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코로나 블루'에 시달리는 전업주부들…24시간 '독박육아'
입력 2020-08-28 08:17  | 수정 2020-09-04 09:04

"개학을 하면 2학기부터는 좀 나아지려나 했는데 다시 온라인 수업이라니 막막해요."

초등학교 2학년·4학년 남매를 키우는 전업주부 52살 김모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으로 다음 달 11일까지 다시 비대면 수업이 진행된다는 말에 울상을 지었습니다.

김씨는 오늘(28일) "지난해 12월 방학이 시작된 뒤로 지금까지 아이들이 학교에 정상적으로 등교를 못 하게 되면서 내 시간이 전혀 없어 나 자신이 계속 소모만 된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은 아이들이 잘 때 운동이라도 하라고 하지만 그때는 온종일 아이들을 돌보느라 기진맥진한 상태라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반년 이상 코로나19 사태가 지속하는 가운데 전업주부들이 자녀 양육 부담 증가로 우울감이나 무기력증을 느끼는 현상을 일컫는 이른바 '코로나 블루'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 '코로나 블루' 1위 전업주부…"온종일 아이와 실랑이에 우울해져"

다수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김씨와 같은 고충을 토로하는 전업주부들의 글이 올라옵니다.

중학생 아들을 뒀다는 주부 A씨는 "한창 사춘기인 아들이 학교도 학원도 안 가고 24시간 함께하니 코로나 블루에 걸린 것 같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습니다.

그는 "무더위에 세끼 밥 차려 먹이고 간식에 영양제까지 챙기고 아이와 실랑이하다 하루가 다 간다"며 "원래대로라면 다음 주엔 등교를 하는데 다시 온라인 비대면 수업이 시작될 걸 생각하니 더 우울해졌다"고 썼습니다.

지난 4월 경기연구원의 '코로나19로 인한 국민 정신건강 설문조사' 결과 국민의 48%가 코로나19로 우울감을 호소했다. 직업별로는 전업주부(59.9%)가 1위를 차지했습니다. 코로나19로 집에 있게 된 아이들을 온종일 혼자 돌보면서 겪는 스트레스가 크기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전업주부들은 배우자의 재택근무나 자녀들의 비대면 수업 등으로 업무량이 증가한 상태에서 자기만의 시간이 없어져 일상이 무너지면서 스트레스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습니다.

백종우 경희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전업주부들이 코로나19로 양육 부담이 늘어났지만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법을 찾기가 어렵다"며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시간에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 게 굉장히 중요한데 그런 시간이 줄어들기에 더 답답함을 호소하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습니다.


◇ 스트레스로 아이에게 짜증…"내가 엄마 맞나" 자책감까지

전업주부들이 꼽는 또 다른 고충은 '자책감'입니다. 스트레스가 쌓인 나머지 자녀에게 감정을 해소하는 자신의 모습에 자책하는 일이 잦아지기 때문입니다.

주부 김씨는 "에너지를 채울 시간이 없어 아이들에게 짜증도 내게 되고, 그러면 또 '내가 엄마 맞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더 힘들어진다"고 말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딸과 6살·4살 아들을 키우는 전업주부 32살 김혜란씨는 "아이들과 집에서 부딪히는 일이 많다 보니 언성을 높이는 일이 잦다"며 "엄마 마음이 편해야지 아이들도 편할 텐데 아이가 엄마만 찾다 보니 감정조절이 힘들 때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아이가 셋이나 되다 보니 하루하루 감옥이고 전쟁터"라며 "집안일을 해야 할 때는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을 보여줘야만 일을 할 수 있으니 아이들을 방치하는 건 아닌지, 나 때문에 스마트폰 중독이 되는 건 아닌지 미안하고 마음이 힘들다"고 했습니다.

곽금주 교수는 "아이들과 물리적·심리적인 거리두기가 되지 않아 (전업주부의) 업무가 증가하고 부정적 감정이 표출되고 그것이 다시 죄책감으로 이어지면서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 "코로나 블루 넘어선 '번아웃' 되지 않도록 전업주부만의 시간 필요"

곽 교수는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전업주부들이 코로나 블루를 넘어 '번아웃(소진)' 상태라는 극단까지 갈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백 교수는 "우울감이 심해지면 두통·소화불량·불면·기력저하 등 신체적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며 코로나 블루가 건강 전반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런 처지에 놓인 전업주부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가족들의 도움'이라고 말합니다.

백 교수는 "가족이 서로 일정을 조정해나가는 노력을 통해 전업주부가 자기만의 시간을 갖도록 배려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가족들이 역할을 분담하면서 변화된 상황에 맞춰가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백 교수는 "그 외에 가족이 같이 할 수 있는 즐거운 게임을 찾거나 집안에서든 밖에서든 몸을 좀 움직이고 가벼운 운동이라도 하면 스트레스 관리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곽 교수는 "어느 정도 큰 아이들에게는 전업주부의 일을 분담하도록 함으로써 집안일을 배우는 또 다른 기회로 삼도록 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아이가 너무 어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모든 일을 다 하려고 하기보다는 우선순위를 정해 중요한 일을 먼저 처리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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