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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스發 `글로벌 가전시장` 새판짜기…삼성·LG, 수조원 베팅할까
입력 2020-07-20 17:52  | 수정 2020-07-20 20:11
글로벌 기업인 필립스가 주방가전, 커피머신, 다리미, 청소기 등 소형가전제품 사업을 담당하는 '더메스틱 어플라이언스'사업부 매각을 추진한다. 필립스가 이 사업부 매각을 검토하는 것은 의료기기, 개인건강 솔루션 등 '선택과 집중' 전략을 통해 헬스케어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다.
필립스가 해당 사업부를 매각하려는 움직임은 올해 초부터 감지됐다. 필립스는 지난 1월 소형가전사업부를 별도 법인으로 분리하는 작업에 착수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사업부 소유권에 대한 옵션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당시 프란스 반 하우턴 필립스 최고경영자(CEO)는 "가전 사업이 필립스 실적에 큰 기여를 했지만 헬스케어 기업으로 가기 위한 우리의 미래에 전략적으로 맞지(fit) 않는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필립스 본사는 네덜란드에 있으며 소형가전사업부에는 전 세계에서 4700여 명이 근무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루마니아, 중국, 인도, 이탈리아, 브라질, 인도네시아 등에 공장을 가동 중이며 인도, 홍콩, 싱가포르, 이탈리아 등에서 제품 연구개발(R&D)을 진행 중이다. 필립스 가전 사업은 개인건강사업부에 속해 있다.
가전 사업 최대 매출처는 43%를 차지하고 있는 유럽 지역이며, 아시아·태평양(15%), 중국(14%), 인도(7%) 등이 뒤를 잇고 있다. 필립스는 1891년 전구를 만드는 회사로 출발해 생산 품목을 생활가전, 의료기기 등으로 확대해왔다.

하지만 의료기기 사업에 전념하기 위해 2013년 오디오·비디오 사업을 일본 후나이전자에 1억5000만유로에 매각했으며 2016년에는 조명기기사업부도 분사해 30억유로 가치에 IPO를 진행해 지분을 정리하기도 했다.
필립스가 한국에서 소형가전 사업 매각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은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글로벌 가전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기업들이 있을 뿐만 아니라 SK네트웍스 계열사가 된 SK매직과 넷마블에 인수된 코웨이 등 자금력이 비교적 풍부한 것으로 평가되는 생활가전 기업이 포진해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특히 삼성전자나 LG전자는 소형주방가전 및 생활가전 사업을 영위하지 않고 있어 매각 대상 사업과 겹치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글로벌 가전시장 최대 격전지인 북미시장에서는 수위를 다투고 있지만 유럽 가전시장에서는 북미만큼 영향력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랙라인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해 미국 생활가전시장 브랜드별 점유율에서 20.5%를 기록해 4년 연속 1위에 올랐다.
LG전자도 점유율 16%로 미국 가전 기업인 월풀(16.8%)에 이어 3위를 기록하고 있다. 국내 기업의 필립스 소형가전 사업 인수 가능성은 미지수라는 분석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신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글로벌 인수·합병 시장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시스템 반도체나 전장부품, 5G 등 미래 사업이 주요 대상일 가능성이 높다.
가전이 핵심 사업인 LG그룹은 구광모 회장 취임 이후 공격적인 인수·합병과 자산 매각으로 올 1분기 말 현금 및 현금성자산 기준 약 16조원의 실탄을 장착하고 인공지능(AI), 로봇 등 신사업 투자에 속도를 내고 있다. 잘하고 있는 분야를 더욱 강화하고 미래 먹거리를 발굴한다는 게 구 회장 체제 LG그룹의 사업 전략인 만큼 가전 사업 강화를 위한 베팅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LG전자는 생활가전 사업에서 글로벌 1위인 월풀을 꺾고 가전 기업 매출액 1위 기업으로 올라서겠다는 목표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왔다. LG전자의 가전 사업을 담당하는 H&A사업본부는 지난해 약 21조5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월풀(약 23조5000억원)에 아깝게 1위 자리를 내줬는데, 필립스의 가전 사업 매출액을 더하면 월풀을 단숨에 제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투자은행(IB)업계에서는 필립스 측의 거래 희망가가 수조 원에 달해 국내 기업들이 선뜻 거래에 나서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다. IB업계 관계자는 "필립스 측 매각 희망 가격이 수조 원에 달해 국내 잠재 인수 후보들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국내 가전업계에서도 삼성전자나 LG전자가 필립스 소형가전 사업에 관심을 보일 가능성에 대해 높지 않게 보는 분위기다. 두 회사는 대형 가전시장에서의 확고한 우위를 바탕으로 프리미엄 전략을 강화하고 있고, 유럽시장에서는 빌트인 가전시장을 적극 공략하며 유럽 업체들과의 경쟁을 본격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립스의 소형가전 사업을 인수하면 유럽 소형가전시장 강자로 단숨에 올라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필립스 소형가전 부문 매출액 가운데 43%가 유럽에서 발생했다"며 "또한 전체 매출의 15%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나와 두 번째로 높은 비중을 차지했는데, 성장성이 높은 중국, 인도 등 아시아시장 수혜도 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강두순 기자 / 전경운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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