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이제는 갈놈만 간다…한국판 `니프티 피프티` 현실화
입력 2020-06-21 17:15 

코로나19 충격으로 3월 19일 저점을 찍은 코스피가 회복하는 과정에서 소수 대형주가 장세를 주도하는 이른바 한국판 '니프티 피프티'(Nifty Fifty) 현상이 현실화됐다. 니프티피프티는 1969년부터 1970년대초 미국 S&P 500 지수 내 종목 가운데 높은 수익률을 보여줬던 코카콜라, IBM, 필립모리스 등 50개 대형주를 가르키는 말이다.
한국에선 과거 소수 대형주가 지수 상승을 견인할 때마다 한국판 니프티피프티 장세가 자주 거론되곤 했다. 니프티피프티 장세가 시작되면 지수가 올라도, 상승종목수 보다 하락종목수가 더 많아지는 기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2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3개월 전인 3월 19일 이후 저점에서 코스피가 1450대에서 2200선까지 터치하는 과정에서 코스피의 상승종목수가 하락종목수보다 적어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20일 이동평균을 기준으로 상승종목 수를 하락종목 수로 나눈 비율인 코스피 등락비율(ADR·Advance Decline Ratio) 추이를 조사한 결과, 3월 19일 코스피 저점에서 40.5%를 기록했던 등락비율은 코스피가 코로나 이후 처음 1900선을 회복했던 4월 17일에는 금융위기 이후 역대 최고치인 235.9%를 나타냈다. 바닥에서 4월 중순까진 '눈감고 사도 오르는' 장세가 펼쳐진 셈이다. 코스피가 시장 전체를 대표하는 지수인만큼, 지수가 오르면 등락비율도 따라 오르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코스피가 1880~1930 박스권에 머물던 4월 17일부터 5월 15일까지 등락비율은 거꾸로 235%에서 120%대까지 떨어졌다. 지수는 그대로 있는데 하락종목수가 늘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소수 종목이 더 강하게 오르는 니프티 피프티 장세가 시작된 구간이다.
비슷한 현상은 5월 중순 이후로도 이어졌다. 코스피는 5월 15일 이후 1930선에서 2200까지 터치하고 2130선에서 머물고 있지만, 등락비율은 종전의 120%선에서 크게 내려오지 않고 정체되는 흐름을 보였다. 지수는 오르는 데 상승종목수가 크게 늘어나지 않았다는 점도 기존에 오르던 주식 위주로 올랐다는 것을 시사한다.
등락비율 외에도 니프티 피프티 장세를 보여주는 특징 중 하나는 주도주의 주가수익비율(PER)이 높아지는 등 고밸류에이션이 발생하는 게 정당화된다는 점이다. 하나금융투자는 이런 특징을 가진 대형주로 '성장주 7공주'를 제시한다.
이재만 하나금융투자 투자전략팀장은 "코스피 7공주인 삼성바이오로직스, NAVER, 셀트리온, LG화학, 삼성SDI, 카카오, 엔씨소프트의 시가총액 비중은 2017년 7%에서 올해 17%까지 상승했다"면서 "적정금리가 마이너스 금리인 시대에서 유동성의 확장은 가치주 보단 성장주의 반등을 오래 가게 한다"고 밝혔다.
코스피 반등 과정에서 7공주 종목은 수익률과 12개월 선행 기준 PER 측면에서 전형적인 니프티 피프티 종목의 특징을 나타냈다. 지난 19일 2141.32로 마감한 코스피가 최근 1개월과 3개월간 올린 수익률은 각각 8.1%, 46.9%다. 이에 반해 7공주 종목들은 최근 1개월, 3개월 수익률에서 전부 코스피를 압도했다. 특히 코스피 저점 당시인 3개월 수익률을 기준으로 보면 삼성바이오로직스(118.9%)·셀트리온(108.2%)·네이버(73.3%)·카카오(96.6%)·LG화학(122.6%)·삼성SDI(110.4%)·엔씨소프트(61.7%) 모두 우수한 성과를 달성했다.
반대로 지난해 하반기 동안 니프티 피프티 주도주 역할을 했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최근 3개월 수익률은 각각 23.2%, 23.8%로 코스피 보다 부진했다.
PER 기준으로도 코스피는 3월 19일 저점 당시 8.9배에서 지난 18일 12.1배로 36% 올랐지만 같은 기간 삼성SDI PER은 32.1배에서 56.2배로(2.7배), 카카오는 32.1배에서 56.2배로(1.7배), 삼성바이오로직스는 89.7배에서 172.2배로(1.9배), 셀트리온은 35.4배에서 65.2배로(1.8배) 밸류에이션이 뛰었다.
박소연 한국투자증권 투자전략총괄 부장은 "코로나 여파로 가치주들은 배당 축소 압력에 노출됐지만, 언택트 경제 활성화로 성장주 기업은 매출 증가 기대감이 고조되며 높은 밸류에이션을 허락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과도한 고평가가 이어지던 미국의 니프티 피프티 종목들은 1973년 1차 오일쇼크를 기점으로 폭락하며 '내스티 피프티'(Nasty Fifty)란 오명을 얻었다. 이처럼 현재 한국판 니프티 피프티 장세가 코로나19 재확산 등 실물경기가 무너져도 나홀로 랠리를 지속할지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당장은 주요국의 부양책과 고유동성 환경이 니프티 피프티 장세를 만들었지만, 앞으로도 이 같은 장세가 계속될지는 불확실하다는 지적이다.
강현기 DB금융투자 투자전략팀장은 "니프티 피프티 장세가 내후년까지도 길게 이어질 가능성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면서 "그간 각종 부양책에 의한 유동성이 주가를 밀어올렸지만, 정책이 실제로 실물경기를 회복시키는 데 한계가 드러난다면 시장은 회복 추세를 잃고 조정을 맞이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안갑성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