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핫이슈] 與 추진하는 `민주시민교육` 새교과목, 특정이념 강요 안된다
입력 2020-08-25 08:58 

집권여당이 '민주시민 교육'이란 이름의 새로운 독립 교과목을 만드는 법안을 잇따라 발의하고 입법예고하면서 논란이 거세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지난달 학교민주시민교육법안을 발의했고, 같은당 장경태 의원은 지난 5일 초·중등 교육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지금 학교 현장에선 사회· 도덕 과목에서 민주시민 교육이 이뤄지고 있는데, 국어 영어 수학처럼 별도로 교과목을 만들어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교육을 시키자는 것이 두 법안의 취지다.
박 의원은 법안 발의 배경에 대해 "민주시민 육성을 위한 교육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으나 학교에서 이런 교육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미흡해 민주시민교육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장 의원도 "입시 위주의 학교운영과 경쟁지상주의적 교육문화 등으로 여러 사회 문제가 발생하면서 학교에서의 민주시민 교육 요구가 급증하고 있다"며 "민주시민에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두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반대 의견이 6500여개가 달릴 만큼 부정적 시각이 만만치 않다.
민주시민 교육이 자칫 정권 입맛에 맞는 방향으로 치우치거나 특정 이데올로기 강요로 이어져 교육기본법의 정치적 중립 의무에 어긋날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국내 최대 교원단체인 한국교총도 "현 정권의 관심에 따라 특정교육을 강조하고 그것을 교과로 만들고 지원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민주 시민으로서의 자질과 소양을 갖춘 국민을 육성해 국가와 사회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교육을 시키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각계 우려처럼 민주시민 교육을 명분삼아 특정 이념이나 철학을 강요하고 주입시키는 것은 오히려 민주주의 제도를 훼손하고 권위주의시대로 회귀하자는 것이나 다름없다.
실제로 현 정부는 지난 2017년9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5개월간 초등학교 6학년용 국정 사회교과서를 자신들 입맛에 맞게 고쳤다가 검찰에 적발된 전례가 있다.
당시 교육부는 '대한민국 수립'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바꾸라고 편찬·집필 책임자에 요구했고, 이들이 거부하자 다른 교수에게 고치라고 종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북한은 여전히 한반도 평화와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는 문장을 삭제하거나 새마을운동 관련 사진을 아예 빼기도 했다.
심지어 교과서 내용 수정을 거부한 집필 책임자 교수가 회의에 참석한 것처럼 조작하고 그의 도장까지 몰래 찍도록 출판사에 압력을 가한 사실까지 밝혀졌다.
중고교 역사교과서 또한 균형 잡힌 역사서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김병욱 미래통합당 의원에 따르면 2018년7월 교육과정 집필기준 개정 이후 발행된 고등학교 새 한국사 교과서 중 상당수가 6·25전쟁 당시 남과 북에 대해 왜곡·편향되게 기술했다.
'전쟁 중 민간인 학살이 일어나다'라는 주제에서 북한군의 학살 만행은 거의 다루지 않으면서이승만 정권이 군대와 경찰을 동원해 국민보도연맹원을 학살했다는 여러 증언과 사진은 담았다.
또 남한과 북한을 모두 독재체제로 기술하면서 북한 사회를 오히려 더 긍정적으로 묘사하는가 하면 김일성 세습 독재체제를 '1인 지배체제'로 순화하고 '주체와 자주를 내세웠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전 정부가 추진하던 중고 국정교과서를 '적폐'로 규정해 온갖 비난을 퍼붓고 전현직 공무원들에 대한 수사까지 벌였던 현 정권이 정작 자신들도 비슷한 행태를 답습하고 있는 셈이다.
더 나은 공동체와 국가를 만들기 위해 차이와 다름, 다양한 가치 존중, 참여와 소통을 통한 갈등 조율 등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교육시키는 것은 우리 기성세대에게 주어진 절실한 과제다.
하지만 민주시민 교육의 목적이 국민 통합과 사회적 갈등 해소보다, 보수진영의 철학과 이념을 훼손하고 진보진영의 폐쇄적 논리를 강요해 '백짓장' 같은 학생들의 머릿속을 세뇌하는 것이라면 결코 용납할 수 없다.
장자크 루소는 '에밀' 에서 "진리를 알려주는 것보다 편견과 오류로부터 아이를 지켜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여당이 제대로 된 민주시민 교육을 추진하고 싶다면 오늘날 민주주의 교육의 표본으로 꼽히는 독일 '보이텔스바흐 합의'부터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독일처럼 진보와 보수 진영을 망라한 교육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백년대계를 설계한다는 마음가짐으로 교육체계의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보이텔스바흐 합의의 세가지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첫째 학생들에게 특정한 이데올로기나 가치를 강요해선 안된다.
둘째, 학계와 여론에서 논쟁적인 것은 논쟁적인 형태로 알려줘야 한다.
셋째, 학생들이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관심을 갖고 관철시킬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민주시민교육은 여당이 177석 다수의 완력으로 법안을 밀어붙여 새로운 교과목을 만든다고 해서 하루 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이런 원칙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지켜질 수 있도록 교육 환경이 먼저 조성될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박정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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