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핫이슈] 전세의 두얼굴, 천사와 악마?
입력 2020-08-04 10:28  | 수정 2020-08-11 10:37

중장년층은 누구나 한번 쯤 전세를 살아봤을 것이다. 고약한 집주인을 만나 2년마다 집을 옮기고 턱없이 높은 상승분을 요구받는 이들도 있겠지만 내 경우는 대부분 좋은 집주인을 만났고, 크게 올려주지않고 한 집에 6년을 살기도 했다.
전세는 한국에만 있는 제도다. 금융이 발달하지 못했던 과거에 시작된 사금융으로 집주인은 이자없이 목돈을 받을 수 있고, 세입자 역시 매달 돈을 내지않고 살다가 이사갈 때 고스란히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어 서로 상생이 됐다. 월세 전환율이 4%인 것을 감안하면 세입자 입장에서는 2%대로 은행에서 전세대출을 받아 들어가도 돈을 절약할 수 있다. 전세사는 동안 저축한 돈과 전세보증금을 합쳐 집을 사는게 일반적인 내집마련 코스였다.
외국인들은 집주인이 손해인 이 제도가 유지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영화배우 안젤리나 졸리는 지난해 연세대학교에 입학한 아들을 위해 집을 구하면서 전세계약을 맺었는데 거주 후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아해 했다는 후문이다. 전세가 유지돼온 것은 집주인들이 전세보증금으로 집을 사고 집값이 상승했기에 가능했다. 집값이 오른다는 전제 아래 성립되는 제도인 것이다.
전세가 서민들에게 싸게 주거공간을 제공해주는 순기능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집값을 폭등시킨 갭투자의 밑천이 된 것이 바로 전세금이다. 특히 전세가율이 80~90%로 올라갈 때 갭투자가 기승을 부렸다. 전세는 천사와 악마라는 두개의 얼굴을 갖고 있는 것이다.

집값 상승이 잠잠해시면 집주인들은 전세금을 올려 보전받고 싶어한다. 이번에 시행에 들어간 주택 임대차 법은 2+2로 거주기간을 늘리고 5% 인상이라는 허들을 둬 집주인들로서는 악재인 셈이다. 서울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84㎡)의 경우 2018년 12월 입주때 물량이 넘치면서 전세가 6억원이었지만 최근에는10억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기존 계약자들의 전세금은 5%(3000만원) 밖에 올릴 수 없는 상황이다. 기존 계약자들은 눌러 살 수 있어 좋지만, 새로 임대차시장에 들어오는 신혼부부 등은 줄어든 매물때문에 비싼 가격을 치러야 하는 문제도 발생한다.
게다가 기준금리가 0.5%로 하락하면서 월세전환에 대한 수요는 더 커지고 있다. 전세소멸론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다.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월세사는 세상이 나쁜게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이는 국민의 삶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월세는 전세에 비해 주거비용이 훨씬 크고, 소득이 적은 서민들에게는 더 그렇다.
전세가 갭투자의 주범이라지만, 인위적인 규제에 의해 급격하게 사라지는 것은 서민들에게 여간 충격이 아니다. 정치인들이 책상머리에서가 아니라 서민들의 주거행태에 깊숙히 들여다보고 제도를 만들어야하는 이유다.
[심윤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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