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한탕 하면 수백억…재벌3세 등 `꾼`들에 멍드는 자본시장
입력 2020-06-14 06:01  | 수정 2020-06-21 06:07

국내 증권회사에서 2016~2017년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선정된 A씨는 자신이 작성하는 기업분석자료에 'BUY(매수)' 의견과 함께 목표 주가를 상향해 기재한 뒤 보고서를 발간하면 해당 기업의 주가가 상승한다는 점을 알아챘다. 이를 이용해 A씨는 자신의 모친과 아내, 친구 B씨 등에게 보고서 발간 전 특정 종목을 매수하도록 한 뒤 시중에 보고서가 나오면 주식을 처분하게 해 총 19차례에 걸쳐 7억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취한 것으로 조사됐다. 금융감독원 특별사법경찰(특사경)은 지난해 7월 출범한 이후 이 사건을 수사해 A씨와 친구 B씨를 지난 1월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A씨 사례처럼 금융시장 질서를 어지럽히는 자본시장법 위반 범죄가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자본시장법 위반 범죄는 쉽게 말하면 금융사기와 다름 없다. 피의자는 금융정보를 독점하거나 최신 금융기법을 잘 아는 고학력 엘리트층이고, 피해자는 금융지식이 부족한 대다수 국민이다. 수많은 선량한 투자자들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자본시장법 위반 범죄에 대해서 관용보다 엄벌이 우선이라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3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올해 4월까지 검찰에 접수된 자본시장법 위반 사건은 총 875건이다. 2017년 1183건, 2018년 1492건, 2019년 1496건으로 증가세를 보이던 자본시장법 위반 사건은 4월까지 접수 현황을 볼 때 올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자본시장을 겨냥한 범죄가 늘어나는 이유는 거둘 수 있는 범죄 수익이 여타 범죄에 비해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검찰이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피의자들로부터 몰수·추징한 범죄 수익은 3300억원이었다. 총 몰수·추징한 범죄 건수가 71건임을 미뤄볼 때 피의자들은 한 건당 수십억원 규모의 수익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1조원 이상 투자자 손실을 낸 '라임 사태' 피의자 상당수도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자기 자본 없이 라임 펀드 등을 지원 받아 회사를 인수·합병(M&A)한 뒤 인위적으로 주가를 부양해 시세 차익을 거두는 수법을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부장검사 조상원)는 전문 주가조작 브로커에게 수십억 원 자금을 지원한 무자본 인수합병(M&A) 세력과 코스닥 상장사가 마치 고도의 기술력을 가진 것처럼 꾸며 허위자료를 배포해 주가를 부양한 일당을 지난달 28일 구속기소했다.
한 검찰 관계자는 "라임자산운용이 투자한 회사 상당수는 영업이익 적자를 수년간 기록한 한계기업"이라며 "투자자를 지속적으로 유인하기 위해 전문 '꾼'들과 공모해 수익률을 조작해왔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증권 범죄는 자본시장을 이해해야 벌일 수 있는 지능 범죄이기 때문에 고학력자와 엘리트가 연루되는 경우도 상당수다. 상장폐지 기로에 놓인 코스닥 상장사 '파티게임즈'와 '모다'를 무자본 M&A한 후 시세 조종으로 수백억 원 부당이익을 챙긴 혐의를 받는 일당에는 범 LG가(家)의 3세 구 모씨(52·수배중)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매일경제가 대검찰청으로부터 단독 입수한 이 사건 공소장에 따르면 범죄 대상이 된 기업들을 실소유한 것으로 알려진 기업사냥꾼 일당은 회사 인수 자금을 차입하는 과정에서 주식을 담보로 제공한 사실 등을 공시하지 않고, 자금 조성 방식을 허위로 기재하는 등 방법으로 투자자들을 속여 140억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챙겼다.
회사 내부정보를 미리 알고 주식거래를 하는 '미공개정보 이용 주식거래'도 자본시장법 위반 범죄의 대표 사례다. 바이오 기업 신라젠 신 모 전무(48)는 면역항암제 '펙사벡' 임상 3상 실패 정보를 미리 알고 주식을 팔아 손실을 회피한 혐의로 지난달 18일 재판에 넘겨졌다. 김기석 제이에스티나 대표도 대규모 영업손실을 공시하기 전 보유 주식을 내다 팔아 손실을 회피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다음달 15일 결심을 앞두고 있다.
성희활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자본시장을 겨냥한 범죄가 고도화·지능화되는 만큼 증권범죄합동수사단과 같은 전문조직과 전문 수사 인력이 확보돼야 범죄를 예방하고 차단하는데 효과적일 것으로 보인다"고 조언했다.
[김유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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