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칠흙같은 어둠까지 10년 남았다` 저자 인터뷰
입력 2020-08-30 18:29  | 수정 2020-09-06 19:07
`칠흙까지 10년` 책 표지

33년간 리더십을 가르쳐 온 미국의 노 교수는 10년 뒤의 세상이 걱정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리더십에 대한 걱정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커져가는 빈부격차와 정보기술(IT) 회사들의 지배력 집중현상, 사회시스템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 하락 등이 복합적으로 겹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거대한 위험요소들이 점점 커져가고 있고, 10년이 지나면 겉잡을 수 없이 인류를 위기로 몰고갈 것이라고 말했다. 인류에게는 이 위험을 풀 수 있는 딱 10년이라는 시간이 남았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는 지난 8월 4일 이런 생각을 담은 신간(책) '칠흙같은 어둠까지 10년 남았다'(10 Years to Midnight)를 펴냈다. 인터뷰는 8월 하순 온라인 화상회의를 통해 이뤄졌다. 아래는 그와의 인터뷰 전문.
-'칠흙까지 10년'(Ten Years to Midnight)이라는 책을 쓰셨습니다. 어떤 계기로 집필을 생각하시게 되셨나요.
▶어느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걱정거리들을 모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전략을 짜는 사람들이고, 그 전략이 맞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이런 작업을 할 필요가 있었죠. 그랬더니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어요. 정치 지도자부터 택시운전사까지 걱정하고 있는 것들이 매우 비슷했던 거죠. 조금 더 깊게 들여다 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알게 됐죠. 그 걱정에는 매우 근거가 있다는 사실을요. 게다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루 이틀이 아닌 아주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알게 됐어요. 그래서 우리는 '네 가지 위기'를 정의하게 됩니다. 이 위기들이 무엇인지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당장 해결하기 시작해 전력을 다해도 10년 뒤에 풀릴까 말까 한 어려운 문제들이니까요. 그래서 책을 쓰게 됐지요.
-그 위기들이 무엇인지 조금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 물론이죠. 첫번째로 번영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성공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차이가 커진다는 얘기입니다. 개인의 문제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 내부만 놓고 보더라도 잘 사는 동서 해안가 도시들과 내륙도시들로 나뉘죠. 중국도 마찬가지에요. 동쪽은 잘 살지만 서쪽 내륙으로 갈수록 못살죠. 영국도 런던은 잘 살지만 북쪽으로 갈수록 상황은 힘듭니다. 인도 역시 방갈로르는 성장이 좋지만 다른 지역은 어렵습니다. 기술이 뛰어난 곳은 잘 살고, 그렇지 못한 곳은 못사는 현상이 나타나죠.
그런데 못사는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다수라면 어떻게 될까요. 마침 우리가 확인해 보니 전 세계에서 5분의 4 정도 되는 사람들이 그렇게 못사는 지역에 살고 있었어요. 전 세계 80%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을 둘러싼 시스템이 자신들을 구조적으로 못살게 괴롭히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들은 더 이상 꿈을 가지길 거부할 겁니다. 더 이상 무언가 만들길 그칠 것이고요. 희망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게 첫번째 위기입니다.
두번째는 기술의 위기입니다. 산업혁명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 공기에 배출되던 매연 속에 사람의 목숨을 끊을 수 있는 독소들이 들어있을 거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별로 없었습니다. 이제 소셜미디어와 플랫폼이 인간 삶의 모든 기초가 되는 시대가 왔습니다. 우리는 이 속에 독소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거 아세요? 질문하는 기자 양반이 16살 때에는 자살이 사망의 주요 원인이 아니었죠. 하지만 지금 16살 소년들의 사망 원인 중 하나는 자살입니다. 차이점은 뭘까요. 소셜미디어 입니다. 그 기술플랫폼들을 만든 이들이 청소년 자살과 같은 문제들이 나올 거라고 미리 예상이나 했을까요? 아니요. 이런 문제들은 의도치 않게 발생하는 겁니다. 의도치 않은 기술의 부정적 영향. 두번째 위기입니다.

세번째 위기는 사회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전 세계를 돌아보면 사람들은 자신들이 만든 사회시스템에 대한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당장 미국을 보세요. 경찰 공권력이 특정 인종에 더 강경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인식이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빠르게 확산되면서 사람들은 경찰제도 자체에 대한 정당성을 묻고 있습니다. 미국뿐만이 아니에요. 어떤 나라에서는 교육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상당히 높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세금에 대한 저항이 큽니다. 우리가 만든 사회시스템은 물고기에게 있어서는 물과 같은 것이죠. 그런데 물고기가 물을 믿을 수 없게 된다면, 과연 물고기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저는 이런 사회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향후 10년 뒤에는 폭발할 것 같아 걱정입니다.
