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외인구단` 韓AI농업팀 세계 3强 비결은
입력 2020-06-14 06:01 
디지로그팀이 지난해 9월 개최된 제2회 세계농업AI대회 예선에서 총 5개 팀이 겨루는 본선 진출을 확정지은 뒤 최대근 파미너스 대표가 환호하고 있다. [사진 제공 = 디지로그팀]

지난주 한국 농업계에 쾌거가 있었다. 민승규 국립 한경대 석좌교수를 단장으로 하는 '디지로그팀'이 네덜란드에서 열린 '제2회 세계농업AI대회(Autonomous Greenhouse Challenge)'에서 3위를 차지한 것이다.
디지로그팀의 성과가 대단한 이유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우리나라는 선진 농업국과 비교해 AI농업의 불모지나 다름없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참가팀들 대부분이 글로벌 IT기업이거나 정부 산하기관인 반면 디지로그팀은 자발적으로 구성된 민간 팀이라는 사실이다. 민 교수는 AI와 농업분야 전문가를 수소문하며 찾아다닌 끝에 팀 구성을 완료했다. 대회 참여에 들어간 항공료와 숙박비, 식비 등 비용 일체도 팀원들이 갹출해 조달했다. 완전한 외인구단인 셈이다.
농업AI대회에 참가해야 겠다고 생각한 건 민 교수의 짜릿한 경험 때문이었다. 우연히 제1회 대회에 대한 소식을 접하고는 충격을 받은 것. 1회 대회는 3개월간 오이 재배 콘테스트였는데, 당시 우승팀이 네덜란드 오이 재배 명장보다 더 많은 수확을 거둔 것에 전율을 느꼈다고 했다. 1위 팀 주역인 데이비드 카친 씨의 말이 더 압권이었다. "AI는 사람이라면 하지 않았을 선택을 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 재배 방법들이 최선의 선택이 아닐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디지로그팀이 모여 제2회 세계농업AI대회의 본선 전략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 제공 = 디지로그팀]
제2회 대회가 6개월간 방울토마토를 재배하는 것으로 공고된 직후 민 교수는 참여 여부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국내 몇몇 농업 전문기관에 문의했지만 AI 전문가를 찾기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민 교수는 관련 전문가들을 알음알음 모으는 방식으로라도 팀을 구성하기로 마음을 바꿔 먹었다. 다행히 네덜란드 와게닝겐대학에서 방문연구원으로 있던 시절에 만난 서현권 연구원(와게닝겐대 박사)이 민 교수 제안에 뜻을 같이 했다. AI로봇 전문가인 서 박사는 디지로그팀의 팀장도 맡았다. 현재 동아대 교수인 그는 에이넷테크놀로지 대표를 겸하고 있다.
이후로는 민 교수와 서 박사가 함께 주변 사람들 추천을 받아가면서 계속 사람을 모았다. 전문가라고 소개를 받으면 무조건 찾아가 설득하는 식이었다. AI전략분야 전문가를 찾는 게 제일 힘들었다. 그렇게 해서 드림팀이 구성됐다. 팀 구성에만 2개월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모두가 각 분야의 실력자들이다.
제2회 세계농업AI대회에 참가한 디지로그팀이 본선에 진출한 뒤 온실 내에서 방울토마토 재배를 준비하고 있다. [사진 제공 = 디지로그팀]
디지로그팀 구성원들을 역할에 따라 구분하면 먼저 재배전략팀이 있다. 해커톤 방식의 예선이 끝나고 지난해 말부터 지난달 말까지 진행된 재배기간 중 작물의 상태를 매일 모니터링하고, 적절한 처방을 내리는 역할이다. 아이오크롭스의 조진형 대표와 이혜란 연구원, 파미너스의 최대근 대표, 서울대 박사과정에 재학중인 문태원 씨가 이 일을 맡았다.
인터페이스팀은 예선과 본선 초기에 데이터를 업로드하거나 작물을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한광희 이지팜 연구원과 이준표 스페이스워크연구원이 활약했다.
머신러닝팀도 있었다. 스페이스워크의 이경엽 이사, 하정은 연구원, 최하영 연구원을 비롯해 아이오크롭스의 서영웅 연구원과 벨기에 리에주공대 박사과정 꾀랄 알테스부쉬가 그들이다.
