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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정진영 감독 “내 스타일로 만든 ‘사라진 시간’, 어떤 평도 감수할 것”
입력 2020-06-18 07:01 
33년차 배우 정진영이 영화 `사라진 시간`의 메가폰을 잡아 감독 데뷔했다. 제공|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현정 기자]
그야말로 무한도전이다.
무려 33년간 연극과 영화, 드라마는 물론 시사교양 프로그램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 온 배우 정진영(56)이 이번엔 ‘초짜 감독으로 변신했다. 너무나 소중해서, 쉽사리 용기내지 못했던 오랜 꿈을 이제야 이뤘다. 영화 ‘사라진 시간을 통해서다.
최근 서울 종로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정진영 감독은 첫 연출작 개봉을 앞두고 한껏 긴장한 모습이었다. 발가벗겨진 느낌”이라는 그는 굉장히 이상하다. (영화를 준비하면서) 하도 이런저런 감정의 파동을 이미 겪었기 때문에 덤덤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준익 감독이 ‘개봉 앞두면 미칠 걸 이라고 말해줬는데 진짜네. (한숨) 작품 연출을 그렇게나 많이 한 분인데도 떨린다고 하셔서 ‘유난이다 싶었거든요. 근데 막상 제가 겪어보니까....하아. 배우도 평가를 받는 자리에 있지만, 자신의 캐릭터와 연기를 평가받는 거잖아요. 이번 작품은 제가 연출에 시나리오까지 쓴 거라 나를 발가벗기고 다 드러내는 상황이란 생각이 들어요.”
조진웅의 합세로 상업 영화의 틀을 갖춘 `사라진 시간`. 정진영 감독은 알고 보면 독립 영화라고 강조했다. 제공|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영화 ‘사라진 시간은 의문의 화재 사건을 수사하던 형사가 자신이 믿었던 모든 것이 사라지는 충격적인 상황과 마주하면서 자신의 삶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를 그린다. 자신의 삶을 추적해 나가며 예측 불허의 과정을 그려내는 블랙 코미디이기도 하다. 다소 난해하고 독특한 구성, 진지한 메시지, 기묘한 설정으로 관객들의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릴 전망이다.
정진영 감독은 어렵다기 보다 논리적인 해석과 다른 경로로 와 닿는 이야기”라며 사실 이야기는 단순하고 쉬워 오히려 막 웃으면서 볼 수 있는 영화다. 던지는 화두는 다소 관념적일 수 있지만 모두가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이 생각하는 나 사이에서 갈등하지 않나. 그 이야기를 계속해서 다른 파도를 넘어가는 이야기 구조로 가려고 했다”고 소개했다.
정 감독은 시나리오 집필 단계에서부터 논리적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관습적 이야기는 버리고 관객들이 익숙하지 않은 걸 만들고 싶었단다. 동그란 돌이 아닌 모난 돌이 되길 원했다고.
처음 초고를 보여준 사람이 배우 조진웅이에요. 쓰자마자 조진웅에게 보냈는데, 하루 만에 하겠다는 답이 왔죠. 정말 고마웠어요. 보통의 경우, 주연 배우의 의견 받아서 시나리오를 조금씩 고쳐주는데 조진웅이 ‘내가 나온 부분 토씨하나 바꾸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그가 시나리오를 좋게 보고, 이야기를 믿어준다는 게 고마웠어요. 그 다음엔 어깨가 으쓱해져서 다음으로 이준익 감독에게 시나리오를 보여드렸죠. 다행히 좋은 반응을 주며 한마디 하셨어요. ‘영화가 만들어졌을 때는 평가가 분명히 엇갈릴 수 있어. 그건 네가 감당해나가야 해라고요.”
정진영의 연출 데뷔 소식에 우정출연을 해주겠다고 먼저 나선 동료 배우들도 많았지만 정작 그는 이를 모두 고사, 캐릭터에 꼭 맞는 인물들로 하나 하나 직접 캐스팅 했다.
저와 함께 연기를 했던, 좋아하는 후배들에게 책을 줬어요. 거의 다 대부분 한 번에 오케이를 해줘서 고마웠죠. 같이 안 해봤던 배우는 차수연씨 밖에 없어요. 시골 마을 분들은 어줍잖지만 오디션을 봤어요. 아직 얼굴이 안 알려진 분들을 모시고 싶었거든요. 배우 출신이다 보니 영화 연출 소문이 나니까 여기저기서 ‘하나라도 해줄게, 품앗이 하는 느낌으로 도와주려고 했지만 고사했어요. 굉장히 낯선 이야기를 다루는데 유명한 얼굴이 있으면 이상해질 것 같았거든요. 그 마음들에 진심으로 고맙고 큰 힘을 얻었죠.”
그가 오랜 기간 꿈으로만 간직했던 감독의 꿈을 행동으로 옮긴 데에는 배우 겸 싱어송라이터 김창완의 영향이 가장 컸다. 드라마 ‘화려한 유혹을 통해 인연을 맺은 두 사람. 정진영은 드라마 이후 연출의 꿈이 피어올랐다. 김창완 선배와 같이 연기한 적이 있는데, 선배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했을 줄 알았는데 대학교 때 기타를 배웠다고 하더라. 젊었을 때 비틀즈 음악도 안 듣고, 그냥 생각하는 대로 음악을 한다는 그 말에 한 방 맞았다”고 털어놨다.
장말 놀랐어요. 저런 아티스트가 대학교 때 기타를 배워서 어떻게 음악을 할까 생각했죠. 저도 체계적인 연출 학습이 안 돼 있어요. 연출과 연기는 전혀 다른 일이죠. 주춤주춤 망설일 수밖에 없었는데 김창완 선배의 이야기를 듣고 나도 할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학습하고 그런 것보다 내가 느끼는 대로 자신만의 것을 한다면 그게 하나의 언어가 될 수 있겠구나 했어요.”
오롯의 자신의 스타일 대로 데뷔작을 완성한 정진영 감독. 제공|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그래서일까. ‘사라진 시간은 본래 독립영화로 만들 생각이었지만 대세 배우 조진웅이 캐스팅되고, 다른 제작자가 투자를 하면서 여느 상업 영화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처음엔 누구에게 피해를 끼치면 안 될 거 같아 사비로 만들려고 했어요. 공동제작자에 제 이름이 올라간 이유죠. 조진웅 덕분에 이렇게 커진 거죠. 방향성이 달라질까봐 그럼에도 예산 한계선을 정했고 큰 영화로 보이지만, 예산이 작은 영화예요. 물론 예산이 적다고 우습다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이미 절반은 성공한 첫 발, 다음 계획은 무엇일까.
아직은 모르겠다”며 수줍게 웃는 정진영. 그는 첫 작품은 오랜 꿈이니까,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작품 하나를 하는 건 할 수 있지만, 두 번째 영화는 그런 마음 가지고는 할 수 없다. 영화적 가치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며 아직 차기작에 대한 계획은 없다. 그럴 여유도 없다. 지금 당장 상상할 수 없는 곳에 던져진 느낌이기 때문”이라며 솔직한 심경을 밝혔다.
매 순간 다짐하고 각오했지만 떨리네요. 내 자신이 원하는 대로, 그 어느 때보다 진솔하고 솔직하게, 내가 하고 싶은 스타일로 가보자 생각했어요. 어떤 평을 받더라도요.”
kiki2022@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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