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쿠팡 열기 전 당근마켓부터 찾아봐요"…뜨거운 중고거래 시장
입력 2020-08-10 11:08  | 수정 2020-08-13 00:13

"저요! 제가 찜할게요."
물놀이 용품이 급히 필요했던 주부 신모(38·서울 서초구 방배동)씨는 휴대전화 문자부터 날렸다. 정확히 말하면 중고거래 모바일 플랫폼인 '당근마켓' 채팅창에서였다. 거래는 1분이 채 안 돼 성사됐다. 역시나 채팅으로 빠르게 만날 장소와 시간을 정했다. 신씨가 필요한 상품을 찜하고 동네 근처 지하철역에서 튜브를 건네받기까지 걸린 시간은 1시간 남짓에 불과했다.
그는 "이건 뭐, 당일배송보다 더 빨라 급할 때 종종 이용한다"며 "비록 중고품이지만 품질이 좋고, 싸게 잘 살 수 있어 요즘은 쿠팡 열기 전 당근마켓부터 찾아본다"고 말했다.
최근 중고거래가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구매자 입장에선 필요한 물건을 저렴하게 살 수 있고, 반대로 판매자는 당장 필요하지 않은 제품을 처분해 현금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이점이 많아 소비자들을 중고거래 시장으로 끌어당기고 있다.
[사진 제공 = 당근마켓]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4조원대였던 중고거래 시장의 규모는 현재 약 2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요즘 중고거래 이용자들을 빨아들이는 곳은 '모바일 중고거래 시장'. 중고거래 애플리케이션(앱)을 기반으로 한 모바일 중고거래 시장이 급성장 중이다.
시장조사업체 닐슨코리아클릭에 따르면 국내 스마트폰 이용자 중 당근마켓, 번개장터, 중고나라 등 중고거래 앱을 쓰는 순이용자수(UV)가 올해 6월 기준으로 1090만명에 달했다. 이는 전체 스마트폰 이용자 4050만명의 26.9%에 달하는 수준이다.
그 중 당근마켓의 순이용자 수는 981만명으로, 중고거래 앱 중 1위를 차지했다. 이어 ▲번개장터(219만명, 부문 17위) ▲중고나라(76만명, 부문 46위) ▲헬로마켓(36만명, 부문 71위) ▲옥션중고장터(24만명, 부문 90위) 등의 이용자가 많았다. 특히 당근마켓은 현재 전자상거래 부문에서 2위까지 올라서며 1위 업체인 쿠팡을 턱밑까지 추격하고 있다.
당근마켓에서 판매 중인 상품들 [사진 제공 = 당근마켓]
업계 관계자는 "국내 중고거래 시장을 키워낸 업체는 온라인 카페에서 출발한 '중고나라'라는 데에 이견이 없다"면서도 "하지만 지난 몇 년새 중고거래 시장은 빠르게 모바일 플랫폼 업체들로 재편됐고, 거래되는 품목과 이용자들의 외연을 넓혀가며 폭풍 성장 중이다"고 말했다.
최근 소비자들이 '신상' 못지않게 중고품을 급격히 찾게 된 데에는 장기화 된 코로나19사태가 한 몫을 하고 있다. 코로나19 발생 후 경제적으로 타격을 입은 소비자들이 한 푼이라도 아낄수 있는 중고거래를 찾아 나섰다는 분석이다.
한 중고거래 앱 관계자는 "요 근래 중고거래 앱 이용자들이 크게 증가한 배경에는 코로나19사태가 컸다"며 "수입이 확 줄자 돈을 아끼려는 사람과 동시에 필요 없는 물건은 내다팔아 당장 필요한 현금을 손에 쥐려는 판매자들이 몰리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불경기일수록 사업이 더 번창하는 '불황형 산업'의 전형인 셈이다.
중고나라 사이트에서 거래되고 있는 품목들 [사진 제공 = 중고나라]
소비자들의 인식 변화 역시 중고거래 성장세에 자양분으로 작용하고 있다. 과거 중고거래라 하면 '남이 쓰던 물건'이란 딱지를 붙여 불신하며 부정적인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근래 들어 중고거래는 실용적이고, 가격 대비 품질이 우수한 이른바 '가성비'가 높은 상품을 거래하는 창구로 인식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스스로를 '중고 덕후'라 칭한 직장인 임모(34·서울 종로구 거주)씨는 "불과 1~2년 전만해도 중고거래로 산 제품은 남에게 말하기 어딘가 민망하고 그래서 굳이 먼저 말하지 않았다"며 "하지만 요즘은 너도나도 중고거래를 많이 하면서 '중고품도 써보니 괜찮다'라거나 실용적이란 인식이 퍼져 트렌디한 소비자란 이미지가 생겨난 것 같다"고 말했다.
당근마켓 앱에서 거래를 위해 이뤄지는 채팅의 일부 [사진 제공 = 당근마켓]
당근마켓을 주로 이용한다는 주부 정모(32)씨는 "거주하는 동네를 기반으로 사고팔다보니 너무 낡거나 한 제품은 팔지 않아 품질이 어느 정도 보장된다"며 "아예 개봉하지 않은 신상품을 되파는 경우도 많아서 잘 찾아보면 신상품을 저렴한 가격에 '득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식의 변화 때문일까. 중고거래 이용자들의 연령대 폭은 점차 넓어지고 있다. 닐슨코리아클릭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으로 중고거래 앱 이용자를 연령별로 살펴본 결과 ▲40대 28% ▲30대 25% ▲50대 22% ▲20대 14% 등 순으로 나타났다.
닐슨코리아 클릭 측은 "최근 생활용품과 육아용품 판매에 중고거래 모바일 플랫폼이 유용하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4050 세대의 유입이 활발해진 모습이다"고 설명했다.
번개장터에서 거래되고 있는 품목들 [사진 제공 = 번개장터]
중장년층 뿐만 아니다. 국내에서 최초로 모바일 중고거래 서비스를 도입한 '번개장터'의 경우는 가입자의 84%가 'MZ세대'(밀레니얼 세대+제트 세대·1980년대 초반부터 2004년 출생한 세대)다. 이들의 거래액은 전체 거래액의 51%를 차지하며 명실공히 번개장터의 큰 손으로 자리매김했다.
번개장터 관계자는 "최근 중고거래가 '개인의 취향과 가치관이 반영된 합리적인 소비'라는 인식으로 변화하고 있다"며 "특히 MZ세대를 중심으로 자신의 개성과 가치관을 보다 직접 드러내는 '미닝아웃(Meaning Out)'이 소비의 한 가지 방법이 되면서 중고거래 시장도 더욱 커지고 있는 모양새다"고 말했다.
[방영덕 기자 byd@mkinterne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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