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핫이슈] 檢 섬겨야 할 대상은 권력이 아니라 국민이다
입력 2020-08-10 09:07  | 수정 2020-08-17 09:37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지난 7일 단행한 검사장급 이상 검찰 고위간부 인사를 놓고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추 장관은 이번 인사에 대해 "출신지역을 골고루 안배하고 원칙에 따라 이뤄진 인사"라며 "특정 학맥이나 줄 잘 잡아야 출세한다는 관행은 사라져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검찰 안팎에선 "현 정권과 대립각을 세워온 윤석열 검찰총장을 고립시키고 권력수사를 무력화하려는 속셈"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정권 핵심인사들이 연루된 수사를 열심히 한 검사나 정권에 쓴소리를 해온 검사들은 모조리 한직으로 좌천시키고 정권 입맛에 맞게 무리한 수사를 지휘한 충성파 검사들은 요직으로 승진시켜 출세를 보장해준 것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인사에서 법무연수원 기획부장으로 밀려난 뒤 사의를 표명한 문찬석 광주지검장은 검찰내부 통신망에 "'추미애 검사들'이니 하는 편향된 평가를 받는 검사들을 노골적으로 전면에 내세우는 이런 행태가 우려스럽고 부끄럽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문 지검장은 특히 추 장관을 겨냥해 "전국시대 조나라가 인재가 없어서 장평전투에서 대패하고 40만 대군이 산채로 구덩이에 묻혔느냐"며 "옹졸하고 무능한 군주가 무능한 장수를 등용한 그릇된 용인술 때문이었다"고 비꼬았다.
인사 전권을 휘두른 추 장관을 '옹졸하고 무능한 군주'로, 이번 인사에서 요직을 차지한 검사장들을 '무능한 장수'에 빗댄 것이다.
그는 또 채널 A기자의 강요미수의혹사건과 관련해 추 장관에게 "'차고 넘친다는 증거'는 어디에 있느냐. 증거들이 확보됐다면 한동훈 검사장은 지금 감옥에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채널A 수사 소동은 사법 참사"라며 추 장관 책임론을 제기했다.
그는 요직을 장악한 검찰 간부들을 향해선 "검사라고 불리지만 다 같은 검사가 아니다. 검사의 역량은 오랜 기간 많은 사건을 하면서 내공이 갖춰지는 것"이라며 "참과 거짓을 밝힐 역량을 갖추지 못했으면 검사의 자리에 있을 이유가 없다"고 쏘아붙였다.
문 지검장의 고언처럼, 검사의 사명은 공익의 대표자로서 진실을 밝혀 국법질서를 확립하고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여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검사윤리강령에 검사의 사명을 제1조에 규정한 것도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의 실현은 정권을 비호하고 권력에 줄서는 것이 아니라, 권력 비리를 일소하고 정권의 부조리를 척결하는 것이다.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의혹이나 윤미향 전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의 회계부정의혹 등에 대한 미온적인 수사에서 보듯, 검찰이 지금처럼 정권의 호위무사로 전락하면 존재할 이유가 없다.
권력비리의 파수꾼이자 심판자가 되야 할 검찰이 주어진 역할을 저버린 채 정의 실현을 외면하면 더 이상 검사가 아니다.
최근 법조계에서 현 정권 출범후 검찰 등 사법기관이 본연의 기능을 상실했음을 풍자하는 '법률용어집'이 돌고 있는 것도 이런 우려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검찰은 '칼을 갖고 옳은 사람을 억누른다'는 검찰로 비꼬는가 하면, 법무부 장관은 법이 있으나마나 할 정도로 썩어버린 꼴이 볼 만 하다는 의미의 '법무부 장관'(法無腐 壯觀)으로 조롱당하고 있다.
서릿발처럼 매서워야 할 검찰과 법무부에 대한 신뢰가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는 셈이다.
"선출된 독재권력이 중립적 역할을 해야 할 검찰 등 사법기관을 매수하는 것은 민주주의 제도를 허물고 집권을 연장하기 위한 술수"라고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지적했다.(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이들에 따르면 검찰이 본연의 독립성을 유지하게 되면 정부의 권력 남용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할 위험이 크다.
따라서 정권의 충신들이 검찰 등 사법기관을 장악해야 권력을 제어하기 위한 수사와 고발을 차단하고 권력자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렇게 되면 권력자는 마음대로 법을 어기거나 시민권을 위협하고, 심지어 수사나 감찰에 대한 걱정없이 헌법을 위반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권력자가 검찰이라는 심판을 매수해 법률을 차별적으로 적용함으로써 정적을 처단하고, 동지는 보호하는 강력한 무기를 손에 넣게 되는 셈이다.
이들은 권력의 대표적인 심판매수 사례로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 알베르토 후지모리 페루 전 대통령, 페론 아르헨티나 전 대통령, 차베스 베네수엘라 전 대통령 등을 적시했다.
권력의 속성상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위해 친여 성향의 인사들을 일부 중용하는 것은 불가피할 수 있다.
검찰 인사 역시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정도가 있는 법이다.
지난 1월에 이어 이번에 또다시 현 정권이 눈엣가시인 윤석열 총장을 고립무원의 처지로 몰아넣고 검찰조직을 길들이기 위해 노골적인 편향 인사를 단행한 것은 인사의 명분과 정당성을 얻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불신만 키울 공산이 크다.
민심에 어긋나는 이같은 인사 전횡은 집권 후반기 정권 지지율을 갉아먹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
강민구 서울고법 부장판사의 일침처럼, 지지자 숫자만 염두에 두고 모든 것을 힘으로 밀어붙이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정권'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더 이상 독단적인 인사에 집착해선 안된다.
검찰은 국가가 있는 한 계속 존재하지만 정권은 영원할 수 없다.
이번에 요직을 차지한 검찰 간부들이 충성을 맹세하고 섬겨야 할 대상은 살아있는 권력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주권자인 국민들이다.
검사로서의 소명의식과 양심이 남아 있다면 이제라도 국민에게 부끄럽지 않는 떳떳한 행보를 보여줘야 한다.
그렇지 않고 또다시 권력 비위를 맞추고 굴종하는 모습을 보이면 검찰 흑역사의 장본인으로 남게 될 수도 있다.
[박정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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