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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도시 주거 트렌드] 재택근무發 `올인홈` 확산…코로나로 성큼 다가온 스마트도시
입력 2020-09-07 17:21  | 수정 2020-09-07 20:33
◆ 매경 명예기자 리포트 ◆
'극장의 몰락과 조닝(zoning·용도지역제)의 폐기.' 올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렸던 세계 최대 가전·IT전시회 CES 박람회장에서 300인치 텔레비전을 보면서 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 화두다. 인테리어 벽체로도 사용할 수 있는 그 얇고 거대한 스크린이 집 안에서 상당히 많은 것을 해결해주겠다고 생각했다. 내 집에서 생생하게 대형 스크린으로 영화를 즐길 수 있으니 굳이 영화관을 찾을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해 근대 도시계획제도에서 집이나 오피스, 오락, 공원 등을 엄격히 구분하는 용도지역제는 의미가 없어지겠다는 데까지 나아갔다. 하지만 이내 그런 미래는 한참 더 기다려야 올 '먼 미래'라며 선을 그었다. 그 당시 CES에서 집중 조명받던 양자컴퓨터나 드론택시 같은 신개념 기술보다도 300인치 TV를 상용화하는 것이 더 오래 걸릴 수도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코로나19로 미래 도시가 좀 더 일찍 다가왔다.
코로나 환자가 전 세계적으로 2700만명을 돌파했다. 팬데믹 상황에서 마스크 착용과 손세정제가 필수품이 된 만큼 우리가 거주하는 도시 공간 구조에도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우선 시민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전염병에 강한 구조로 재편이 시급하다. 또 주거는 생산·휴식·문화 등이 모두 편리한 올인빌(All in Ville)·올인홈(All in Home) 개념으로 복합화돼야 한다. 주거기능 복합화는 미래 도시 핵심 트렌드로 지목됐지만 코로나19로 그 진행 속도에 가속이 붙게 됐다. 그런데 이 같은 변화가 코로나19 때문에 불과 몇 달 만에 후다닥 순발력 있게 변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지금 우리가 갑자기 '강요된 스마트시티'에 살게 된 것은 맞지만 미래 도시 변화에 대한 예측과 준비는 꽤 오래전부터 진행돼왔다.
코로나19로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도 차장급 이하 직원들이 3교대와 5교대 근무를 실험했다. 특히 육아를 맡거나 원거리에서 통근하는 젊은 직원 반응이 뜨거웠다. 영상회의도 효과적이었다. 고화질 모니터와 화면분할 기술은 집중도를 높여줬고 프리라이더(free rider) 식별도 쉬워졌다. 재택근무 확산으로 생산활동 거점이 회사가 아닌 '집' '제3의 공간'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고, 탈오피스 현상에 대비한 새로운 업무지침도 등장했다.
지난 4월 코로나19 우려 속에 입주한 SH공사의 맞춤형 공공주택 브랜드 '청신호 1호(서울 정릉)'는 소득 3만달러 시대 젊은층을 겨냥해 미래 변화를 선도적으로 수용했다. 국내 1~2인 가구 비중이 어느덧 60%를 넘어선 상황에서 청년 가구에 맞춤형 가구와 공간을 기획해 조성하고 커뮤니티시설에도 지역민 거점시설과 공동 육아방, 빨래방, 파티공간 등을 넣었다. 올인홈 개념을 구현하려고 애를 쓴 것이다.
서울에서는 베이비부머 자식뻘인 1979~1997년생 에코부머(Echo-Boomer) 중심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보고 즐기고 느끼는 곳이 핫플레이스가 되고 있다. 에코부머들은 개인 공간을 원한다.
일종의 '개인화된 공유'로 공동체 의식과는 거리가 멀다. 혼밥(혼자 밥 먹는 것)이나 혼공(혼자 공부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애초에 셰어하우스(공유주거)로는 한계가 있었다.

여기에 코로나19가 왔다. 집 근처에서 모든 게 이루어지되 개인 공간은 확실히 보장해주는 방향으로 주택과 도시 공간이 이미 재편됐고 코로나19로 가속화될 것이다. SH공사는 이 같은 변화에 맞춰 콤팩트시티도 강화하고 있다. 저이용 토지를 활용해 도시 내 주요 거점시설을 일자리·놀자리·살자리·설자리가 포함된 공간으로 재창조하는 방식이다. 특히 동네와 집에서 일상 대부분을 누리는 슬리퍼 생활권 개념으로 '올인빌' 선호가 높아져 공간 복합화로 풀어야 한다.
코로나19 이후 인구 밀도가 높은 대도시 중심 개발 방향을 재고하자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퍼리드 저카리아 CNN 앵커가 한 칼럼에서 지적했듯 뉴욕시에서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맨해튼 감염률은 다른 구역보다 오히려 낮았고 미국에서도 인구 1인당 감염률은 인구 밀도가 낮은 지역에서 되레 높았다. 홍콩 싱가포르 타이베이 등 인구 밀도는 물론 지하철 등 대중교통 의존도가 높은 대도시 사망건수가 낮다는 점은 공간의 밀도보다 효율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도심 주요 거점에 의료 유통 문화 교육 등 주요 공공서비스가 포함된 '안전한 스마트도시'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빅데이터 등 첨단기술이 반영돼 도시와 도시 간, 도시와 지역을 엮는 스마트도시 기반이다. 고령화 시대에는 '공간도 많은 사람이 누려야 하는 복지 중 하나'라는 개념이 필수적이다. 특히 앞으로 상업용 수요가 줄고 주거 수요가 증가할 것에 대비해 도시공간 재구조화가 필요하다.
[김세용 SH공사 사장 / 도움 = 이한나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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