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겸재 화첩, 한국 고미술 경매 최고가 경신할까?
입력 2020-06-23 13:15 
송유팔현도. [사진 제공 = 케이옥션]

조선 후기 대표 화가 겸재 정선(1676~1759)이 노년의 완숙한 필치로 이룬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와 고사인물화(故事人物畵)가 수록된 화첩이 고미술 경매 최고가를 다시 쓸까.
23일 케이옥션은 오는 7월 15일 경매에 국가 지정 문화재인 보물 1796호 '정선필 해악팔경 및 송유팔현도 화첩(鄭敾筆海嶽八景-宋儒八賢圖畵帖)'을 추정가 50억~70억원에 출품한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국내 고미술 최고가 작품은 2015년 12월 서울옥션 경매에서 35억2000만원에 낙찰된 보물 1210호 조선 후기 불화 '청량산괘불탱(淸凉山掛佛幀)'이다.
이번 경매에 출품된 겸재 화첩에는 금강산과 그 주변 동해안 명소를 그린 진경산수화 8점과 중국 송나라 유학자들의 일화와 글을 소재로 그린 고사인물화 8점 등 총 16점이 수록돼 있다. 다방면에서 회화사적 성취를 이룬 겸재의 연륜과 깊이를 감상할 수 있으며, 서로 다른 주제 작품을 8점씩 균형을 맞춰 한 화첩에 수록해 보물로 지정됐다.
화첩 표지에는 '겸재화(謙齋畵)'가 쓰여져 있으며 각 그림에는 제목, '謙齋(겸재)'라는 서명과 함께 '정(鄭)'과 '선(敾)'을 각각 새긴 두 개의 백문방인(白文方印·글자 부분이 하얗게 찍히는 도장)이 찍혀 있다. 이는 겸재가 66세(1741년)부터 70대 후반까지 사용한 도장이다.
정선필 해악팔경 및 송유팔현도 화첩 표지. [사진 제공 = 케이옥션]
수묵으로 그린 진경산수화 8점은 '단발령' '비로봉' '혈망봉' '구룡연' '옹천' '고성문암' '총석정' '해금강' 순서로 구성돼 있다.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겸재의 '해악전신첩(海嶽傳神帖)'(1747년, 보물 1949호)에는 없는 특정 경관 5폭인 '비로봉' '혈망봉' '구룡연' '옹천' '해금강'이 추가돼 있다.
특히 '단발령'은 금강산의 웅장한 풍모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장소다. '단발령'이란 지명은 이 곳에서 바라본 일만이천봉 금강산 장면이 너무 찬란해 보는 이로 하여금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 속세를 떠나고 싶게 만들기 때문에 붙여졌다고 한다. 1711년에 제작된 '신묘년 풍악도첩'의 '단발령망금강산도'에 비해 경물을 보다 간략히 표현했고 힘 있는 필치로 생동감을 더하고 있다.
'비로봉'과 '혈망봉'은 '해악전신첩'에 포함돼 있지 않는 경관이다. 문화재 전문가 최완수는 "칼날 같은 백색 암봉들은 서릿발준법으로 예리하게 날을 세워 전면에 열립(列立)시키고, 그 뒤 화면 전체에 비로봉을 과감하게 채워 넣는 대담무쌍한 화면구성법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 같은 포치와 구성은 회화사상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예"라고 표현한 바 있다.
'혈망봉'은 내금강의 동쪽 경계를 이루는 가장 높은 봉우리로 심원, 평원, 고원의 시점이 모두 적용돼 신비로움을 더하고 있다.

금강산에서 가장 크고 웅장한 폭포와 연못 '구룡연'을 보지 않고서는 금강산을 보았다고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거침없이 쏟아지는 폭포 장면 만을 화면 가득 대담하게 포착했고 빠른 필치로 폭포가 떨어지는 찰나의 순간을 생동감 있게 묘사했다.
