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소설 환불·젊은작가상 반납' 사태…사적대화 노출에서 시작
입력 2020-07-22 08:30  | 수정 2020-07-29 09:04

사적인 대화를 무단으로 소설에 인용해 사생활을 침해했다는 논란이 결국 해당 작품의 회수 및 환불과 문학상 반납 사태로까지 이어졌습니다.

도서출판 문학동네와 창비는 지인들과 나눈 사적인 대화 내용을 소설에 인용해 논란을 부른 김봉곤의 모든 소설 작품을 회수하고 이미 구매한 독자에게는 환불해준다고 어제(21일) 밝혔습니다.

환불 대상 도서는 단편 '그런 생활'이 실린 소설집 '시절과 기분'(창비)과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단편 '여름, 스피드'가 실린 소설집 '여름 스피드'(이상 문학동네)입니다.

문학동네는 또 김봉곤이 전해온 제11회 젊은작가상 반납 의사를 수용하기로 했습니다.


작품 내용이나 작가의 처신과 관련한 논란으로 이미 시중에 팔린 문학 서적을 전량 회수하고 환불해주는 동시에 해당 작품으로 받은 문학상까지 반납하는 사태는 국내 문학계에서 처음 있는 일로 전해졌습니다.

한 출판계 관계자는 "독자가 가져간 소설책을 환불해주는 것은 처음 보는 일이고, 기성 작가가 받은 문학상을 반납한 사례도 내 기억엔 없다"고 했고, 한 문학평론가도 "내가 기억하기로 이런 일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출판계에 따르면 소설가 신경숙의 표절 문제가 대형 논란으로 커졌을 때도 관련 소설책을 환불하는 조치까지는 가지 않았습니다.

이번 사태는 지난 2015년 신경숙이 단편 '전설'에서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활동을 중단해야 했던 일 이후 문학 작품의 창작 윤리와 관련해 발생한 가장 큰 사건입니다.

작가와 출판사가 피해자임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항의에 미온적으로 대처하면서 일을 더 키웠다는 지적도 적지 않습니다.

특히 피해자 외에도 젊은 작가와 독자들이 나서 작가와 양대 문학 출판사의 소극적인 대응에 분노하면서 사생활 침해와 관련한 '작가 윤리 문제'를 강하게 제기한 것은 주목할 부분입니다.

일부 독자와 작가 사이에선 문학동네와 창비에서 발간하는 책 구매나 원고 청탁을 거부하자는 움직임까지 일 정도였습니다.

이번 논란은 지난 10일 자신이 '그런 생활'에 등장하는 'C 누나'라고 밝힌 여성이 자신이 김봉곤에 보낸 성적인 내용의 카카오톡 메시지가 소설에 그대로 인용됐다고 폭로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이어 지난 17일엔 자신이 '여름, 스피드'에 등장하는 '영우'라고 밝힌 한 남성도 과거 김봉곤에게 보낸 메시지 내용이 동의 없이 소설 도입부에 인용돼 정신적으로 큰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면서 파문이 확산했습니다.

'그런 생활'이 가장 먼저 실렸던 문학과지성사의 발 빠른 대응은 문학동네, 창비가 보였던 행보와 대조됩니다.

2019년 계간 '문학과 사회'에 '그런 생활'을 게재한 문학과지성사는 'C누나'로 알려진 여성이 초기에 문제를 제기하자 일찌감치 온라인 서비스에서 '그런 생활'을 삭제했습니다.

작가가 주변 인물을 소설 속에 등장 시켜 사생활과 사적 권리를 침해했다는 논란은 과거에도 종종 있었습니다.

프랑스 작가인 아니 에르노는 '날 것 그대로'를 표방하며 자신의 사생활을 소재로 자전적 소설을 쓰는 대표적 인물입니다. 재일교포 작가 유미리는 1999년 소설 '돌에서 헤엄치는 물고기'에 친구를 등장시켰다가 사생활 침해로 피소돼 출판금지 조치와 함께 금전적 배상까지 해야 했습니다.

반대로 공지영의 경우 가족사를 바탕으로 쓴 장편소설 '즐거운 나의 집' 연재에 앞서 전 남편이 사생활 침해를 이유로 이를 막으려는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법원은 공지영 손을 들어줬습니다.

동성애자임을 밝힌 김봉곤은 2016년 등단 이후 동성애를 주제로 한 사소설(私小說) 형태의 작품을 써왔는데, 이를 스스로 '오토 픽션'이라고 불러왔습니다. 김봉곤은 이날 오전 공식 입장문을 통해 피해자와 독자, 출판사와 동료 작가들에게 사과하고 젊은작가상을 반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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