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핫이슈] 진인 조은산이 30대 월급쟁이라고? `헐`이다
입력 2020-08-28 09:50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청와대 시무7조 상소문으로 한국 지성사회를 '경악'시키고 있는 진인(塵人) 조은산이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본인을 아무 문필 이력이 없는 30대 월급쟁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일보는 존경하는 신문이지만 잘 믿기지가 않는다. e-메일 인터뷰라는데 직접 만나 확인한 기사가 나온 후라야 믿을수 있을 것같다.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조은산은 일종의 이적(異跡)이자 탐구대상이 아닌가한다. 한자 교양이 사실상 소멸한 세대, 디지털 세대라 할 수 있는 30대가 어떻게 그런 문장을 쓰나. 그만큼 시무7조는 대단한 글이다.
문화일보 이신우 논설고문이 지난 26일자에 쓴 시론 <청와대 '시무7조 상소문' 왜 숨겼나>를 통해 시무7조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고 곧 전문을 찾아보았다. 제일 궁금한 것이 '누가 썼을까'였다. 이 글은 한자적 교양으로 충만하고 특히 조선시대 상소문의 운율에 기반하면서 비유를 통한 상황 구성능력이 일급 작가 수준이다. 스타일은 의고체지만 트렌디한 시사언어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이는 '재능'의 영역이고 문장의 축복을 타고난 이라면 어느 정도 가능하다. 정말 놀라운 것은 국정 전반에 걸친 현 시국 진단이 어느 하나도 예외없이 폐부를 찌른다는 것이다. 집채 파도같은 문장인데 내용은 엄숙·냉철하기가 가슴을 얼린다. 철학적 사유에 기반해 철저히 현실적인 말을 하고 있다. 최고급 저널리즘이다. 그러면서 중간중간 웃기기까지 한다. 김정은을 '북국 돈왕(豚王)'에 비유하다니 얼마나 고급스러운 유머인가.
문필업에 20여년 종사하며 각 방면에서 한다하는 '고수'들의 글을 일삼아 찾아 읽고 있지만 이런 글은 본 적이 없다. 일단 내 직업군(제도권 저널리즘)의 고수들은 조은산 후보군에서 빼 놓기로 했다. 능력조건으로만 보면 직업 저널리스트가 시무7조를 쓸만한 후보군에 가까운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 중 한명이라면 내 눈을 피해가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제 아무리 이중 글쓰기에 능한 인물이라도 스타일은 드러나게 돼 있다. 셰익스피어가 프랜시스 베이컨이 만들어낸 가공 인물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베이컨이 문장 분석가들의 현미경을 수백년째 속이고 있다면 그는 인간이 아니라 신이다. 내가 아는한 신문사 칼럼니스트들은 돌아오는 칼럼 막기에도 벅찬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좋은 문장을 자기 칼럼에 쓰지 왜 청와대 게시판에 올리겠는가.
두번째 후보군으로는 교수를 비롯한 상아탑 지식인들이 있다. 이 중 신문지상에 자주 등장하는 분들은 제도권 저널리스트와 동일한 이유로 후보군에서 제외했다. 문사철 전공자들 중에서 아직 언론에 노출되지 않은 지식인일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그런데 지금같은 SNS시대에 그 정도 문장을 구사하는 사람이라면 소문이 안나기가 어렵다. 지식사회는 더욱 그렇다. 조은산같은 이가 상아탑에 있으면서 소문이 안난다?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전직 언론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나이는 60대 이상, 한자적 교양이 몸에 밴 세대, 은퇴는 했지만 시사 감각은 여전하고 시간은 많은 분. 지금도 인터넷 등 공간에서 왕성한 필력을 자랑하는 전직 언론인 몇분을 떠올려보았다. 그런데 조은산의 문장을 다시 보니 그 가능성도 희박해 보인다. 사람 손이 나이를 속이기 어려운 것처럼 문장에도 나이가 드러난다. 뭐라 꼬집어 말할수는 없어도 나이에 따라 문장의 기세랄까 느낌이 달라진다. 내가 느낀 조은산의 문장은 50대의 문장이었다. 60대 이상에선 그보다 완숙한 글을 쓸수는 있어도 그런 기세는 나오기 어렵다.
궁금증이 너무 강하게 일다보면 공상에 이르게 된다. 심지어 15년전 절교한 불알친구 녀석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내 친구는 세살때 바둑천재로 지방 신문에 기사가 나고 다섯살때 초등학교에 특례입학했으나 수업중 똥을 싸는 바람에 3년을 꿇어 제 나이에 다시 입학한 친구다. 고등학교 시절 아이큐 측정에서 157인가가 나왔는데 내 절반쯤 공부하고도 수학을 100배쯤 잘하는 녀석을 나는 몹시 질투했다. 녀석 집에 놀러갈때마다 '이 놈이 이걸 진짜 읽는가' 의심할만큼 엄청난 수준의 중국 사서들을 쌓아놓고 있었다. 대학에선 사학을 전공했다. 상아탑으로 가지는 않았다. 노무현 정부시절 대통령 욕을 하는 내게 절교를 선언하더니 지금껏 연락이 안된다(친구여, 이 글 보면 연락좀 주시게. 안 믿겠지만 나도 노무현이 그립다네. 이 정부 출범후 줄곧 그를 그리워하고 있다네). 녀석이 그후로 줄곧 내공을 쌓았고 정치관이 바뀌었다면 조은산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아니 공상을 해 본다.
어제 퇴근했더니 아내가 "당신이 기자면 이런 글 좀 써보라"고 조은산 얘기를 한다. '어허허' 하고 웃었을뿐 대꾸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 조은산이 30대라고 한다. 전문적으로 글을 써본 적도 없는 아마추어라 한다. 인간 능력의 신비함이여! 아내여, 세상에는 천분이라는 것이 있다. 각자 타고난 그릇대로 사는 것이다. 우리는 진인 조은산의 건필을 기원하면 된다.
[노원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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