'옹천'은 삼일호(三一湖)에서 동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가면 통천군(通川郡) 초입에 있는 경관이다. 독처럼 생겼다 하여 이름 붙여진 경관으로 가파른 바위벼랑 형세를 띠고 있기 때문에 위태롭고 강렬한 필치로 묘사됐다. 오른쪽 공간을 수파(水波)만을 묘사해 시원한 공간감과 운동감을 보여주고 있다.
'고성문암'은 두 개의 돌문이 깎아지를 듯 서 있고 그 위를 한 개의 너럭바위가 덮고 있어 '석문(石門)' 또는 '문암(門巖)'이라 부른다. 특히 서쪽으로 외금강을 쳐다볼 수 있어 주요 명승지로 손꼽혔다. 특히 바다 너머의 붉은 해와 근경의 농묵 운용은 다양한 시각적 재미를 주고 있다.
해악팔경도. [사진 제공 = 케이옥션]
'총석정'은 통천군에서 동북쪽으로 떨어진 동해변에 있는 관동팔경(關東八景) 중 제일의 절경으로 금강산 유람에는 관동팔경을 포함한 여정이 함께 이뤄지기도 했기 때문에 금강산 화첩에 주요하게 들어가는 경관 중 하나이다. 초년에 제작된 '총석정'은 네 개의 사선봉을 세밀하고 사실적으로 그리는 한편, 이번 출품작에서는 주변 경물을 대체로 생략하고 높낮이에 변화를 준 세개의 기둥만을 화면 가득히 묘사해 만년의 여유로움을 보이고 있다.
칠성암(七星巖)에서 북쪽으로 배를 돌려나가면 기이한 형상을 한 백색 암벽들이 떼지어 늘어서 있는데 이것이 바로 '해금강'이다. 수직준으로 예리하게 각진 암벽들이 첩첩이 둘러서 있고 활달하게 묘사된 물결이 묘사됐다.
겸재의 고사인물화는 주돈이(1017~1073), 정호(1032~1085), 정이(1033~1107), 장재(1020~1077), 소옹(1011~1077), 사마광(1019~1086), 주자(1130~1200) 등 북송(北宋) 육현(六賢)과 남송(南宋)의 주희(1130~1200), 주희 스승인 이동(1093~1163) 등 중국 송나라 인물로만 묶었다. 성현을 엄격하고 경직된 지도자나 통치자의 모습이 아닌 자연 속에 기거하며 도학을 누리는 처사로 표현한게 특징이다. '염계상련' '방화수류' '부강풍도' '화외소거' '횡거영초' '온공낙원' '무이도가' '자헌잠농'으로 각 폭마다 화제를 밝히고 있다. 성현들의 이야기를 감상의 대상으로 향유했기 때문에 작품의 인물을 작게 묘사하고 산수 배경과의 조화를 강조했다. 동시에 고사인물의 자세를 정확하게 묘사하고, 구체적인 동작이나 의복에 색채를 사용해 작품의 본질을 잃지 않게 했다.
'염계상련'은 북송대 학자였던 주돈이와 관련된 고사로 염계(濂溪)는 주돈이의 호이다. 주돈이의 '애련설(愛蓮說)'을 묘사했는데, 그는 평소 연꽃을 애호하여 연꽃이 필 때면 그 곁을 떠나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주돈이가 연꽃을 감상하는 모습을 담아 그의 고아한 정신을 본받고자 했다. 산수인물의 특징을 빌어 인물은 작게 묘사됐으나 화면 중심에 위치시켜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겸재의 짜임새 있는 구성력을 확인할 수 있다.
'방화수류'는 정호의 시 '춘일우성(春日偶成)'을 표현한 것으로 그 중 '구름 엷고 바람 약한 한낮이 되었을 쯤에, 꽃과 버들 따라 앞 시내를 건너누나(傍花隨柳過前川)'라는 내용을 묘사했다. 이 글은 자연에서 도를 즐기고자 하는 문인 취향을 드러낸 것으로 화면 전반에 따사로운 봄날의 정경이 묘사됐다. 피마준과 미점으로 처리된 필치에서 정선 노년기의 완숙함이 느껴진다.
