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서울서 `깜깜이 감염` 급증하는데…英대학 "대중교통 감염률 30배"
입력 2020-08-29 14:54  | 수정 2020-08-29 15:51
중국 고속철 [사진 출처 = 사우스햄튼대학]

중국발 코로나바이러스19(COVID-19)가 '인구 밀집 지역' 서울을 중심으로 다시 빠르게 번지고 있는 가운데 회사원들의 주요 출퇴근 수단인 지하철 등 대중교통 내 감염 위험을 수치로 제시한 첫 해외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번 연구는 최근 한국 질병관리본부가 '경로를 알 수 없는 감염' 사례가 급증한 상황을 들어 방역 위기감을 드러낸 가운데 대중교통 수단의 위험성을 지적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영국 사우스햄튼 대학 연구진은 지난 14일(현지시간) '고속철 내 코로나19 전파율에 관한 분석'을 발표하면서 중국 고속철 사례를 분석한 결과, 같은 고속철 내 평균 감염률은 0.32%였지만 밀접 접촉 공간(확진자가 앉은 자리에서 앞뒤 각 5칸·좌우 각 3칸) 감염률은 최대 10.3%까지 높아졌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또 일정한 공간 내에서 확진자와 앞뒤로 있었던 경우 평균 감염률(3.5%)이 나란히 있었던 경우(1.5%)보다 눈에 띄게 높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좌석을 놓고 볼 때 흥미로운 점은 확진자가 앉았던 좌석에 다른 사람이 앉은 경우 감염률이 0.075%로 비교적 낮았다는 것이다.
한편 확진자와 함께 여행하는 시간이 길수록 감염률도 높아졌다. 전체 좌석을 통틀어보면 감염률은 시간 당 0.15%씩 증가했고, 특히 확진자와 가까운 자리는 감염률이 시간당 1.3%씩 높아졌다.
이번 연구는 중국 고속철인 G-열차를 대상으로 지난 해 12월 19일 ~올해 3월 6일에 걸쳐 이뤄졌다. 당시 해당 열차에 탔던 코로나19 확진자 2334명을 포함해 이들과 같은 열차를 탄 밀접접촉자 7만 2093명에 대한 역학조사다. 밀접 접촉자 7만 2093명 중 열차에서 감염된 것으로 알려진 사람은 234명(전체 평균 감염률 0.32%)이다. 사람들이 열차를 타고 이동한 시간은 총 8시간 미만이었다.

연구는 사우스햄튼 대학의 앤드류 타템 교수가 책임을 맡고 있는 개방형 인구 데이터 분석기관 월드팝 소속 연구진들과 중국과학원·중국전자정보기술원·중국 질병예방통제센터 협업을 통해 이뤄졌고, 이달 초 국제학술지 '임상 감염병'에 발표됐다. 타템 교수는 "이번 연구는 역학 조사 데이터를 통해 대중교통 내 코로나19 감염 확률을 최초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면서 "대중교통 내 이용자 밀집도를 줄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연구진은 감염자와 최소한 1m 이상 거리를 확보해야 안전하고, 두 시간 이상 같은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해야 하는 경우 2.5m 이상의 거리를 둬야 감염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언급했다.
클럽·식당·체육시설 뿐 아니라 지하철 등 대중교통 수단도 불특정 다수가 모이는 공간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출퇴근길 대중교통 안에서도 중요하다는 것이 사우스햄튼 대학 연구진의 결론이다.
인구 밀집도가 높은 한국 수도권에서 대중교통 내 사회적 거리두기는 현실적으로 힘든 측면이 있다. 다만 사무직 등 일부 직종 재택근무가 대중교통 감염 위험을 줄일 수 있는 방법임에도 불구하고 '보여주기 식 근무 태도'를 강조하며 출퇴근을 고집하는 조직 문화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A 공기업에 다니는 K 대리(33)는 '재택 근무자 명단만 만들어 적으면 뭐하냐'는 입장이다. 그는 "재택 근무를 하라고 해놓고 실제로 출근하지 않으면 승진에는 별로 관심 없는 직원이라고 눈치를 준다"면서 "어쩔 수 없이 재택 근무자로 명단만 올려두고 출퇴근 하면서도 사람들끼리 바짝 붙어선 지하철을 탈 때마다 혹시나 감염될지 불안하다"고 말했다. B 대기업에 다니는 P과장(35)도 "우리 팀은 일의 특성상 전원 재택 근무를 해도 되는데 팀원 절반 이상은 반드시 출퇴근하라고 한다"면서 "집에서 아이보기 싫다는 팀원도 있고, 어쨌든 다들 상사 눈치만 보는 분위기이다보니 돌아가면서 출퇴근을 하지만 버스에서 누군가 기침하면 신경 쓰일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최근 서울에서는 코로나19 감염 경로를 알 수 없는 '깜깜이' 감염자가 빠르게 늘어났다. 29일 0시 기준으로 집계된 통계를 보면 서울의 코로나19 누적 감염자는 총 3657명인데 이 중 감염 경로를 알 수 없는 감염자는 617명이다. 28일 하루 새 나온 신규 감염자 125명 가운데 감염 경로를 알 수 없는 감염자(49명)는 39.2%다. 최근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도 "감염경로를 알 수 없어 조사 중인 환자가 10명당 3명 이상인 상황"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어 정은경 본부장은 28일 정례 브리핑에서 "전문가 예상에 따르면 다음 주에는 하루에 800명에서 2000명까지 확진자가 늘어날 수 있다"면서 "보건소에서 열심히 역학조사를 하고 있지만 접촉자 조사를 파악하고 조치하는데는 한계가 도달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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