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한국산 커피 아시나요? 국내 최대 커피농장을 가다
입력 2020-08-02 06:01 
전남 화순군에 위치한 두베이커피 농장 내부 모습. 가운데 포대자루 안에는 커피 잎과 줄기, 돈분 등을 섞어 만든 유기농 퇴비가 있다. [사진 = 정혁훈 기자]

"우리나라에 커피 농장이 있다구요?" 커피 농장에 다녀왔다는 말에 지인은 이렇게 되물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국내에 대략 50~60여 곳 커피 농장이 있는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대부분 체험형 농장이어서 규모가 수백평대 이하로 크지 않다. 그런데 전남 화순군에 가면 총면적 5500평 규모 커피 농장이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인 두베이커피 농장이 바로 그곳이다.
낮 기온이 30도를 오르내리는 날 이 농장을 찾았다. 유리온실 안에 커피나무가 빽빽히 심어져 있다. 커피는 주로 열대지방에서 자라는 것이니 온실 내부 온도가 딱일 거라고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이 농장을 운영하는 두베이커피연구소 차상화 대표(50)는 "이 곳에서 키우는 아라비카 커피는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고산지대가 원산지"라며 "이 커피나무는 통상 섭씨 10~15도에서 꽃을 피우며, 아무리 더워도 30도를 넘으면 좋지 않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차 대표는 자체 개발한 시스템으로 유리온실 내부 온도를 낮추고 있었다. 공중으로 안개 입자의 물을 분사한 뒤 팬을 통해 내부 공기를 바깥으로 뽑아내면 상부의 뜨거운 공기를 머금은 수분이 밖으로 빠져 나가면서 내부 온도를 낮추는 방식이다. 에어컨을 사용하는 것보다 비용이 훨씬 저렴하게 든다. 차 대표는 "커피나무는 기온이 5도 밑으로만 떨어지지 않으면 되기 때문에 겨울이라도 난방비는 거의 들지 않는다"며 "안개 분사 방식을 통해 여름철 냉방비를 크게 절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차상화 두베이커피연구소 대표가 유리온실로 만들어진 커피농장 안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 정혁훈 기자]
이 곳에선 현재 커피나무 2만2000그루가 자라고 있다. 여기서 수확하는 커피는 체리(커피열매) 상태로 연간 10t 정도다. 차 대표는 물량 전체를 스페셜 등급 커피로 생산하는 게 목표다. 그가 5년전 처음으로 커피농장을 시작한 이유도 고급커피에 대한 꿈이 있기 때문이다. 차 대표는 "가격을 맞추기 위해 생산지와 수확 시기, 등급조차 모르는 커피를 혼합한 저가커피와 경쟁을 하고싶은 생각은 없다"며 "이 곳에서 생산된 커피가 해외에서 알아주는 스페셜 커피 대열에 들어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연구하고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커피를 재배하려면 온실 내부에서 고산지대 기후를 구현하는 게 핵심이다. 차 대표는 "토양과 양분, 온도, 습도 등 여러 환경 인자를 고산지대와 비슷하게 제어하면서 우기와 건기를 각각 1년에 4차례 인공적으로 만들어준다"며 "1년에 4차례 커피나무 꽃을 피우면서 수확시기를 조절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라비카 종은 90%이상 자가수분을 하기 때문에 토마토 등을 재배할 때처럼 벌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커피나무 열매가 빨갛게 익어 있다. 체리를 닮았다고 해서 `커피 체리`로도 불린다. 실제로 체리처럼 달콤한 맛이 난다.[사진 = 정혁훈 기자]
일부 나무에선 커피 열매가 빨갛게 익고 있었다. 모양이 꼭 체리를 닮아 '커피 체리'로도 불린다. 하나 따서 맛을 보니 체리처럼 달콤하다. 그 안에 씨앗이 2개 들어있다. 이 씨앗이 바로 커피다. 차 대표는 "많은 사람들이 커피 모양을 보고는 콩의 일종으로 생각하는데 사실 커피는 콩이 아니라 씨앗"이라며 "이 씨앗을 물에서 젖산 발효 후 건조하거나 체리 상태로 발효건조하는 등 과정을 거친 뒤 로스팅하면 우리가 내려 먹을 수 있는 커피가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두베이커피가 보유하고 있는 '특별 기술'이 들어간다. 커피 발효 때 호기성 미생물을 활용하는 것이다. 호기성 미생물은 공기로 숨을 쉬고 이산화탄소를 내뱉는 미생물을 일컫는다. 차 대표는 "이를 활용해 발효하면 커피성분이 미생물에 의해 저분자화되면서 커피의 맛과 향이 더욱 특별해진다"고 말했다.