'부강풍도'는 정이가 사천성의 부릉으로 유배를 가는 고사를 묘사한 작품이다. 염예를 지나는데 파도가 사납게 몰아치자, 배 안의 사람들은 모두 놀랐으나 정이는 홀로 의연하게 동요하지 않았다. 강가의 나무꾼이 정이에게 "죽으려고 이러한가, 달관해서 이러한가"라고 묻자, 정이가 대답하려 했으나 배는 이미 떠났다는 이야기다. 진한 측필로 처리한 절벽과 미점으로 표현한 원산에서 겸재 화풍을 확인할 수 있고 험난한 유배길에도 엄정함을 잃지 않는 정이의 자태를 묘사했다.
'화외소거'는 사마광과 소옹의 낭만적인 교유장면을 담은 작품이다. 사마광은 소옹과 만나기로 했으나 소옹이 나타나지 않자 '숲 사이 높은 누각 바라본지 오랜건만, 꽃 밖의 작은 수레 아직도 오지 않네(花外小車猶未來)'라는 시를 짓고 계속 기다렸다고 한다. 당대 최고의 학자였던 소옹이 꽃을 감상하다가 친구와의 약속을 잊어버렸고 사마광은 그런 친구를 이해하고 기다렸다는 낭만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원경의 산과 소옹의 수레를 사이로 여백을 두어 시원한 공간감을 주고 있다.
'횡거영초'는 장재가 성리학을 탐구하는 장면을 담은 작품으로 횡거(橫渠)는 장재의 호이다. 파초를 애호했던 인물로 작품에서도 파초와 괴석으로 둘러싸인 모습이 묘사됐다. 더불어 장재 앞에 그려진 문방사우는 장재의 학자로서의 면모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인물과 문방사우에 가한 채색은 화면 전반의 청신함을 더하고 있다.
'온공낙원'의 온공은 사마광의 시호인 '태사온국공(太師溫國公)'에서 비롯된 것으로 사마광의 '독락원기(獨樂園記)' 내용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사마광은 벼슬에서 물러난 뒤 은거하였고 이 때 스스로 인생을 즐기는 법을 기록한 '독락원기'를 저술했다. 책을 통해 여러 성현들을 스승삼고 아래로 모든 현인들을 벗하게 되었으며 알고자 하는 모든 이치는 책 속에 있다고 하였다. 화면에서도 자연 속에 동화되어 책을 보는 사마광의 모습이 묘사됐다.
'무이도가'는 주희가 은거하며 강학했던 '무이구곡(武夷九曲)'을 묘사한 작품으로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은 무이구곡을 가장 이상적인 자연 공간으로 생각했다. 화면에는 무이산의 기이한 절벽 아래 계곡에서 미동의 기색없이 태연하게 앉아 있는 주희의 모습을 표현했다. 출렁이는 작은 배에 앉아서도 무이산의 빼어난 기암들을 감상하는 주희의 모습에서 성현의 강인한 정신을 엿볼 수 있다. 대각선으로 포치된 절벽은 농묵의 측필로 묘사해 정선 특유의 활달한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자헌잠농'은 이동과 관련된 고사를 묘사한 작품이다. 이동은 '자헌'이라는 시를 통해 농사짓고 누에치는 잠농의 중요함을 노래했다. 모정에 앉아 농사를 짓는 인물을 바라보고 있는 이동의 모습이 근경에 표현됐다. 온화한 이동의 모습과는 달리 거친 필치로 그려낸 근경의 고목나무는 겸재 노년기의 완숙함과 기세를 느끼게 한다.
케이옥션은 "정선의 폭넓은 회화 세계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자 조선 후기 산수화와 인물화의 제작 경향을 확인할 수 있는 회화사적 사료로서 매우 가치 있는 유물이다"고 설명했다.
출품작은 7월 4일부터 경매가 열리는 7월 15일까지 서울 신사동 케이옥션 전시장에서 관람할 수 있다. 프리뷰 관람은 무료이나 코로나19 확산방지를 위해 방문에 앞서 대표 전화로 사전예약을 하고,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하고 전시장 입구에서 비접촉 체온측정 후 입장이 가능하다.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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