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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시대 MLB, 선수들의 `비디오 시청`을 許하라 [김재호의 페이오프피치]
입력 2020-08-10 05:55 
최지만은 이번 시즌 변화된 것 중 가장 어려운 것으로 비디오 분석에 대한 접근 제한을 꼽았다. 사진= MK스포츠 DB
매경닷컴 MK스포츠(美 알링턴) 김재호 특파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진행되고 있는 2020시즌 메이저리그, 많은 것들이 변했다. 관중들로 가득해야 할 관중석에는 관중들의 모습이 찍혀 있는 판자들이 가득하다. 경기 일정은 막장드라마 쪽대본처럼 바뀌기 일쑤고, 간혹 감염 소식이 터져나오며 긴장감을 키우고 있다. 확장로스터, 내셔널리그 지명타자, 7이닝 더블헤더, 승부치기 등 이전에는 감히 도입하지 못했던 규정들이 새롭게 적용되고 있다.
실로 엄청난 변화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큰 변화는 따로 있다. 바로 '비디오 분석의 차단'이다.
메이저리그는 2020시즌 경기 도중 선수들이 경기 영상 자료에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이전에는 경기 도중에도 수시로 비디오 분석실에서 경기 내용을 분석하며 변화를 줬다면, 이번 시즌에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클럽하우스 내에서 공용 컴퓨터 사용도 금지했다. 비디오 분석에 제한을 둔 것.
이는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 번째는 코로나19 방역 차원의 조치다. 좁은 비디오 분석실에 여러 선수가 모이거나 한 컴퓨터를 여러 선수가 돌아가며 사용하는 것을 방지해 코로나19 전파를 막겠다는 의도가 있다. 경기 도중뿐만 아니라 경기 전후로도 비디오 분석실이나 컴퓨터를 함께 사용하는 것을 금지했다. 팬데믹 이전 메이저리그 클럽하우스에 비디오 분석을 위한 컴퓨터가 세팅돼 있고, 선수들이 이를 이용해 경기 내용을 분석했다. 이같은 과정을 금지한 것. 선수들은 개인에게 지급된 태블릿PC만 이용 가능하다.
나머지 하나는 지난해 메이저리그를 뒤흔든 휴스턴 애스트로스 사인 스캔들의 여파다. 애스트로스 선수단은 지난 2017년 비디오 분석실에서 상대 사인을 해독, 쓰레기통을 두들기는 방식으로 타자에게 사인을 전달한 것이 뒤늦게 밝혀졌다. 이후 비디오 분석실을 클럽하우스와 분리시켜야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경기 도중 비디오에 대한 접근을 막은 것은 이 사태의 영향이 크다.
이같은 변화를 환영하는 이도 있다. 텍사스 레인저스 내야수 토드 프레이지어같은 전형적인 '올드스쿨' 선수들은 이를 반기고 있다.
그는 취재진과 가진 인터뷰에서 "정말 마음에 든다. 덕분에 타자들이 더 자주 모이게 됐다. 이게 야구다. 고등학교, 대학교, 마이너리그 때는 어떤 정보도 주어지지 않지 않은가. 우리는 그동안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비디오가 아닌 말로 정보를 주고받는 것을 원한다. 그러면 팀원들 사이 유대 관계도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특히 젊은 선수들은 비디오만 쳐다본다고 3할 타율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경기 자체에 집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모든 선수가 이같은 의견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은 반대 의견이 조금 더 많다. 바야흐로 데이터의 시대다. 메이저리그에도 데이터 야구가 대세로 자리잡았다. 경기 전후, 도중 이뤄지는 비디오 분석은 많은 메이저리거들에게 일상이 됐다. 그 일상을 뺏겼으니 불편한 것은 당연지사.
보스턴 레드삭스 지명타자 J.D. 마르티네스가 대표적이다. 그는 '디 어슬레틱'과 인터뷰에서 "이것은 내 루틴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며 경기 도중 비디오 자료를 보지 못하게 한 것에 대해 말했다.
그는 시즌 첫 50타수에서 타율 0.244 OPS 0.720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론 로니키 보스턴 감독은 "그는 경기 도중 비디오를 보지 못하게 한 것에 대해 절망하고 있다. 지명타자를 하면 경기에 뛰지 않을 때는 뭔가를 해야한다. 계속 벤치에 앉아 있을 수는 없다. 배팅 케이지에서 훈련을 하지만, 비디오도 본다. 그는 어떤 선수든 스윙을 분석할 수 있는 얼마 안되는 선수 중 한 명이다. 그런 그에게 비디오 분석을 못하게 한 것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메이저리그는 이번 시즌 클럽하우스내 비디오 분석을 위한 공용 컴퓨터 사용을 금지했다. 류현진도 등판 준비에 어려움이 있음을 인정했다. 사진= MK스포츠 DB
탬파베이 레이스의 최지만도 "그것이 지금 가장 크게 작용하고 있는 거 같다"며 입을 열었다. 그는 "경기 도중에도 내가 투구를 놓친 건지, 심판이 잘못 판정한 것인지, 공을 어떻게 쳤는지를 계속해서 봐왔다. 그게 갑자기 바뀌어서 말그대로 '멘붕(멘탈 붕괴의 줄임말)'이 왔다"며 경기중 비디오 분석 금지가 미치는 영향에 대해 말했다.
그의 말은 계속된다. "그날 경기 비디오도 집에 가서 보라고 한다. 집에 갈 때는 경기를 마무리짓고 편하게 가야하는데 집에까지 (영상을) 갖고 가면 경기 생각을 해야한다." 밀린 일거리를 잔뜩 안고 퇴근길에 오른 직장인이라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말이다. 그는 "평소랑 많이 달라 혼돈이 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타격코치와 작년 영상을 보고싶다고 했지만 '볼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것 때문에 부진도 길게 이어지는 거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최지만은 10일 경기전까지 13경기에서 44타수를 소화하며 타율 0.189 OPS 0.674를 기록중이다.
타자들만 어려운 것이 아니다.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류현진은 "투수들이 더 어려울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평소에는 투수코치, 포수와 게임 플랜을 짜기에 앞서 상대 타자들의 영상을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대책을 준비해왔다. 그러나 영상 분석 단계가 막히면서 경기 준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그는 "그래도 투수코치와 준비를 잘해야 한다"며 상황에 맞게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팬데믹은 모두에게 익숙했던 많은 것들을 뺏어갔다. 메이저리그 선수들도 많은 익숙한 것들을 포기하며 시즌을 치르고 있다. 어쩌면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고 일자리를 잃고 있는 이 현실속에서 자신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밥벌이를 할 수 있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축복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선을 넘지 않는 수준에서' '그들의 일상을 비슷하게 유지해줄' 대안은 필요하다고 본다.
전혀 손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디 어슬레틱에 따르면, 메이저리그는 경기 도중에도 선수들이 태블릿PC를 이용해 영상에 접근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최대한 빨리 준비할 예정이다. 사인 훔치기를 방지하기 위해 사인이 들어간 부분은 편집될 예정이다.
페이오프피치(payoff pitch)는 투수가 3볼 2스트라이크 풀카운트에서 던지는 공을 말한다. 번역하자면 결정구 정도 되겠다. 이 공은 묵직한 직구가 될 수도 있고, 때로는 예리한 변화구가 될 수도 있다. 이 칼럼은 그런 글이다. greatnemo@maekyung.com[ⓒ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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