네번째 위기는 리더십에 관한 겁니다. 빈부격차와 기술발전으로 인해 사회시스템에 대한 신뢰는 갈수록 추락해 갈텐데, 그를 돌파할 리더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과거 속에서 리더가 되기 위해 준비해 온 사람들입니다. 적어도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를 위해 준비된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전 세계의 80%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빈곤지역에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 쉐퍼드 헤드의 주장이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계는 없음. [사진 = 픽사베이]

-10년 뒤에는 위기가 온다는 데드라인을 설정하셨는데, 왜 10년 인가요.
▶ 그런 결론이 나오길 의도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조사를 거듭할 수록 10년이라는 숫자가 의미있게 다가왔어요. 첫번째 위기로 꼽은 빈부격차 문제를 예로 들어보죠. 미국에서 자영업자가 은퇴하는데 노후자금으로 1만달러(약 1200만원)도 안되는 자금을 저축해 둔 사람들의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아시나요? 자그마치 절반이 넘습니다. 1만달러도 안되는 돈으로 여생을 살 수 있나요? 불가능이에요! 그런데 지금 55~65세 구간에 있는 연령대의 사람 절반이 10년 뒤 이런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는 겁니다.
문제가 더 심각한 곳이 있어요. 아프리카로 가 볼까요. 이 대륙에는 10년 뒤에 직장을 잡기 위해 교육을 받아야 하는 아이들의 숫자가 5억명에 달합니다. 한국 중국 일본 등이 발전할 때는 어마어마한 인구와 그들의 값싸고 양질의 노동력이 성장의 원천이 됐죠. 그런데 지금 아프리카의 노동력을 사려는 나라가 있나요? 게다가 아프리카는 인공지능과도 경쟁해야 하는 상태죠. 만일 아프리카 젊은이들에게 돌아가는 교육이 충분하지 못하다면, 아프리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할 수 있나요?
기후변화 문제는 어떤가요. 캐나다와 러시아의 툰드라 지역이 온난화의 영향을 받기 시작하고 있는데, 여기서 발생한 메탄이 대기에 방출되기 시작하는 10년 뒤면 지구온난화는 더 가속화되겠죠. 저희가 걱정한 네 가지 문제는 모두 10년 내에 풀지 못하면 나중에 문제가 겉잡을 수 없이 심각해 지는 것들이었어요.
-그렇다면 이 문제들은 어떤 세대가 주력이 되어서 풀어야 하는 건가요.
▶젊은 세대가 푸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만, 문제를 풀 수 있는 대부분의 자원들을 장년층이 쥐고 있다는 것이 문제죠. 저처럼 나이든 세대는 이제 돈을 물려주고 젊은이들이 문제를 풀 수 있게 비켜주는게 맞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그걸 넘어서 우리가 아직 익숙하지 않은 협력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세대와 세대가 협업하는 모델이 그것이죠. 뿐만 아니라 공공과 민간이 협력하는 모델도 만들 필요가 있어요. 오랫동안 그런 협력을 만들지 못해 왔지만 말이에요. 생각해 보세요. 우리 앞에 문제들은 매우 엄중한데, 그걸 해결하기 위해서는 창의적 해법을 만들어야 하고, 실행에 옮겨야 하죠. 그런데 인간의 사회시스템은 빨리 변하지가 않아요. 그러니 제가 드리는 말씀은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한다는 거에요.


-모두 힘을 합하게 만들려면 리더십이 매우 중요할 것 같은데요, 미래의 리더에게는 어떤 자질이 필요할까요.
▶ 30년간 리더십을 가르쳐 왔기 때문에 제게도 책임이 있는 질문인 것 같네요. 그동안 저는 리더가 될 사람에게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잘 파악하고 장점을 잘 살리라고 말해 왔어요.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말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미래의 리더에게는 두 가지 완전히 서로 모순되는 것들을 하나로 합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어야만 할 것이기 때문이에요. 기술이 던지는 위기를 풀 수 있는 사람은 기술에 대해 잘 알면서 동시에 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까지 잘 아는 사람이어야만 해요. 이제 스스로에게 한번 질문해 보세요. 기자 양반이 아는 사람 중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으면서 동시에 심리학, 사회학, 정치학을 공부한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많지는 않네요.
▶ 또 다른 예를 들어볼게요.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했어요. 어떤 사람들이 주목받았나요. 제 생각에는 공감형이지만 결단력이 있는 사람들이 이 사태 속에서 많은 역할을 했다고 봐요. 한국에서도 그런 분이 있다고 들었죠. 그런 사람들은 공공의료 관계자들과 임상의학자들, 그리고 컴퓨터 공학자들, 민간 기업인 등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겸손하게 문제의 원인을 찾아요. 그리고는 이렇게 이야기하죠. "저도 답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모두에게 물어보고, 답을 찾아보겠습니다."
