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핫이슈] 기본소득 대안이 될 `마이너스 소득세` 혹은 `안심소득`
입력 2020-06-12 09:31  | 수정 2020-06-19 09:37

밀턴 프리드먼은 통화주의 학파 창시자, 시카고 학파의 영수이면서 신자유주의의 사상적 '보스'로 자리매김한 경제학자다. 케인즈의 대척점에 서 있고 자유시장 진영을 대표하기 때문에 글로벌 좌파들이 별로 안좋아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로 신자유주의가 꺾이면서 프리드먼 학파는 '야당'이 됐다. 그런데 요사이 한국에서 프리드먼이 다시 회자되기 시작했다. 기본소득 논쟁 덕분이다.
지금은 좌파쪽에서 주로 거론하는 기본소득의 기원은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고대 로마까지 소급되는 경우도 있다) 현대로 국한하면 다분히 우파적 논의에서 시작됐다. 중구난방이고 효율성이라고는 없고 눈먼 돈이 되기 십상인 선별적 복지제도를 좀 심플하게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사회적 비용은 늘리지 않으면서 안전망은 강화하는게 기본소득의 본래 취지다. 프리드먼은 현대 우파 기본소득 논의의 발안자중 한명이다.
프리드먼이 주장한 것은 엄밀하게 말하면 '기본소득'은 아니다. 기본소득은 소득에 상관없이 모든 국민에게 주는 것이다. 그가 저서 '자본주의와 자유' '선택할 자유' 등에서 제안한 것은 '네거티브 소득세'다. ‘부(負)의 소득세'로 주로 번역하는데 비(非)한자 세대에게는 직관적으로 와 닿지 않을 것이다. 이걸 '마이너스 소득세'로 부르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표현이 마음에 든다. 그런데 한국에서 이것을 주장하는 사람들(미래통합당 소속 오세훈 전 의원 같은 분들이 대표적이다)은 요사이 '안심소득'이라는 표현을 주로 쓰는 듯하다. 이것도 괜찮은 작명인것 같다.
마이너스 소득세는 기본소득처럼 모든 이에게 혜택이 주어지지도 않고 미리 통장에 꽂아주는 '선불제' 개념도 아니다. 소득 기준을 정한뒤 이 기준에 못 미치는 소득을 올린 가구에 대해서는 차액 만큼을 나중에 현금으로 채워주는 제도다. 예를 들어 3인 가구의 기초공제 기준을 2500만원으로 정했다고 가정해 보자. 어느 가구의 소득이 1000만원이면 1500만원을 메워준다? 당연히 그렇지는 않다. 그러면 누가 1000만원을 벌려고 일을 하겠나. 그냥 놀아도 2500만원 받을수 있는데···
프리드먼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 '보조금 교부율'이란 개념을 가져왔다. 교부율이 50%라고 치자. 소득이 한푼도 없는 3인 가구라면 2500만원의 50%인 1250만원을 현금으로 보조받는다(참고로 올해 3인 기초수급 가구에 지급되는 생계급여가 1400만원 정도 된다). 소득이 1000만원이라면? 공제기준 2500만원에서 실제 소득 1000만원을 빼면 1500만원이다. 1500만원의 50%인 750만원을 보조받게 된다. 이 가구의 연 수입은 본인이 번 1000만원과 보조금 750만원을 합쳐 1750만원이 될 것이다. 아무 일을 안할때보다 수입이 500만원 더 많다. 소득이 2500만원에 근접할수록 보조금은 줄어들지만 어떤 경우에도 일을 해서 소득을 올리는 것이 아무 일을 안하고 보조만 받는 것보다는 수입이 많다.

마이너스 소득세의 장점은 첫째 저소득층의 근로동기를 크게 저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행 기초수급 시스템에서는 일정소득을 넘어서면 수급 자격을 상실하기 때문에 차라리 일을 안하고 만다. 어떤 제도하에서도 일하기 싫은 사람은 존재하기 마련이지만 마이너스 소득세가 훨씬 근로의욕을 자극하는 것은 분명하다. 둘째 거대한 복지 관료기구를 불필요하게 만든다. 마이너스 소득세는 현행 소득세 시스템만으로 가능하다. 수급자 선정과 관리, 유지에 드는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다. 이상은 마이너스 소득세뿐 아니라 보통 기본소득이 갖는 일반적 장점이기도 하다. 마이너스 소득세의 진짜 장점은 따로 있다.
일반적인 기본소득은 '보편성'이 장점이자 맹점이다. 전 국민에게 지급하면 심플하기는 한데 삼성그룹 회장과 실업자에게도 똑같은 돈을 지급하는 문제가 생긴다. n분의 1로 주다보면 월 10만원 수준의 별 의미 없는 '용돈'이 되고 만다. 지급액을 유의미하게 늘리려면 어마어마한 세금 폭탄을 떠안아야 한다. 마이너스 소득세는 일정기준 이하 소득자에게 혜택이 집중된다. 기준을 넘어서면 세금은 플러스로 전환해 소득이 높을수록 많은 세금을 낸다. 사회형평성과 복지 효율성이 기본소득보다 탁월하다. 아니 내가 먹고 살만큼 벌때는 보조 안받아도 상관없는거 아닌가. 그러다 어느해 직장을 잃어 수입이 끊겼을때 국가에서 지금 생계급여 수준의 보조금이 나온다면 실업에 대한 공포가 줄어들지 않겠나. 기준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마이너스 소득세는 기본소득만큼 재정적으로 큰 무리가 올 가능성도 낮다. 지속가능성이 높다.
마이너스 소득세하에서는 최저임금의 필요성도 거의 사라진다. 어차피 기준선 이하 소득에 대해서는 보조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훨씬 많은 일자리가 생겨날 것이고 사업하기도 편해질 것이다. 몇푼 더 많은 임금을 위해 가혹한 노동조건을 감수해야 하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프리드먼은 마이너스 소득세 도입의 전제로 연금제도를 포함한 모든 사회보장을 해체하자고 주장했다. 단 이미 낸 보험료에 대해선 유족연금 청구권을 비롯해 기득권을 최대한 보장한다는 전제하에서. 나는 앞으로 30년안에 닥칠 국민연금 적립금 고갈에 선제적으로 대비할 수단이 있다면 '마이너스 소득세'가 가장 유력하다고 생각한다.
바야흐로 기본소득 논의가 뜨겁다. 논의가 제대로 되려면 대중의 욕구만 따라가서는 안된다.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나라를 개선하고 미래에 대비하는 그런 논의라야 한다.
[노원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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