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노조 부실 재정회계…투명성 요구 목소리 높아
입력 2020-06-17 14:52  | 수정 2020-06-17 15:37

모 기업체 노조 분회장 A씨와 총무부장 B씨는 40회에 걸쳐 노조원 회비 9300만원을 개인 채무변제와 생활비에 사용했다. 이들은 직무상 사용인 것처럼 회비를 사용했고 서로 이를 묵인해 지난해 각각 징역 1년, 1년4개월 실형을 선고받았다.
국내 노조의 이같은 회계 부정을 막기 위해 대기업과 공기업 노조만이라도 전문적 회계감사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노조의 역할과 권한이 커진 만큼 사회적 책임에 걸맞는 투명성을 갖춰야 한다는 주장이다.
17일 한국경제연구원은 대기업과 공기업 노조가 풍부한 재정과 인력을 갖췄고 강력한 노조활동으로 대·중소기업간 임금 격차를 좌우할 수 있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며 이같이 밝혔다.
ISO260000 등 국제표준에서 노조의 사회적 책임이 논의되고 있지만 국내 노조는 회계 투명 수준이 낮아 재정 비리 사건이 속속 발생하고 있다. 한경연 관계자는 "한국은 외국과 달리 노조 회계보고나 감사위원 선정 등에 대한 의무 규정이 없어 노조의 합리적 운영이 제약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요 선진국은 노동조합 회계 투명도가 높아 노조가 민주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기반이 되고 있다. 영국은 행정관청으로의 노조 회계 연차보고를 법적으로 의무화했고 미국은 조합간부가 노조나 회사와 관련해 거래한 업체의 주식, 채권, 증권 등을 노동부장관에게 보고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은 법적인 규율은 없지만 엄격한 노조 규약이 작동한다. 프랑스 노조는 재정국장이 노조 지도기관에 정기적인 재정보고를 해야 하고, 조합원의 정보청취권을 위해 조합 총회에서 재정보고를 수행한다. 또한 노조에서 직책을 맞지 않은 회계관리 전문 조합원을 감사위원회로 선정해 감시 기능을 맡기고 있다. 독일 노조에는 회계감사를 넘어 다른 국가에서는 거의 시행하지 않는 노동조합의 포괄적인 업무감사 규정도 존재한다.

노조 비리 사건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일본 또한 노조법에 회계 보고시 공인회계사 등 직업적 자격이 있는 회계감사원이 확인해준 증명서를 첨부해야 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반면 국내 노조는 영미처럼 노조 재정에 대한 법적 규정이 완비돼있지 않고, 독일·프랑스처럼 규약의 자치 기능도 형성돼있지 않다. 노조의 회계 기준과 공개 기준, 회계감사의 자격과 선출, 감사위원회 구성, 감사결과보고서 등에 대한 근거 규정이 없다.
한경연은 대기업과 일정규모 이상의 공기업에 한해서라도 전문성과 독립성을 갖춘 회계사에 의한 내·외부 회계감사를 의무화할 것을 제안했다. 만연한 재정 비리를 예방하기 위해 조합원에게 노조의 재정·회계 정보 접근성을 보장하는 방안도 촉구했다. 이상희 한국산업기술대 교수는 "회계 투명성뿐 아니라 노동조합 업무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노동조합의 업무감사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형주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