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고위험 사모펀드` 은행서 사라진다
입력 2020-08-18 17:54  | 수정 2020-08-18 20:09
은행에서 취급하는 상품 중 예금을 제외한 펀드·신탁·변액보험 등에 대한 관리 책임을 은행 내 최고 의사 결정 기구인 이사회에 두는 모범 규준이 이르면 다음달 시행된다. 지난해부터 각종 사모펀드 부실 판매 문제가 불거지자 은행 자율협의 방식으로 모범 규준을 만드는 것으로, 이를 놓고 "사실상 고위험 투자상품 판매가 막히는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18일 금융감독원과 은행권에 따르면 '비은행 상품 내부 통제 모범 규준'이 이르면 이달 말 나온다. 업계 자율협약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가이드라인이지만 전체적인 내용과 방향 설정은 지난해 국외 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이후 각 은행 자체적인 대책 마련을 참고해 사실상 금감원이 주도해왔다. 이번 모범 규준은 예·적금과 대출을 제외한 은행의 펀드·외환·신탁·연금·변액보험·파생 등 대다수 상품을 이사회 관리하에 둔다는 점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 각 은행은 해당 상품을 관리하는 '비예금 상품 선정위원회'를 설치·운영해야 한다. 위원회는 비예금 상품 판매 전 기획과 상품 선정, 사후 관리, 영업점에 대한 성과 평가 등을 총괄한다. 상품 판매 현황 등에 대해 정기 또는 수시로 이사회와 대표이사에게 보고해야 한다. 사실상 예금·대출 등 은행 본연의 업무 외에 겸업으로 판매하는 투자 관련 상품은 모두 이 위원회를 거쳐야 하는 셈이다. 지금도 각 은행은 금융상품을 출시하기 전 상품 리스크와 판매 타당성을 따지는 자체 상품위원회를 두고 있다. 그러나 금감원은 이들 위원회가 형식적으로만 운영돼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고 보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해 금감원 조사 결과 우리은행에서 판매한 DLF 380건 중 상품선정위원회 심의를 거친 상품은 단 2건(약 1%)에 불과했다. 하나은행도 DLF 753건 중 상품위원회에 부의한 사례는 단 6건이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설령 위원회를 거치더라도 경영진이 정한 방침을 거스르지 못해 불완전 판매에 이른 사례가 있었다"며 "이번 모범 규준은 모든 은행이 독립적으로 상품위원회를 운영하도록 영업 문화의 틀을 새로 짜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사실상 투자상품은 아예 취급하지 말라는 의미로 이해된다"고 평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앞서 6월 금융투자협회에서 제정한 '고난도 금융투자상품 제조 및 판매에 관한 표준영업행위준칙' 등 금융당국 대책 방향과도 맞물려 있다. 고난도 금융상품이란 최대 원금 손실 가능한 비율이 20%를 초과하면서 파생상품이 내재돼 투자자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구조가 복잡한 상품을 말한다. 지난해 말 금융위원회가 DLF 대책을 만들면서 새롭게 도입한 개념이다. 고난도 사모펀드에 대한 은행 판매는 제한됐고, 투자상품 판매 여부는 대표이사 확인과 이사회 의결을 거쳐야 하는 등 벽이 높아졌다. 다만 이사회를 통한 내부 통제를 강조하는 규제들이 실효성을 가질지에 대한 우려도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경영 전략과 방향을 짜고 경영진을 견제하는 이사회가 개별 상품까지 일일이 들여다보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복잡한 규제를 '옥상옥'으로 만들 바에야 아예 은행에 위험도 높은 투자상품 판매를 전면 금지시키는 게 나을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절차를 둘러싸고도 갑론을박이 지속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은행에 설치하는 비예금상품선정위원회 책임자를 투자상품 담당 부서가 맡을지, 금융소비자보호총괄책임자가 맡을지 등을 놓고 당국과 은행권 의견이 엇갈린다는 것이다. 당초 이달 24일 은행연합회 정기이사회에서 비예금 상품 모범 규준을 의결하겠다던 계획도 현재로선 불투명해졌다. 금감원 관계자는 "무턱대고 위험 상품을 팔지 말고 투자자 관점에서 상품위원회를 운영하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주원 기자 / 이새하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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