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핫이슈] 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주택정책…까닭은 `시차`
입력 2020-08-13 10:00  | 수정 2020-08-20 10:37
고지대에서 바라본 서울 아파트 전경. [김호영 기자]

문재인 정부 들어 23번째 부동산시장 안정대책이 나왔지만 시장이 쉬 가라앉지 않으면서 주택 당국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 8·4 대책을 통해 긴급하게 공급확대 카드까지 꺼내 들었지만 시장에서 정책효과가 제대로 먹히지 않는 모양새다. 마지 못해 내놓은 3기 신도시와 달리 이번엔 정부 나름대로 공급을 대폭 늘리겠다는 의지까지 담았는데 주택 수요자들의 평가는 그다지 높지 않은 듯하다. 대출 억제와 부동산 과세 강화 등 수요억제 일변도에서 도심 고밀도 개발 쪽으로 작심하고 방향을 크게 큰 것은 평가할만하다. 그래도 시장에서는 정책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주택수요자들이 많다.
지난 3년여 간의 주택정책 행보에 비춰보면 8·4 대책에 포함시킨 서울에서 종전 35층으로 묶여 있던 재건축 층수 규제를 공공분양 도입을 조건으로 50층까지 세울 수 있도록 용적률을 대폭 올려 주기로 한 건 파격적이다. 다만 초과이익을 거의 대부분 환수하겠다는 대목에서 서울 강남의 재건축조합들과 시각이 엇갈린다. 조합들이 공공분양과 함께 용적률을 올리는 걸 바라지 않는 이유는 사업성이 개선되지 않아 자기 부담이 그대로인 상태에서 인구밀도만 높아지는 게 자신들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재개발이 해제된 신길6구역 일대. [매경DB]
바로 이 지점을 정책 당국이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천정부지로 뛰는 강남 집값을 잡는 것은 어쩌면 간단한 일일 수도 있다. 재건축 용적률을 최대한 올려주되 지금처럼 초과이익을 환수하고 인구를 밀집시키면 주거환경이 악화하면서 자산가치는 떨어지고 집값도 자연히 하락한다. 그동안 당국이 재건축을 제한하면서 그런 과정이 막히다 보니 이미 강남에 진입해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진입장벽을 쳐 보호해주는 꼴이 된 셈이다. 재건축 허가를 받지 못해 전반적인 주거환경을 개선하지 못했더라도 이미 강남의 오래된 아파트 단지에 사는 부유층은 개별적으로 리모델링을 해 큰 불편 없이 살고 있다. 수도꼭지에서 녹물이 나오고 장마철에 갈라진 외벽 틈을 타고 물이 새는 경우도 있지만 집값 상승으로 상쇄시키면서 견디는 게 가능한 수준이다. 이들을 설득해서 주택공급의 장으로 끌어내는 일은 지금 정도의 당근으로는 쉽지 않아 보인다.
기존 주택을 시장에 쏟아내게 하는 것을 빼고 대부분의 신규 주택공급 방안은 아무리 빨라도 3~5년이 넘게 걸리는 장기적 작업이다. 이번에 발표된 도심 고밀도 개발이 정부 계획대로 진행되더라도 실제 공급이 이뤄지려면 다음 정부나 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 사이에 어떤 변수가 발생해 차질이 빚어질지 알기 어려운 지난한 과정이다. 순조롭게 가도 쉽지 않은 일인데 재건축조합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공염불이 될 것은 뻔하다. 지금 같은 분위기라면 마구잡이로 해제됐던 강북권 뉴타운 사업을 되살려 공급을 늘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잘 보이지 않는다. 강남권 재건축조합을 참여시키겠다는 의도가 시장에서 먹히지 않는다면 정부가 계획한대로 도심권 5만 가구 추가공급이 이뤄질지 장담하기는 어렵다.
정부가 지난 3년여 간 써온 주택수요 억제책은 정책 당국의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작동했다. 자연발생적으로 나오는 주택수요를 틀어 막지 못하는 가운데 공급 부족에 대한 시장의 불안심리를 증폭시켰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집값은 연초부터 꾸준히 올라 8·4 대책이 나온 뒤에도 그다지 흔들리지 않고 있다. 지난해말 12.16 대책 여파로 오름폭이 주춤했던 서울 아파트값은 풍선효과로 인해 상승 압력이 커진 상태이고 인천.경기 등 수도권도 상승세가 완전히 꺽이지 않았다. 주택시장 양극화로 2019년까지 어려움을 겪던 지방 집값도 제주도를 빼곤 대부분 지역에서 상승 반전한 상태다.
