까. 그럴까도 했는데 이걸 '정부의 작은 위로이자 정성'이라 포장하는걸 보고 마음이 싹 달아났다.
첫째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는 돈으로 국민을 위로할 수도 없고 정성을 표현해서도 안된다. 정부가 가진 단돈 1원도 다 국민에서 나온 것이다. 정부는 허투루 쓰지않을 책임이 있을뿐 이 돈으로 생색낼 권리가 없다. 그건 직무유기다. 3류 포퓰리즘 국가들이 실상 그렇게 하는지 몰라도 그들 나름대로 합리적 명분은 댄다. '위로'나 '정성'이라며 돈을 뿌리지는 않는다.
그런 점에서 이 정권의 '꼰대' 의식은 거의 왕조국가 수준이다. 왕은 백성에게 돈으로 은혜를 베풀수 있다. 조선시대 왕실은 내탕금이라고 해서 개인 금고가 있었다. 흉년이 들었을때 내탕금을 풀어 주린 백성들에게 한끼라도 대접한다면 이건 작은 위로이자 정성이 될 수 있다. 따지자면 내탕금도 백성에게서 나온 것이지만 그때는 그런 인식이 없었을 것이다. 지금은 조선시대가 아니고 대한민국 대통령은 왕이 아니고 추경은 내탕금이 아닌데 어째서 위로고 정성인가. "나랏돈이 니 돈이냐"는 네티즌들의 냉소에서 빼고 보탤 것이 없다.
둘째 이 결정이 내려진 과정이 더 절망스럽다. 여당 브리핑에 따르면 9일 당청 회의에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액수가 크지는 않더라도 코로나로 지친 국민들에게 통신비를 지원해드리는 것이 다소나마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이라 건의했고 대통령은 "같은 생각"이라 호응했다고 한다. 사극 드라마 어전회의를 보는 것 같다. 대통령과 차기 대권 유력후보인 여당 대표가 국가 예산을 바라보는 인식이 이렇다. 그 돈이 어디에서 나오고 누가 갚아야 하는지 생각한다면 저런 말이 나올수 없다. 경제학원론과 현대민주주의 개론 재수강이 필요하다.

셋째 그런 점에선 차라리 이재명이 선명하다. 이재명은 전 국민에게 1인당 30만원씩 지급하자고 주장했다. 대통령과 이낙연 대표보다 15배나 통 큰 포퓰리즘이지만 그래도 이재명은 위로와 정성 대신 내수진작과 승수효과를 이야기한다. 그게 현실에서 통하는 이론인지는 차치하고(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하나의 논리는 된다. 논리는 논리로 대응하면 되지만 위로와 정성으로 가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넷째 왜 하필 통신비인가. 소비진작 효과가 거의 없다. 차라리 전 국민에게 2만원어치 아이스크림 한통씩 돌리는 건 어떤가. 동네 빵집 2만원 상품권은 어떤가. 어차피 추석 앞두고 기분 한번 내 보자는 취지라면, 그렇게 날리자고 작정한 9300억원이라면 먹어서 없애는 것이 신이라도 나지 않을까. 내수에 기여하는 바도 있을 것이고.
[노원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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