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출근길부터 야식주문까지…하루 600만건 디지털 페이로 결제
입력 2020-08-12 17:33  | 수정 2020-08-12 19:39
◆ 금융의 판이 바뀐다 ② ◆
# 서울에 사는 직장인 이예진 씨(27)는 지갑을 들고 다니지 않는다. 출퇴근길 지하철에 탈 때는 삼성 휴대전화에 등록된 캐시비 교통카드를 사용한다. 점심 식사 때는 어떤 식당에 가든 삼성페이에 등록된 신용·체크카드를 단말기에 찍기만 하면 된다. 집에 돌아와서는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배달의민족 간편결제 서비스 배민페이로 저녁을 시켜 먹는다. 생필품은 쿠팡 앱에서 쿠팡페이로 결제한다. 쿠페이머니로 결제할 때 1% 적립은 덤이다. 이씨는 "현금을 사용하지 않으니 지갑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다"며 "휴대전화 하나면 어디서든 무엇이든 살 수 있다"고 말했다.
모바일 간편결제 '페이'가 일상생활을 지배하고 있다. 현금, 통장, 카드 등 실물을 들고 금융 거래를 하는 시대가 저물고 있는 것이다. 휴대전화 하나면 온·오프라인에서 모든 결제가 가능하다. 각국 중앙은행도 '디지털 지갑' 시대에 맞춰 디지털 화폐로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1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3일 기준 간편송금·결제 업체(선불전자지급수단 발행업자)로 등록한 업체는 59개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12월 말(34개) 이후 불과 3년여 만에 73.5%(25개)나 늘어났다.
간편결제 서비스는 모바일 앱에 카드나 은행 계좌를 미리 등록해놓고 간편하게 결제하는 방식이다. 계좌 기반 선불 충전 방식이 아닌 신용카드 기반 결제 방식은 전자지급결제대행업(PG)으로 등록하는데, PG사 역시 같은 기간 70개에서 119개로 70%(49곳) 늘었다.

비바리퍼블리카가 운영하는 모바일 금융 앱 '토스' 등 핀테크에서 시작된 간편결제·송금 서비스는 네이버와 카카오 등 빅테크와 쿠팡·신세계 등 유통으로 넘어갔다. 이제 '결제'는 유통·제조·정보기술(IT) 등 모든 산업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
기존에 온라인으로 결제할 때는 은행 계좌번호나 신용카드 번호 등을 일일이 입력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신용카드나 은행 계좌를 한 번만 등록해 간편결제 페이와 연결해두면 비밀번호나 생체 인증으로 손쉽게 결제할 수 있다.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현금이나 실물 카드 없이 결제할 수 있다. 모든 결제 과정이 '디지털 지갑' 형태로 바뀐 셈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하루 평균 카드 기반 간편결제 서비스 이용 건수는 2017년 말(210만건)보다 186.7% 증가한 602만건이었다. 같은 기간 이용금액은 655억원에서 1745억원으로 166.4% 증가했다.
특히 최근 국내 온라인 쇼핑 사업에 뛰어든 글로벌 IT 기업인 페이스북도 간편결제 서비스에 진출할 가능성이 크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가 페이스북 페이와 가상자산 리브라를 '페이스북 숍스(Shops)'와 연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리브라는 페이스북의 스테이블 코인인데 달러, 유로, 파운드 등 각국 통화와 1대1 가치로 연동된다. 전 세계 소비자가 환전 수수료 등을 내지 않고 리브라로 물건을 사는 게 페이스북 구상이다.
세계 최대 지급결제 처리 기업 월드페이는 글로벌 전자상거래에서 디지털 지갑을 통한 결제 비중이 2018년 36%에서 2022년 47%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중국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디지털 지갑 결제 비중은 같은 기간 52%에서 66%로 증가한다는 게 월드페이 예상이다.
최근 들어서는 돈을 다루는 은행조차도 '현금 없는 점포' 운영에 나섰다. KB국민은행은 김포 운양역점, 서울 남부터미널지점, 송파헬리오시티점 등 3곳에서 현금을 받지 않는다.
기업뿐만 아니라 중앙은행들도 발 빠르게 '디지털 화폐(CBDC)'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 중앙은행으로서는 화폐 발행 비용을 줄이고 범죄·탈세 등을 예방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게다가 블록체인 기술 발전 등으로 디지털 화폐를 안전하게 발행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졌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바이러스가 지폐로 전염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번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현금을 기피하는 현상이 뚜렷해졌다. BBC방송에 따르면 영국에서는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인출 횟수가 지난 3월 코로나19 팬데믹이 선언된 이후 60% 줄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세계 각국 중앙은행 중 80%가 디지털 화폐 도입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스웨덴 중앙은행인 릭스방크는 지난 2월 세계 최초로 디지털 화폐인 e크로나 시범 운영에 들어갔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도 지난 5월 쑤저우, 선전, 청두, 슝안신구 등 4개 지구에서 디지털 위안화를 시범 운용하고 있다. 2022년까지 디지털 화폐를 상용화하는 게 중국 목표다.
일본 중앙은행(BOJ)도 디지털 엔화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한국은행 역시 올해 안에 디지털 화폐 설계·기술 검토를 마치고 내년에 디지털 화폐 파일럿 테스트를 하기로 했다.
한국은행은 '디지털 시대의 중앙은행과 지급결제' 보고서에서 "소비자가 온라인뿐만 아니라 대면 거래에서도 전자지급수단을 더 이용하게 되면서 일부 지역에서는 현금 사용량이 급격하게 감소했다"며 "코로나19 사태와 전자지급수단에 대한 관심 증대는 전 세계적으로 CBDC 개발을 촉진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미 국내 현금 결제 비중은 지난해 17.4%로 전년보다 2.4%포인트 감소했다.
특히 앞으로 페이 업체도 시중은행처럼 일종의 '통장'을 만들고 신용카드 후불 결제를 할 수 있게 되면 금융 소비자들은 은행 없이 모든 금융 생활을 할 수 있을 전망이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자체 계좌를 발급해 디지털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종합지급결제사업자'를 신설하기로 밝혔다.
[이새하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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