미래의 리더가 되려면, 용기를 가진 진정한 영웅이 되려면, 불확실한 상황에서 결정을 내리고 행동을 취할 줄 알아야 해요. 또한 겸손하게 모두에게 의견을 구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한편 어려운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하죠. 앞으로 가면 갈수록 더욱 모순된 것을 겸손하지만 용감하게 통합시킬 수 있는 리더의 역량이 중요해질 거에요.
PWC의 글로벌 전략-리더십 헤드로 일하고 있는 블레어 쉐퍼드.
-그렇다면 리더가 되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몇 가지 조언을 해 주실 수 있나요.
▶ 물론이죠. 첫째, 당신이 사랑하는 지역을 선택하고, 그 지역을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들어 보세요. 많은 사람들이 글로벌을 먼저 꿈꾸지만, 사실 가장 로컬한 것이 글로벌한 것이거든요. 둘째, 자신이 못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세요. 미국 속담에 '능력이 있어야 더 하고 싶어진다'는 말이 있는데, 자꾸 그러다보면 세상에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까먹게 돼요. 마지막으로 문제가 있으면 풀기 위해 바로 뛰어들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문제는 매우 복잡하기에 맞닥드려 풀면서 여러 학문들을 함께 배워 나가야 하기 때문이에요.
-글로벌화에 대해 잠깐 말씀을 해 주셨는데, 최근 미·중 갈등이 격화되고 있어요. 그래서 드리는 질문인데, 여러 나라들이 안심하고 무역할 수 있는 글로벌라이제이션의 시대는 끝난 것일까요.
▶ 미·중 갈등에 대해서는 리밸런싱이라고 봅니다. 잘못된 것이 있었고 그게 바로 잡아지는 과정이라고요. 하지만 저는 지금 이 시기에 우리가 하나 생각해야 할 점이 있다고 봅니다. 바로 글로벌의 관점보다는 로컬의 관점이 더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올림픽의 예를 들어볼게요. 올림픽 수영대회에 3명 정도만 참가한다고 하면 그게 의미가 있을까요? 무역도 마찬가지에요. 로컬에서 비교 우위를 가진 이가 없으면 교역이 일어나지 않죠. 그런데 기술경쟁이 일어나면서 승자가 모든 것을 가져가는 시대가 되어버리니까 교역의 의미는 줄어들고 있어요.
-하지만 IT 기업들은 점점 더 많은 나라로 확장을 원하고 있어요. 공룡들은 끊임없이 성장만을 갈구하고 있는 것 같아요.
▶ 인공지능과 애널리틱스 분야에서 이기려면 많은 데이터를 갖고 있어야만 하니까요. 대규모 데이터를 갖고 있다는 것은 IT 산업에서는 성공을 의미해요. 하지만 문제가 있어요. 소비자들이 제공하는 데이터들이 원래 제공 목적과 달리 광고에 쓰이는 경우가 많다는 거죠. 또 다른 이슈가 있어요. 산업혁명 시대에는 국경과 땅이 중요했어요. 그래서 전쟁도 땅을 놓고 이뤄졌죠. 하지만 지금은 전쟁이 인터넷과 지적재산권, 데이터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어요. 국가가 인터넷과 지적재산권, 데이터를 통제해야 하는 시대가 온거죠. 더 많은 성장을 하려면 국가를 넘어야 해요. 마지막으로 승자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이 시대에, 사람들은 실리콘밸리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시대를 과연 원할까요? 저는 그렇지는 않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IT 공룡들에 대한 규제가 이유있다고 봐요.
-한국과 같은 나라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국은 글로벌하게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데, 지금 미·중 갈등과 IT 세상의 분열이 한창이라 불확실성이 너무 크거든요.
▶ 한국은 플랫폼 기반의 세계 질서 속에서 경쟁하는 방법을 터득해야만 하는 입장이 됐어요. (미국과 중국이 만드는) IT 플랫폼들을 이길 수 있는 것을 만들기란 쉽지 않게 됐어요. IT 플랫폼의 역량은 곧 국력과 비례하게 됐기 때문이죠. 그런 플랫폼을 만들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에요. 코로나 사태 속에서도 두각을 발휘한 전통기업들이 있잖아요. 그런 회사들처럼 변화한 세상의 질서 속에서도 살아남는 방법을 찾아내야만 한다는 거죠.
특히 코로나 사태 이후 글로벌 공급망의 변화가 상당히 있었잖아요. 저는 상당히 많은 생산시설들이 이제는 한 곳에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분산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기업을 하는 분들에게 중요한 자산을 지역에 분산하라고 저는 조언하죠. 마지막으로 저는 자신이 태어난 곳을 사랑하고 긍지를 가지라고 말하고 싶어요. 저도 한국에는 여러번 방문했지만 아름다운 곳과 스토리들이 많았어요. 이런 자산들을 부정적 에너지 때문에 썩히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특히 한국은 한국 내에서만 머무를 수 없는 나라잖아요. 끊임없이 해외로 나아가서 비즈니스를 해야 하는데, 외부에 내세울 자신의 스토리가 없다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실리콘밸리 = 신현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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