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70년의 기다림' 유해로 만난 오빠…149명만 가족 품으로
입력 2020-06-25 19:30  | 수정 2020-06-25 20:34
【 앵커멘트 】
오늘 147구의 유해가 도착했지만,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건 단 7구뿐입니다.
70년 동안 기다려 오빠의 유해를 마주하게 된 할머니를 MBN이 만나, 그 사연을 들었습니다.
주진희 기자입니다.


【 기자 】
▶ 인터뷰 : 트럼프 / 미국 대통령 (지난 2018년)
- "싱가포르 북미 회담에서 북한에 묻힌 6·25 참전 용사 유해를 돌려달라 했고, 김정은 위원장이 동의했습니다."

싱가포르 합의에 따라 북한은 지난 2018년 유해 상자 55개를 미국에 송환했고, 감식 결과 여기에 카투사였던 김정용 일병이 포함됐습니다.

김민자 할머니는 대학 원서를 낸다며 집을 나섰다 군인이 된 오빠를 이렇게 70년 만에 마주하게 됐습니다.

▶ 인터뷰 : 김민자 / 고 김정용 일병 여동생
- "(오빠가) 일주일 만에 집에 왔어요. 그래도 중학교까지 다녔다고, 주머니 뚜껑 있잖아요, 군번. 미 7사단 1113053 딱 있더라고요."

휴가차 집에 들른 오빠 옷을 보고 70년 동안 부대 마크와 군번을 외웠던 겁니다.

다시 전장으로 나선 김정용 일병은 여동생에게 편지 한 통을 보낸 뒤 소식이 끊겼습니다.


▶ 인터뷰 : 김민자 / 고 김정용 일병 여동생
- "함흥에서 (오빠) 편지가 왔는데 '여기는 아주 춥고, 달빛이 너무 차서 더더욱 찬 것 같다'. 어머니는 길을 가다가 군인이 가면 '군인들도 많은데 하필 네 오빠는 그 군복 속에 없냐'…."

가족은 평생 찾아다녔지만, 김정용 일병은 군 입대 4개월 만에 치열했던 장진호 전투에서 20살 젊은 나이로 사망했던 겁니다.

10년 전 김민자 할머니가 현충원에서 DNA를 등록하면서 마지막을 알 수 있게 된 겁니다.

▶ 인터뷰 : 허욱구 /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
- "과거에 보면 미군에 소속된 카투사 분들이 신원 확인된 사례를 봤을 때 저희가 예상한 대로 6·25 당시에 미군과 함께 싸웠던 카투사 소속의 국군으로 확인된 것이고…"

국군 전사자 13만 3천여 명 중 발굴 유해는 1만여 구 정도로, 이 중 DNA 검사로 가족 품으로 돌아간 분은 149명뿐입니다.

MBN뉴스 주진희입니다.[jhookiz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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