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뿌리 찾는 입양인 첫 승소…법원서 '친부 딸' 인정받은 미숙 씨
입력 2020-06-12 10:14  | 수정 2020-06-19 11:05

"원고는 피고의 친생자임을 확인한다."

오늘(12일) 서울가정법원 가사1단독 백경현 판사가 주문을 읽자, 카라 보스(39살로 추정·한국명 강미숙) 씨는 잠시 환한 웃음을 짓더니 법정 방청석에서 일어나지 못한 채 한동안 흐느꼈습니다.

1983년 11월 충남 괴산의 한 주차장에서 발견된 강 씨는 이듬해 9월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미국으로 입양됐습니다.

그는 처음 발견됐을 때 자신의 이름이 강미숙이고, 나이는 두 살이라고 직접 말할 만큼 영리했다고 합니다.

네덜란드인과 결혼해 암스테르담에 거주하는 강 씨는 2살이 된 자신의 딸을 보고 친엄마를 찾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합니다.


그는 연합뉴스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어머니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결정을 내렸을지, 2살이던 나 자신에게도 얼마나 끔찍한 경험이었을지 마침내 이해하게 됐다"며 "엄마를 찾아 마음의 평화를 찾아주고, 나와 딸이 맺는 것과 같은 관계를 맺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고 회고했습니다.

입양인이 친부모를 찾는 일은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쉽지 않습니다. 강 씨 역시 3년 전 한국을 방문하기까지 했지만 찾지 못한 채 돌아가야 했습니다.

기적은 지난해 초 찾아왔습니다. 한국계 입양인들이 모여 DNA를 통해 친부모를 찾는 비영리단체 '325캄라(KAMRA)'라는 곳을 통해서입니다.

강 씨는 이곳에 자신의 DNA 정보를 공유해 뒀는데, 우연히 이곳에 자신의 DNA를 공유한 한 유학생이 자신과 사촌관계일 가능성이 크다는 결과를 확인했습니다.

이를 단서로 여러 사람의 호의와 협조를 얻어낸 끝에 강 씨는 자신이 A 씨의 혼외 자식일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하지만 A 씨의 가족에게 강 씨는 달갑지 않은 존재일 수 있습니다. 그들은 강 씨와의 접촉을 원치 않았다. 강 씨는 A 씨의 목소리조차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이에 강 씨는 지난해 말 친생자 인지 청구 소송을 냈습니다. 인지란 혼인외 출생자를 그의 생부나 생모가 자기 아이라고 인정하는 절차입니다.

소송 과정에서 이뤄진 유전자 검사는 강 씨와 A 씨가 99.9981%의 확률로 부녀관계로 볼 수 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그리고 이 결론을 근거로 재판부는 강 씨에게 승소 판결을 했습니다.


소송을 대리한 법무법인 이평 양정은 변호사 등에 따르면, 판결이 확정된 이후 강 씨가 인지 신고를 하면 A 씨의 가족관계등록부에 '피인지자'로 기록될 것으로 보입니다.

강 씨의 여정은 이날 판결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아버지로부터 자신의 친어머니가 누구인지 듣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입을 열 것인지는 A 씨의 선택에 달렸습니다.

다만 이제는 법적으로 '관계'가 인정된 만큼 A 씨에게 다가갈 자격을 얻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강 씨는 "소송을 내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라며 "하지만 내 뿌리에 대해 아버지와 대화를 나눌 자격을 얻으려면 이 방법밖에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시야를 강 씨와 같은 입양인들 전체로 넓히면, 이번 판결은 상당한 의미를 갖습니다.

해외 입양인이 국내의 친부모를 상대로 친생자 인지 청구 소송을 내 승소한 것은 강 씨가 처음이기 때문입니다.

사단법인 '뿌리의 집' 김도현 목사는 "이번 판결은 입양인의 '정체성의 권리'에 대한 인정이라고 해석될 수 있다"며 "이 권리를 위해 입양인들이 개인정보보호법의 성역에 발을 들여놓을 권리가 앞당겨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혼외자를 입양 보내 '보이지 않는 존재'로 만들고는, 개인정보 보호 등의 이유로 책임이 있는 친생 가족의 외면할 권리만을 보장하는 한국 사회의 시스템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강 씨 역시 "어째서 입양인들은 기본권이 돼야 할 '정체성과 뿌리'를 찾기 위해 이렇게 힘들게 싸워야 하느냐"며 "이번 소송을 계기로 한국 정부가 정체성의 권리를 인정하고 '아동 수출국'이란 오명을 벗길 바란다"고 강조했습니다.


대리인을 통한 조율 끝에 강 씨는 오는 15일 아버지와 첫 만남을 가질 수 있게 됐습니다.

A 씨가 마음과 입을 열어준다면, 헤어진 지 37년 만에 마침내 어머니를 찾게 될지도 모릅니다.

강씨는 말했습니다. "만약 어머니를 만난다면 미안해할 필요 없다고, 나는 괜찮다고 말해 주고 싶어요. 나는 행복한 삶을 살았고 아름다운 아이도 얻었다고요. 그리고 어머니가 원한다면 이제 어머니를 내 삶의 일부로 초대해, 인생의 새 막을 열고 싶다고 말할 거에요. 한 가족으로서, 사랑이 가득한 새 삶을 말이죠."

[MBN 온라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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