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단독] 코로나19 `집콕`족(族) 도박에 빠졌다
입력 2020-06-25 06:01  | 수정 2020-07-02 06:07

24년간 주식 투자에만 몸 담아 온 40대 남성 A씨가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의 문을 두드린 것은 코로나19로 인해 주식시장이 폭락했을 무렵이었다. 투자 초반에는 장기투자형태로 수익을 일부 내는 등 선전했지만 차츰 잃은 돈의 규모가 커지자 A씨에게 달콤한 유혹의 목소리가 다가왔다. 친구로부터 "적은 돈 벌어봤자 뭐하냐. 선물옵션이라고 한 번에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제안이 들어온 것이다. 비교적 큰 금액을 선물옵션에 투입하기 시작한 A씨는 여기저기에서 돈을 끌어 모으다가 결국 8억원의 손실을 보게 됐다.
한국 사회의 일상을 바꾼 코로나19가 도박 문제까지 심화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불법 스포츠 베팅, 주식 중독, 사설 FX 마진거래 등 도박 상담을 받은 인원이 전년에 비해 증가한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의 스포츠 시장이 멈춰 불법스포츠베팅 등이 어려웠단 점을 감안하면 더욱 주목할 만한 결과다.
24일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에 따르면 센터가 운영하는 상담 프로그램 '헬프라인' 도박 상담 접수 인원이 올해 3월부터 5월까지 2508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2162명이 상담을 접수한 것과 비교하면 16% 증가한 셈이다.
연령별로 보면 10대의 청소년층과 60~70대의 노년층을 제외하곤 최소 12.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특히 40대 상담 인원이 지난해 3~5월 기준 273명에서 올해 같은 기간 380명으로 39.2% 오르는 모습을 보였다.

정보영 서울센터장은 "코로나19로 인해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스마트폰 사용빈도가 늘어나면서 도박 광고에 노출되기 쉬운 환경이 조성이 됐다"면서 "스포츠 경기 중단이 되면서 중독성이 더욱 강한 온라인 카지노 등으로 도박 유형이 변화한 것도 도박 문제를 심화시키는 데 한몫했다"고 분석했다.
코로나19 기간 중 주식 중독이나 사설 FX 마진거래 등 금융과 관련한 상담이 증가한 것도 특이점으로 꼽힌다. 특히 지난 3월 세계보건기구(WHO)가 팬데믹(Pandemic·전염병 대유행)을 선언한 직후 주식 중독 상담 인원이 급증했다. 박문제관리센터 자료에 따르면 올해 3월부터 5월까지 주식 관련 문제로 센터에 상담을 접수한 이는 214명에 이른다. 지난해 같은 기간엔 78명에 불과했단 점을 감안하면 2배가 넘는다.
임정민 도박문제관리센터 예방치유팀장은 "3월부터 5월까지 센터를 방문한 상담자 중 열에 여섯은 주식 관련한 피해를 호소했다. 특히 주식을 사거나 파는 시점에 따라서 이익을 보거나 손해를 보는 금액이 달라져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A씨와는 다르게 코로나19 영향으로 주가지수가 급락하자 주식시장에 뛰어들었다가 손해를 본 경우도 있다. 40대 남성인 B씨는 외환위기 당시 경험을 떠올리며 주식 투자에 나섰다. 주가가 폭락한 상황이니 이 상황에서 매수를 하면 큰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B씨의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갔고 B씨는 요즘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외환 마진거래를 빙자한 사설 FX 마진거래 투자사기도 극성이다. 최근 전북 전주에서 여성 2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최신종(31)은 사설 FX 마진거래로 돈을 잃자 금품을 빼앗으려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1~5월 접수된 사설 FX 마진거래 피해제보 상담 건수는 총 158건에 이른다.
사설 업체에서 이뤄지고 있는 FX마진거래는 환차익을 노리는 고위험·고수익 금융투자상품인 정상 FX마진거래와 다르다. 특정 통화의 환율이 오를지 내릴지를 투자자가 베팅해 맞히면 큰 수익을 주고 틀리면 투자금을 죄다 잃는 식이다. 사설 FX마진거래 업체들은 불법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 정상적인 FX마진거래를 하기 위해선 금융위원회로부터 금융투자업 인가를 받아야 하지만 사설업체들은 허가를 받지 않고 영업을 하는 것이다.
지난 2015년 대법원은 "(사설 FX 마진거래는) 금융상품이 아니고 도박성이 짙기 때문에 자본시장법 위반이 아닌 도박장개설 혐의로 처벌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에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는 사설 FX 마진거래 업체 실태를 파악한 뒤 수사기관에 수사 의뢰를 이어갈 예정이다. 임 팀장은 "사설 FX마진거래는 소액으로도 이용이 가능하다보니 대학생 등 젊은층을 중심으로 피해를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박윤균 기자 / 차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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