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핫이슈] 여권 편향적인 `사법의 정치화` 우려스럽다
입력 2020-07-20 09:13  | 수정 2020-07-27 09:37

이재명 경기도지사에 대한 무죄확정판결을 비롯해 은수미 성남시장의 당선무효형을 뒤집은 판결, 소위 '검언유착'의혹에 연루된 이동재 전 채널A기자의 구속영장 발부 등이 잇따르면서 사법의 정치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법부가 여권에는 춘풍같은 관대한 처분을 내리면서 현 정권이 개혁 대상으로 낙인찍은 언론과 검찰에 대해선 추상처럼 엄벌에 처하는 것은 법의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지난 16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이재명 지사의 선거법위반혐의(허위사실공표)에 대해 무죄판결을 선고한 것은 선거운동과정의 TV토론에서 '표현의 자유'를 확장한 측면도 있지만, '거짓말해도 되는 자유'를 넓게 인정했다는 비난도 적지 않다.
현 대법원은 진보성향인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이후 '코드 사법부'로 불릴 만큼 여권에 우호적인 대법관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사건에서 무죄 취지 입장을 밝힌 낸 대법관은 7명에 그친 반면, 유죄 취지 의견을 낸 대법관은 5명이나 나온 것은 그만큼 선거의 본질적 역할과 공정성에 대한 우려가 컸다는 반증이다.
사실상 대법관 한 명의 의견만 바뀌었어도 이 지사의 정치적 운명과 희비가 180도 달라질 수도 있었던 셈이다.
정치자금법 위반혐의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은 은수미 성남시장이 지난 9일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로 가까스로 기사회생한 것도 비슷하다.
대법원은 "검사가 항소이유로 '양형 부당'이라고만 적고 구체적인 사유가 없어 양형부당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며 "그런데도 항소심이 1심보다 무거운 형을 선고한 것은 피고인만 항소한 재판에서 불리한 선고를 못하도록 한 불이익변경 금지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했다.
하지만 검찰이 재판부에 써낸 항소 이유서의 '절차적 흠결'을 이유로 대법원이 항소심 판결까지 뒤집은 것은 선뜻 납득하기 힘들다.
법조계 안팎에서 "이 지사와 은 시장에 면죄부를 주려고 결론을 정한 뒤 법리를 비틀어 기교적 판결을 내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각에선 "최소한 대법원 판례를 변경할 때는 단순 다수결 대신 '3분의 2 이상' 찬성을 요하는 등의 보완책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검언 유착'의혹과 관련해 강요미수 혐의를 받고 있는 이동재 전 기자에 대해 서울중앙지법이 구속 영장에도 없는 '검찰 고위 간부와 공모관계'를 전제로 영장을 발부한 것도 논란거리다.
영장전담 판사는 "언론과 검찰의 신뢰 회복을 위해서라도 구속수사가 불가피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 기자의 변호인은 "수사팀 스스로도 이 기자의 단독 범행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데 영장 재판부가 '검언유착'이 있었음을 전제로 사안이 매우 중대하다고 판단한 것은 이례적"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검사가 기소하지 않은 부분은 법원이 판단하지 않는다는 불고불리(不告不理)원칙에 반한 결정이라는 것이다.
지방의 한 부장판사도 "영장 발부 사유를 길게 적시하는 것도 부적절하지만 그 내용도 혐의를 단정하고 있다"면서 "친정부 여론에 겁을 먹었거나 지나치게 정치적 판단을 한 결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법원이 지난 5월 대통령을 '형'으로 부른다는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의 뇌물 수수혐의는 인정하면서도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해 풀어준 것이나, 여성 직원에 대한 성추행 혐의를 받는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것도 이런 사법의 정치화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 4월 총선을 앞두고 전·현직 판사들이 대거 여권으로 직행하면서 사법부가 정치에 예속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쏟아졌는데 바야흐로 현실이 된 셈이다.
집권 여당이 입법부까지 장악한 마당에 법과 정의의 최후 보루인 사법부마저 균형과 중심을 잃고 정권에 치우치면 법치 수호가 제대로 될 리 없다.
사법부 신뢰도 조사에서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하위권을 맴도는 것은 법원이 정치적 외압에 꼿꼿이 맞서기보다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일선 판사들이 자꾸 정권 눈치를 보거나 여권 지지층에 휘둘리게 되면 법적 안정성이 형해화하고 형평성도 무너질 수 밖에 없다.
지금은 딸각발이 남산골 선비처럼 올곧은 지조와 의기가 필요한 때이다.
오직 양심과 법률에 따라 엄정한 판결을 내려야 추락한 사법부의 신뢰와 위상도 되찾을 수 있다.
20세기초 미국 연방대법원의 벤자민 카르도조 대법관은 퇴임하면서 "법관 재임중 중립적이었다고 생각한 판결은 나중에 보니 강자에게 기울어진 판결이었고, 재임중 약자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렸다고 한 것은 나중에 보니 중립적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만큼 판결의 자의성과 편향성을 따끔하게 경계한 것이다.
사법부가 이제라도 겸손하고 진실된 자세로 사건에 대해 어떤 두려움이나 호의없이 공평무사한 판단을 내리길 바란다.
[박정철 논설위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