하드웨어기술팀은 아이오크롭스의 이민석, 심소희 연구원이 맡았다. 이밖에 김성언 팜에이트 차장과 정진욱 삼성전자 연구원(박사), 이재수 농촌진흥청 연구사 등이 지원팀 역할을 맡았다. 이들 대부분은 나이가 20대와 30대다.
디지로그팀이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 디지로그팀]
이들은 지난해 예선에 참가하기에 앞서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을 찾았다. 이 전 장관의 농업과 AI에 대한 식견을 잘 아는 민 교수가 젊은 사람들로 구성된 팀에 영감을 불어넣기 위해 특별히 부탁해 마련된 자리였다. 이 전 장관은 몸이 불편한 가운데서도 무려 3시간동안 AI농업의 중요성을 설파하며 팀을 격려했다. '디지털(AI)'과 '아날로그(농업)'를 합성한 '디지로그'라는 팀명도 이 때 이 전 장관이 지어준 것이다.
디지로그팀이 AI를 활용해 원격으로 재배한 방울토마토가 온실 내에서 빽빽히 자라고 있다. [사진 제공 = 디지로그팀]
아이러니하게도 디지로그팀 내에는 토마토를 제대로 재배해본 경험을 갖춘 인력이 없었다고 한다. 다른 경쟁 팀들이 토마토 재배 전문가를 여럿 두고 있는 것과 큰 차이였다. 그나마 최대근 대표가 LED조명을 활용한 토마토 재배 연구를 할 때 잠시 들여다 본 적이 있었고, 조진형 대표가 KIST 연구실과 국내 농장에서 잠깐 재배한 경험이 있는 게 전부였다.
그러다보니 6개월간의 본선 재배기간 중 말못할 사연이 많았다고 한다. 최대근 대표는 "토마토를 처음 심고 나서는 하루 6시간 이상 PC 앞에 앉아 작물 모니터링을 할수 밖에 없었다"며 "새벽에 자다 깨서 온실 내 온도를 조절하기도 했던 기억이 많다"고 말했다.
우여곡절도 있었다. 본선 초기 추최 측에서 갑자기 디지로그팀의 온실에 설치된 전자장비의 전기코드를 뽑아버렸다고 연락해온 것이다. 깜짝놀라 알아보니 한국팀이 규정보다 많은 전력을 사용하고 있어 그랬다는 답이 왔다. 알고보니 현지 관리자가 디지로그팀의 전력사용 수치를 잘못 본 게 화근이었다. 팀장이었던 서 박사는 당시 격앙돼 민 교수에게 "이럴 바엔 전부 철수시키자"고 펄쩍펄쩍 뛰었을 정도다. 결국 한국팀의 확인 요청에 주최 측에서 실수를 인정해 원상 복귀되긴 했지만 아찔한 순간이었다. 비가 와서 온실에 물이 찬 적도 있었다.
외인구단이라 생기는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 다양한 분야에 일면식도 없던 팀원들이 모이다보니 의견들이 각양각색이어서 어떤 의사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웠다는 것이다. 각자가 개인적으로 시도해보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자기 주장만을 고집할 수는 없었다. 서현권 팀장은 "본선 후반부에 들어선 뒤에는 소통이 잘 되면서 서로 배려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고 말했다.
디지로그팀이 온실 내에서 AI를 활용해 원격으로 재배한 방울토마토가 열리기 시작한 모습이다. [사진 제공 = 디지로그팀]
이번 대회의 최대 성과는 사실 순위가 아니라 모두가 농업의 소중함을 다시 깨달은 것이었다. 한 팀원은 "네덜란드 농가에서 항상 말하는 '그린 핑거(green finger)'라는 단어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끼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린 핑거는 농부의 손은 식물을 많이 만져 항상 초록색이라는 뜻이다. 또 다른 팀원은 "앞으로도 농업을 생각하면 가슴이 뛰는 사람, 농업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털어놨다.
민 교수는 "모두가 각자 일이 있어 풀타임으로 시간을 낼 수 없었던 점이 아쉽지만 농업에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과감하게 시도를 했고, 결과도 훌륭했기에 팀원들 모두에게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정혁훈 농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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