이런 기술이 가능한 것은 차 대표가 호기성 미생물 분야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차 대표는 지금도 호기성 미생물을 활용한 환경정화시스템 업체와 관련 연구소를 주업으로 운영하고 있다. 차 대표는 "영농조합법인 마이크로맥스를 운영하던 중 회사가 보유한 자연순환 미생물 기술과 결합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농업에 뭐가 있을지 고민하다가 커피 재배를 생각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 농장은 특히 자연순환 유기농법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 떨어진 커피나무 잎이나 가지를 수거한 뒤 돈분 등과 섞어 유기농 퇴비를 만들어 쓴다. 차 대표가 직접 고안한 인자제어 퇴비화 장치를 이용해 불과 열흘만에 퇴비를 완성한다. 차 대표는 "일반 유기농 퇴비는 만드는데 수개월이 걸리는 게 보통이지만 우리는 미생물 발효 기술을 활용해 열흘만에 악취 없는 기능성 퇴비를 완성한다"며 "이런 자연순환 농법을 바탕으로 국내 커피 농장 중에는 처음으로 농산물우수관리(GAP) 인증도 받았다"고 말했다.
커피농장 인근에 있는 두베이커피플랫폼에서 국가대표 바리스타 출신인 김수민 매니저(맨 오른쪽)가 드립 방식으로 커피를 만드는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사진 = 정혁훈 기자]
이 곳 농장에서 생산된 커피는 프리미엄 커피숍으로도 일부 공급되지만 주로 자체 브랜드 두베이 커피숍에서 소화된다. 두베이는 커피를 상징하는 두(豆)와 평지를 뜻하는 베이(Bay)의 합성어로 고산지대의 커피 맛을 평지에서 구현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차 대표는 농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두베이커피플랫폼도 운영하고 있다. 드립커피 전문점인 이 곳에선 스페셜 커피를 한 잔에 8000원~1만5000원에 판매한다. 높은 가격에도 커피 매니아들이 많이 찾는다.
커피숍 안엔 작은 갤러리 공간이 있어 경제적으로 어려운 작가들에게 무료로 공간을 제공하기도 한다. 여러 작가들 그림과 도자기 등을 감상할 수 있고, 별도 공간에서 커피관련 교육도 받을 수 있다. 커피로 석사 학위를 받은 차 대표를 비롯해 국가대표 바리스타 출신인 김수민 매니저 등이 전문가는 물론 일반인을 대상으로 커피 교육을 실시한다. 주변 농가에서 재배한 농산물을 대신 판매해주는 작은 판매대도 있다. 차대표는 "단순히 커피를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 커피를 매개로 지역 주민과 농민, 관광객들과 서로 교류하면서 다양한 문화를 접하게 한다는 뜻에서 플랫폼이라 이름 지은 것"이라고 말했다.
차상화 두베이커피연구소 대표가 작은 갤러리와 인근 농산물 판매대 등을 갖춘 커피플랫폼 안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 = 정혁훈 기자]
차 대표는 새로운 꿈을 펼치고 있다. 커피전문 교육기관을 설립해 다양한 커피 전문가를 육성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화순에 위치한 본사 건물 뒤편에 1만평 땅도 확보했다. 환경영향평가가 끝나는 대로 설계안을 확정 짓는다는 계획이다. 차 대표는 "커피가 해외에서 들어오다 보니 품질이나 맛 등의 등급 기준을 전부 외국에 의존하는 등 우리나라 커피 산업이 제대로 크지 못하고 있다"며 "보다 전문적인 커피 교육기관을 만들어 한국 커피 산업을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발전시키는데 일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혁훈 농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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