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레이더P] 남북미 관계 위협한 5번의 `트럼프 모먼트`
입력 2020-06-22 14:31  | 수정 2020-06-29 14:37

존 볼턴 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 '그것이 일어난 방'의 주요 일화들이 출간 전부터 언론을 통해 소개되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충격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담겼지만 볼턴 전 보좌관은 그 중에서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충동적이고 이중적인 모습을 묘사하는 데 많은 공을 들인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한미동맹, 남북관계, 미북관계 등 한반도 관련 상황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北 김정은 치켜세우고 뒤에선 '정신병자' 비난
볼턴 전 보좌관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6·12 첫 미북 정상회담 때 김 위원장을 한껏 치켜세우며 그를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확대 회담 당시 김 위원장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트럼프 대통령은 "정말로 똑똑하고 상당히 비밀스러우며 완전히 진실하고 훌륭한 성격을 가진 정말로 좋은 사람"이라고 답했다.
이후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 대해 '똑똑한 터프가이' '훌륭한 협상가'라고 부르는 등 여러가지 좋은 언급을 하면서 대화 분위기를 이어가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장막 뒤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 대해 언급한 건 이와 대조적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열린 회의에서 방위비 관련한 언급을 하던 중 "난 정신병자(psycho)와 평화를 이뤄내려고 노력 중"이라며 김 위원장을 평가절하하는 발언을 했다.

그해 7월 평양을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미국에 돌아와 "북한은 비핵화 이전에 안전 보장을 원한다"고 보고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신뢰 구축'은 개똥(horseshit)같은 소리"라고 분노하기도 했다.
한미연합훈련 축소, 김정은 요청에 즉흥 결정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비핵화 대화에 끌어들이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하던 '한미연합훈련 축소' 결정도 싱가포르 회담 당시의 즉흥적 결정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김 위원장은 "한미 연합군사훈련에 지쳤다"며 "훈련 범위를 축소하거나 없애기를 희망한다"고 요구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연합훈련이 도발적이고 시간과 돈의 낭비"라고 대답한 뒤 "양측이 선의로 협상하는 동안 훈련이 없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는 한국은 물론 백악관 주요 참모진과의 협의도 없이 결정된 사안이라고 볼턴 전 보좌관은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회담장 안에 있던 폼페이오 장관과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에게 동의하는지 물었고 두 사람 모두 '예스'(yes)라고 답했다. 그러나 이에 관해서는 사전에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은 내용이었다고 볼턴은 밝혔다.
하노이 회담 전날엔 밤새도록 '코언 청문회' 시청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렸던 2차 미북 정상회담에 대해 '역사적 협상'이 될 거라고 한껏 분위기를 띄웠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미 본토에서 자신의 비리를 폭로한 옛 개인 변호사 마이클 코언의 청문회에 신경쓰느라 회담에 집중하지 못했다고 한다.
볼턴 전 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은 하노이에서 같은 기간 열린 코언의 청문회를 보느라 밤을 새웠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짜증이 난 상태였고, '스몰딜'을 타결하는 것과 (협상장 밖으로) 걸어 나가는 것 중에서 어떤 게 (청문회 기사에 비해) 더 큰 기사가 될지에 대해 궁금해했다"고 회고했다.
볼턴 전 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코언 청문회에 정신이 팔려 있는 틈을 타 '노딜' 옵션을 살려냈고 그가 '나쁜 합의'에 이르는 것을 막아낼 수 있었다고 안도했다.
북한 미사일에 대수롭지 않다더니 뒤에선 "한국에 방위비 올릴 기회"
트럼프 대통령은 또 지난해부터 이어진 북한 미사일 발사 관련해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였으나 뒤에선 "한국에 방위비를 올릴 기회"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지난해 7월 볼턴 전 보좌관으로부터 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한 보고를 받은 후 "이것은 돈을 요구하기에 좋은 타이밍"이라면서 "미사일 때문에 50억 달러를 얻게 될 것"이라고 공공연히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볼턴 전 보좌관은 "한국과의 관계를 몹시 괴롭혔던 이슈 중 하나는 미군 기지를 유치한 나라들이 내야 할 비용 분담에 관한 문제"라며 "셀 수 없이 많은 논의 후에도 '우리가 한국을 지키기 위해 거기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은 흔들리지 않았다"고 적었다.
볼턴 전 보좌관은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적당한 액수라고 판단하는 만큼 지불하지 않는 나라에서 미군을 철수하겠다는 그의 궁극적인 위협이 한국의 경우 진짜일 것을 두려워했다"며 이를 저지하기 위한 전략을 세우려고 했다고 밝혔다.
남북미 6월 판문점 회동, 백악관 참모들도 '깜짝'
지난해 6월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방문 때 트위터를 통해 김 위원장에게 판문점 회동을 깜짝 제안해 성사시켰다. 이러한 사실은 백악관의 주요 참모들도 몰랐던 트럼프 대통령의 독단적인 행동이었다고 볼턴 전 보좌관은 전했다.
볼턴 전 보좌관은 자신과 믹 멀베이니 당시 백악관 비서실장 대행이 이러한 사실을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를 보고 알았다면서 "멀베이니 실장 대행도 나처럼 당혹스러워 보였다. 별것이 아니라고 본 트윗이 실제 정상회담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에 속이 메스꺼웠다"고 밝혔다. 폼페이오 장관 역시 "여기에 어떤 가치도 부과할 게 없다"고 봤다고 적었다.
[안정훈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