현재 발생하고 있는 주택공급 부족의 원죄를 굳이 따지자면 박근혜표 임대 위주 정책과 박원순식 뉴타운 해제 방침을 탓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잘못이라면 시장에서 간간이 흘러나오던 공급부족 우려를 외면하고 수요억제로 수급 불균형을 맞추겠다는 오기를 부린 점이다. 분당·일산·평촌·산본·중동 등 1기 신도시를 추진했던 노태우 정부에 이어 노무현 정부도 여론에 밀려 판교·동탄·김포·파주 등 2기 신도시를 입안했다. 당시에도 종합부동산세를 도입하며 세제를 강화하고 총부채상환비율(DTI).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적용하는 대출억제책을 써서 수요억제에 몰두하다가 뒤늦게 공급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이미 큰 부작용을 겪으며 지나온 길인데도 문재인 정부가 비슷한 길을 걸으며 오류를 범했다는 게 뼈아픈 대목이다. 문재인 정부 초기 주택정책 사령탑을 노무현 정부에서 실책을 했다고 스스로 평하는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에게 맡겼다는 것부터가 길을 잘못 든 게 아닐까 싶다. 시장내 수급 상황에 대한 인식보다 인구 변화, 거시경제 흐름 등 큰 그림만 보는 데 익숙한 정책가로는 한계가 명백했을 것이라고 짐작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참여정부의 2기 신도시 건설은 실제 주택공급으로 이어지기까지 시차로 인해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부동산시장 안정을 이끈 원동력이 됐다. 택지개발과 건설이 이어지면서 공급이 크게 늘어난데다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파고로 수요 위축까지 겹치자 시장은 안정 수준에 그치지 않고 미분양에 시달리며 붕괴를 걱정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나마 이명박 정부에서는 주택시장이 휘청이는 가운데서도 그린벨트를 일부 풀어 공공성이 강한 보금자리주택을 건설하며 공급을 어느 정도 유지해 나갔다. 이 때도 시장은 공급이 아닌 수요가 주도하는 국면이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뒤 2013~2014년에 드디어 서울 주택시장은 바닥을 그렸다. 당시엔 공급이 지나치게 많아졌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물량이 쏟아졌기 때문에 주택당국은 더 이상 추가적인 주택공급이 필요하지 않다는 착각에 빠졌다. 그 결과 정책 방향은 임대 위주로 전환됐다. 보유보다는 거주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행복주택'이란 이름으로 공공임대를 하고 중형급 민간임대주택 '뉴스테이'가 추진된 것이다. 철도차량 기지를 비롯한 도심 유휴지에 임대주택을 건설해 젊은 층에게 보급하는 방식이 강조되면서 분양주택 건설은 소홀해진 게 지금의 공급부족 부작용을 불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기에 실제 주택건설 인허가를 담당하는 서울시도 기름을 부었다. 대규모 개발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었던 박원순 시장 집권기 내내 서울시내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세게 조였다. 중앙정부가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건축조합원 지위 양도금지로 규제에 나선 뒤 서울시도 안전진단을 강화해 재건축 공급을 제한했다. 오세훈 시장 시절에 뉴타운이란 이름으로 추진하던 정비사업지구 절반 이상이 해제된 게 이때다. 대규모 공급 계획이 엎어진 대신 도시재생사업이 추진됐지만 추가적인 주택건설이 사라지면서 서울시내 신규 공급 물량은 급감했고 지금까지 수급 불안요인이 되고 있는 셈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전문가들 일부가 현재 공급부족 사태에 대해 절반의 책임을 박 전 시장에게 돌리는 것도 일리가 없지 않다.
주택시장 등락에 영향을 끼치는 다양한 요인 가운데 지금의 주택 당국이 취하고 있는 정책 방향을 보면 전반적으로 시장 하락을 가리킨다. 대출 규제가 한층 강화된 채 유지되고 있고, 보유세.거래세 등 세금 부담도 대폭 늘어난 상황이다. 여기에 경기침체가 지속되고 집값이 단기에 급등한 만큼 주택 수요자들의 피로감이 높다. 금리도 더 이상 내려갈 자리가 없을 정도로 낮아져 변동성이 낮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금리는 크게 영향을 미치기 어려운 요소로 봐도 무방할 정도다. 물론 당장 침체된 경기 때문에 인상까지 이뤄지진 않더라도 금리 상승 압력은 지속적으로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중장기적으로도 주택가격 하락 요인이 될 개연성이 크다. 특히 3기 신도시 공급 물량이 시장에 쏟아지는 시기가 되면 주택시장의 눌림 현상은 가속될 것이다. 다만 단기적으로 볼 때는 유동성이 급증한 만큼 주택시장 상승의 불씨는 남아 있는 상황이다.
서울 강남권의 아파트 일부는 최근 2~3년 만에 10억 원 이상 올랐다고 한다. 일어나기 힘든 일이벌어진 셈인데 전문가들은 아파트 값이 지나치게 고평가돼 버블 초기에 진입했다는 진단도 내놓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시장 과열은 지속되기 어려운 만큼 현상유지가 힘들 것이란 신호가 나오면 곧바로 식을 가능성이 적잖다. 조금 기다리면 물량이 충분히 공급될 것이란 기대가 형성되는 대로 주택가격은 안정될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다만 전세난은 일정 부분 더 진행되는 게 불가피해 보인다. 임대차보호법 개정으로 '전월세계약갱신제·상한제'가 도입돼 그렇잖아도 위축되던 임대차시장에 땜질을 한 만큼 순간은 모면할 수 있겠지만 4년쯤 뒤에는 다시 불안해질 가능성이 적잖다.
주택시장에서 정책은 수요에 곧바로 영향을 미치지만 공급은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 반영된다. 과거에는 맞는 듯이 보였지만 지금 보면 틀린 정책이란 게 명백해지는 것은 바로 '시차' 때문이다. 주택 당국의 공급을 둘러싼 정책 방향 전환은 항공모함을 돌리는 것과 같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장기적인 주택 수급 상황을 봐가면서 짜는 게 맞는다. 그렇지 않으면 지난 3년간 주택당국이 한 오판이 반복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장종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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