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회생절차 기업도 곳곳서 대출 손길…사라지는 `금융 사각지대`
입력 2020-08-25 18:09  | 수정 2020-08-25 19:28
◆ 금융의 판이 바뀐다 ④ ◆
경기도 용인시 소재 자동차 부품업체 A기업은 경영난으로 회생 절차를 밟고 있는 상태다. 운전자금이 필요해 전자어음으로 대출을 받고자 은행 문을 두드렸지만 '회생기업'이라는 낙인에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없다면 결국 최고금리 연 24%를 요구하는 대부업체나 사채시장에서 대출을 받아야만 한다. A기업은 개인 간 거래(P2P) 금융사 한국어음중개가 P2P 금융 플랫폼을 이용해 전자어음 할인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국어음중개는 A기업 같은 회생기업에도 연 10%대 금리로 운전자금을 마련할 수 있도록 투자자를 연결해 주고 있다. 한국어음중개 관계자는 "A기업은 회생절차가 진행 중이지만 어음을 발행한 기업은 투자적격 등급 우량 중견기업이고, 회생법원 동의도 얻었다는 측면에서 내부 심사를 통과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돈을 빌려주는 사람은 갑, 돈을 빌리는 사람은 을이라는 고정관념이 깨지면서 '대출 평등' 시대가 열리고 있다. 돈이 있는 사람과 돈을 빌리는 사람을 직접 연결해주는 금융이 생겨나고 데이터에 입각한 대출이 정착되면서 대출자 다양성에 기반한 금융이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P2P 금융이 제도권 금융으로 진입하면서 기존 금융권에 존재하던 '대출 사각지대'를 줄여간다는 점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P2P 금융은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해 투자자와 대출 희망자를 연결해주는 서비스를 뜻한다. 투자자는 은행 금리보다 높은 이익을 낼 수 있고, 대출 희망자는 낮은 금리에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성장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물론 최근 몇 년 새 급격한 성장세에 따른 부작용도 있었다. 각종 금융 사고가 발생하고 연체율 급등 등 문제가 불거지면서 P2P 금융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이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P2P 금융이 '중금리 대출'을 찾기 어려운 기존 금융권의 '금리 단층' 문제나 소외계층의 금융 접근성 문제 등을 해소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가능성마저 폄하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시각도 많다. 27일부터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법(온투법)이 시행돼 각종 규제가 적용되기 시작하는 만큼, P2P 금융 부작용도 상당 부분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 P2P 금융의 최대 강점은 기존 금융권이 커버하지 못했던 '특화 상품'을 내놓을 수 있다는 점이다.
병원·약국 등 메디컬 부문에 특화한 P2P 금융사 모우다가 대표적이다. 모우다는 병·의원, 약국 등의 특수성을 감안한 매출채권 담보대출을 진행하고 있다. 단체 건강검진센터는 연말·연초에 건강검진 대금이 한꺼번에 결제되다보니 연중 적자상태가 지속되다 연말·연초에 흑자로 돌아서는 일이 많다. 기존 은행들은 이 같은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아 대출이 어려웠지만 모우다는 이를 감안해 P2P 대출을 제공하고 있다. P2P 금융의 '선정산 서비스' 또한 대출 사각지대를 보완한 사례다. 온라인 쇼핑 플랫폼에 입점해 상품을 판매하는 소상공인들은 상품 판매 대금을 정산받기까지 최대 두 달가량 기다려야 한다. 이 때문에 대금 지급까지 자금이 필요하면 고금리 카드론·대부·일수 등을 받는 일이 다반사였지만, P2P 금융사가 결제 대금만큼을 미리 정산해주는 서비스를 내놓은 것이다.

'비대면 금융' 활성화 역시 대출시장에서 전통적인 금융업의 '메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른바 '금리 쇼핑의 시대'를 이끌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은행인 케이뱅크는 모든 과정을 비대면으로 진행하는 아파트담보대출을 선보였다. 신청부터 입금까지 모든 과정에서 은행을 방문하지 않아도 대출을 받을 수 있다. 기존 대출을 갈아타도록 하는 '대환대출'을 기본으로 하다 보니 시중은행과 직접적인 금리 경쟁이 벌어진다. 이제는 대출회사가 금융 소비자를 찾아다니는 시대가 되면서 소비자 입장에서는 선택의 폭이 더 넓어졌다.
기존 금융권의 '반격'도 관심이 가는 대목이다. '전통 금융업' 선봉에 선 시중은행들은 비대면 기술을 활용해 다양한 대출 상품을 내놓고 있다. '신한 쏠편한직장인대출S' '국민 KB스타신용대출' '하나 원큐신용대출' '우리 WON하는직장인대출' '농협 올원직장인대출' 등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이나 인터넷으로 받을 수 있는 신용대출 상품이다. 금리 또한 상대적으로 낮다.
마이데이터 산업 등장도 금융권 변화를 이끌 전망이다. 마이데이터 사업으로 개인이 보유한 각종 금융정보를 분석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금융 소비자들이 보다 유리한 금리로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대환대출 서비스나 맞춤형 대출 추천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등장할 전망이다.
발품을 팔지 않아도 스마트폰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금융 상품과 금리를 확인할 수 있는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린다는 의미다. 이미 정부의 금융규제 샌드박스로 규제 특례를 받아 다양한 모바일 대출 관련 서비스가 등장해 시행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올해 하반기 개정 신용정보법 시행, 온투법 시행 등으로 대출 패러다임도 변화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핀테크의 공세와 기존 금융권 반격으로 금융 소비자들 선택권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최승진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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