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AI 데이터 잡, 데이터 라벨러 6인 "데이터 산업 씨앗 뿌리죠"
입력 2020-06-21 18:51  | 수정 2020-06-21 20:29

인공지능(AI) 학습용 데이터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지금 대한민국에서도 '현재진행형'이다. 남녀노소 누구나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할 수 있는 단순작업부터 시작해 능력을 인정받고 관련업체에 취업한 사례들도 속속 나오고 있다. AI 학습용 데이터 프로젝트는 그때그때 단기에 작업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앱이나 웹에 '모집공고'를 띄우고 지원한 사람들을 모아 일감을 배분한다. 요즘 유행하는 대중참여 프로젝트 '크라우드 소싱(Crowd Sourcing)' 방식을 채택한 것이다. 이같은 방식으로 일하는 근로자들을 일컫는 '크라우드 워커'라는 용어도 생겼다. 시간을 쪼개 아르바이트로 쿠팡 물건을 배달하는 쿠팡 플렉스 등 이른바 긱 이코노미가 데이터 분야에서도 꽃피고 있다고 보면 된다. 데이터 크라우드 소싱 작업은 국내에는 지난 2017년부터 조금씩 대중화됐고, 현재 주요 크라우드소싱업체에 회원으로 등록한 사람들만 1만명을 훌쩍 넘는다. AI 학습용 데이터가 창출한 일자리로 데이터 경제에 씨앗을 뿌리면서 개인 커리어에서도 새로운 기회를 모색중인 데이터 라벨러 6명을 인터뷰했다. 이들은 모두 아쉬운 점이 없진 않지만 지금 일에 만족하고, 앞으로도 계속하고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양신애 씨(57)는 세 자녀를 키우느라 경력단절을 겪은 후 수십 가지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자녀의 권유로 크라우드 소싱업체를 찾았다. 벌써 1년 7개월째 '데이터 라벨러'로 일하고 있다. 양 씨는 "조금씩 용돈벌이로 하는 것이고 나름 장점이 있어 친구들도 소개해줬는데 다들 오래하지 못하고 그만두더라"며 "보수가 괜찮은 일은 눈 떠서 눈 감을 때까지 매달려 하루에 10만원을 벌 때도 있지만, 일이 없을 때는 한 달 수입이 10만원도 안될 때도 있다"고 설명했다. 하는 일은 프로젝트 목적에 따라 다양하다. 거리 사진이나 마트 진열장을 촬영해 올린다던지, 집안 생활도구나 아파트 구조를 찍는 경우도 있다.
양 씨는 "한곳에 메여있지 않고 살림하면서 짬짬이 자유롭게 일 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미생물학과를 졸업하고 제약회사 취업을 준비중인 오채원 씨(24)는 번역앱 '플리토'에 한국어-영어 번역문장을 올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오 씨는 "첫 직장을 관두고 떠난 해외여행에서 플리토를 깔았다가 이 일을 알게되었고, 이직을 준비하는 1년간 만족하면서 일하고 있다"며 "계속 집중하는 게 아니라 버스타고 갈 때, 밥 먹을 때 짬짬이 등 자투리 시간에 스마트폰으로 간단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취업하고도 계속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오 씨가 하는 일은 번역 앱 엔진을 고도화하기 위해 영어와 한국어 문장을 변환한 데이터를 수집하는 작업이다. 초기에는 하루종일 해도 2~3만원을 버는 정도였지만 지금은 8시간 기준으로 3~4만원을 번다. 물론 8시간 내내 하는 것은 아니고 중간중간 시간을 내서 할 경우다. AI 고도화를 위해 사투리 억양을 녹음하는 작업처럼 특이한 업무는 더 많은 보수가 책정된다. 오 씨는 "클라우드 소싱을 하는 업체가 여러 곳 있는데, PC가 있어야 작업할 수 있는 곳들이 많더라.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다이어리나 디자인노트 등 기업에 지류를 납품하는 사업을 하는 김재상 씨(34)도 작년부터 데이터 라벨러로 일하고 있다. 다이어리 수요가 몰리는 사업 특성상 2월부터 추석까지는 일이 많지 않은 '비수기'여서 고민이었던 그는 지인 소개로 크라우드 소싱 업무를 시작했다. 업체가 메일로 현재 진행중인 프로젝트를 보내주면 할 수 있는 작업을 골라 신청해서 작업하는 방식이다. 김 씨는 "올들어 코로나 이후 온오프라인 소비재 경기가 다 나빠지지 않았나. PC앞에 앉아있는 일이 익숙하다보니 일이 힘들진 않고 열심히 하면 최저시급 정도는 나와서 도움이 많이 됐다"며 "숙련도가 쌓이면 더 수월하게 할 수 있고, 시간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것이 장점이어서 꾸준히 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크라우드 소싱업체 에이모에서 일하는 박상락 씨(29)는 이직준비 중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데이터라벨링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불과 한 달만에 기간제 계약직 직원으로 채용된 사례다. 에이모 관계자는 "흔히 데이터 라벨링이 단순 반복업무라고 생각하지만, 작업 결과물을 보면 '우수 인재'들을 바로 알 수 있다. 회사가 급성장하고 있어 김 씨 같은 우수 인재들은 계약직으로 채용하고 정규직 후보군으로 올려놓는다"면서 "현재 우리 회사에 등록한 크라우드 워커가 7000~8000명, 정기적으로 프로젝트를 맡는 재택 프리랜서가 250~300명에 달한다"고 말했다. 김 씨는 크라우드 워커들을 교육하고 가이드라인을 만들며 작업한 결과물을 검수하는 등 다양한 업무를 맡고 있다. 김 씨는 "재택으로 일할 때는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할 수 있어서 좋고, 회사에 정식채용된 후부터는 정기적으로 일하고 합당한 보수를 받아서 좋다"고 말했다.
테스트웍스 데이터 서비스팀에서 일하는 김지욱 주임(27)과 김광태 연구원(25)은 각각 자폐성 장애와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음에도 정식 직원으로 취업했다. 김 주임은 "지금 하는 일은 자율주행 자동차와 관련된 작업인데, 표지판과 신호등을 라벨링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새로운 일자리이지만 적응이 빨라서 어려운 점 없이 일하고 있다"면서 만족감을 나타냈다. 그는 "업무량이 몰릴 때에는 조금 힘들지만 작업을 마치면 보람을 느끼고, 직업을 소개하면 다들'멋진 일을 한다'고 말해준다. 제 능력을 인정받고 돈도 벌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청각장애인 김광태 연구원은 스스로를 '무한 가능성을 가진 회사에 다닌다'고 표현했다. 김 연구원은 "IT회사이고 4차 산업 시대에 분야가 넓어서 배울 기회가 많이 있다고 해서 지원하게 되었다. 취업 면접을 볼 때 장애인은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어 취업하기 어려웠는데, 동료들과 함께 근무할 수 있어 행복하다. 장애의 한계를 극복하고 당당하게 능력을 인정받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신찬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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