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규제 나오면 더 올라"…30代 `패닉바잉`에 서울 집값 신고가 행진
입력 2020-07-09 17:33  | 수정 2020-07-09 20:44
서울 롯데월드타워 전망대에서 바라본 아파트 전경. 9일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6일 기준)에 따르면 이번주 서울 아파트 매매가 상승률은 0.11%를 기록해 상승폭이 확대됐다. [김재훈 기자]
◆ 혼돈의 부동산시장 ◆
#직장인 권 모씨(35)는 최근 이른바 '영끌 대출'로 성북구 길음동의 한 아파트를 8억원대 신고가로 매수했다. 3년여 전부터 내 집 마련을 고민하던 권씨는 집값을 잡겠다는 정부 말만 믿고 전세로 살며 돈을 모으고 있었다. 그러나 21차례의 대책에도 천정부지로 치솟는 서울 집값에 불안감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신용대출에다 사내대출, 양가 부모님께 빌린 돈까지 합쳐 매수를 결정했다. 권씨는 "전세살이 3년을 하다가 폭등한 가격에 경악하고 늦게나마 내 집 마련이 절실했다"며 "3년 전에 비해 같은 단지 집값이 2억원 이상 올랐지만 모은 돈은 약 6000만원밖에 되지 않아 더 늦기 전에 내 집을 마련하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6·17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서울 전역 주요 단지에서 신고가 행진이 벌어지고 있다. 강력한 대책이 나왔는데도 역대급 '불장'이 펼쳐지고 있는 것은 그간 정부 대책이 나올 때마다 집값이 더 올라 규제에 되레 불안해하는 실수요자들이 내 집 마련에 나서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지금까지 대책 내용이 세제 강화, 대출 규제 등 주로 수요 옥죄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집을 구하는 것이 더 어려워지기 전에 집을 마련하려는 30대들이 적극 움직이고 있다. 여기에 6·17 대책으로 전국을 규제로 꽁꽁 묶자 수도권 규제가 평준화되며 시중의 넘치는 유동성도 다시 '상급지'인 서울로 이동하는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그간의 정책 방향성이 잘못됐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목소리로 지적하고 있다. 다음 대책에선 공급 확대, 실수요자 지원 위주로 정책 방향성을 크게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9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서울 마포구 마포래미안푸르지오 전용 84㎡형은 지난달 27일 17억원에 실거래됐다. 이는 같은 타입 전고가보다 무려 1억3000만원이나 한꺼번에 오른 가격이다. 마포구 중개업소 관계자는 "매물이 한 번 팔리면 그 가격이 곧 새로운 시세가 돼버리니 집주인들은 매수자가 나타나도 계약금 넣을 계좌를 안 알려주고 일단 버틴다"며 "최근 전셋값이 많이 올라 자금 부담이 줄어든 갭투자자들의 연락도 많이 온다"고 말했다.
강북권에선 주로 신축 아파트나 교통 호재가 있는 지역 대단지가 가격 상승을 주도하고 있다. 성북구 길음역금호어울림센터힐은 전용 84㎡가 9억2500만원에 거래되며 전고가보다 1억4500만원 올랐다. 은평구 은평스카이뷰자이 전용 84㎡ 매물도 10억3000만원에 거래되면서 처음으로 10억원 천장을 뚫었다.
10일부터 강화되는 전세대출 규제(3억원 초과 아파트 신규 매입 시 전세대출 회수)를 피하기 위한 막판 매수세가 몰리며 금관구(금천·관악·구로) 등 서울 외곽 9억원 이하 중저가 아파트도 초강세를 보였다. 지난 3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 관악푸르지오 전용 84㎡가 직전 최고가보다 7000만원 오른 8억9500만원에 거래돼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강남권이다. 강남권이 많이 오르면서 서울 집값이 지난주 0.06% 상승에서 두 배 가까운 0.11%로 상승폭을 넓혔다. 강남(0.03→0.12%), 송파(0.07→0.18%), 서초(0.06→0.10%) 등 강남 3구에서 거래허가구역(잠실·삼성·청담·대치동) 지정을 피한 인근 단지들이 대거 올랐다. 강남구 도곡렉슬 전용 84㎡는 지난 3일 26억5500만원에 거래돼 신고가를 갈아치웠다. 이 단지 전용 84㎡ 호가는 현재 28억원까지 올랐다. 서초구 서초동롯데캐슬리버티 전용 84㎡도 지난 1일 14억9900만원에 거래돼 전고가보다 무려 3억원가량 높은 신고가를 기록했다. 도곡동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총 3000여 가구에 달하는 도곡렉슬에서 30평형대 매물이 겨우 3개 정도"라며 "매물이 나오더라도 막상 손님이 붙으면 집주인이 호가를 올려버린다"고 말했다.
서울 집값이 다시 급등하는 것은 정부의 연이은 정책 헛발질에 실망한 30대 실수요자들이 적극적인 매수에 나선 탓이 크다. 정부의 '집값 안정화' 약속을 믿고 수년간 집을 사지 않았던 30대 실수요자들은 최근 집값 폭등세에 참담한 심정을 느끼며 '패닉 바잉(Panic Buying·공포에 기인한 매수행위)'에 나서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올해 1~5월 서울 아파트의 30대 매수 비중은 30.7%로 40대(27.3%), 50대(18.7%)를 제치고 전체 세대 중 1위를 기록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6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1만1168건으로 올 들어 월별 거래량 기준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최근 실거주 규제 강화로 전세 매물이 빠르게 실종되면서 전세 대신 매수를 선택하는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학렬 스마트튜브 부동산조사연구소장은 "추가 대책으로 논의되는 임대사업자 혜택 축소나 임대차 3법 등은 결국 다주택자를 압박해 전세 매물을 더 줄이는 정책"이라며 "심각한 전세난에 서울 외곽 저렴한 아파트라도 매수하려는 수요가 늘면서 집값이 빠르게 상승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서울과 수도권 핵심지 이외 지역들은 가격 상승률이 둔화됐다.
이날 한국감정원이 발표한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6일 기준)에 따르면 6·17 대책 직후 풍선효과가 나타났던 김포시는 한강신도시 위주로 0.58% 상승했으나 전주 상승폭(0.90%) 대비 상승률이 둔화됐다. 파주는 이번주 0.49%로 지난주(0.45%)와 상승폭이 비슷했다. 정부는 당장 김포, 파주를 규제지역으로 지정하기보다 모니터링을 강화하기로 했다.


[정지성 기자 / 박윤예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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