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삼광글라스·에스디생명공학…곳곳서 `합병비율` 주주갈등
입력 2020-06-11 17:48  | 수정 2020-06-13 21:42
◆ 레이더 M ◆
대주주와 소액주주 간 합병 비율을 둘러싼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대주주는 지배구조 개편이나 경영권 승계 차원에서 계열사 간 합병을 추진하는데 이 과정에서 소액주주들은 '불합리한 합병 비율' 산정으로 자신들의 이익이 침해됐다고 맞서는 것이다. 특히 코로나19로 주가가 떨어진 상황에서 합병을 추진한 경우 기준시가 결정에서부터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11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합병이 이뤄진 에스디생명공학 합병은 법정 소송전으로 확전됐다. 에스디생명공학이 자회사인 알파비앤에이치를 흡수합병했는데 합병 비율을 1대0으로 산정했기 때문이다. 양사 간 합병이 이뤄진 것은 지난해 8월로, 소액주주들의 100% 동의 없이 피합병회사의 지분 가치를 0으로 평가해 합병한 것은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알파비앤에이치의 소액주주들은 하루아침에 지분이 휴지 조각이 되자 올해 초 합병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합병 비율 산정은 기본적으로 IFRS 회계 기준에 따르면 되지만 해석의 영역이 넓어 분쟁 가능성이 상존한다. 에스디생명공학의 경우에도 적법한 절차에 따라 합병비율이 산정됐다는 입장이다. 외부평가기관이 상법상 정해진 기준에 따라 알파비앤에이치의 합병가액을 평가했는데 그 값이 마이너스가 나왔다는 것이다. 상장기업 간 합병비율은 주가 수준을 토대로 산정하는 반면 주식 거래가 원활하지 않은 비상장회사의 경우 순자산과 과거 실적 등을 토대로 합병비율이 산정된다. 반면 소액주주들은 알파비앤에이치와 같은 기술 기반의 회사는 영업손실이 있더라도 기업가치가 마이너스로 떨어지는 것이 아닌데 합병비율이 대주주에게 유리하게 일방적으로 산정됐다는 입장이다.
합병 비율 산정 기준에 대한 논란은 삼광글라스가 계열사인 이테크건설과 군장에너지를 합병하는 과정에서도 불거졌다. 지난 5월초 삼광글라스 측은 삼광글라스와 이테크건설, 군장에너지의 합병 비율을 1대3.88대2.54로 결정했다. 이에 삼광글라스 소액주주 일부는 삼광글라스가 코로나19로 인해 주가가 급락한 상황에서 기준시가(2만6400원)를 기준으로 합병 비율을 산정했고, 이테크건설과 군장에너지는 외부 평가기관의 가치평가를 기준으로 합병가액을 산출해 삼광글라스 기업 가치만 저평가됐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최대주주인 이복영 삼광글라스 회장이 2세 승계를 위해 삼광글라스에 불리한 합병 비율을 산정했다며 합병 비율 조정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금융감독원에 제출하기도 했다. 그러자 삼광글라스 측이 투자 부문의 기준시가를 2만9000원으로 약 10% 높여 합병가액을 1대3.22대2.14로 재산정해 발표했다.

합병 요건과 절차도 법에 정해져 있지만 얼마든지 우회할 수 있어 분쟁의 소지가 있다. 법인 간 합병은 상법상 주주총회 특별결의 사안으로 주총에 출석한 주주 의결권 3분의 2 이상, 발행 주식 총수의 3분의 1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통과된다. 그러나 에스디생명공학은 우선 알파비앤에이치의 소액주주를 설득해 51%의 지분을 획득해서 경영권을 장악한 뒤, 주주 배정 방식의 액면가 유상증자를 통해 90% 이상의 지분을 취득했다. 에스디생명공학은 이를 통해 간이합병 요건을 충족시키면서 합병과정에서 피합병기업인 알파비앤에이치의 주주총회를 건너뛸 수 있게 됐다. 간이합병은 존속회사가 소멸회사의 90% 이상 지분을 보유할 경우 소멸회사의 주총 결의를 이사회 결의로 대체할 수 있는 제도다. 이는 경영상 효율성을 이유로 존재하는 제도로 합병 결의 직후 소액주주들이 제기한 가처분 신청에서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도출된 배경이 됐다.
알파비앤에이치는 크릴오일 관련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건강식품 제조 회사로 2016년 설립 당시 주주들은 주당 20410원에 투자했다. 에스디생명공학은 2017년 5월 지분 51%를 주당 31587원에 인수했다. 그러나 에스디생명공학은 2018년 4월 소액주주들의 적극적인 반대와 이사회 일부 반대에도 액면가(5000원)로 60억 원의 대규모 유상증자를 추진해 지분율 51%에서 90.6%로 높여 간이합병 요건을 충족시켰다.
소액주주들은 "이 같은 합병 방식을 허용하게 될 경우엔, 향후 자본력 있는 회사 또는 개인은 누구든지 51%의 지분만 확보하게 되면 액면가 유상증자 방식을 통해 비교적 적은 금액으로 지분력을 키운 뒤에 소액주주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지분을 0원에 가져갈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고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소액주주들이 제기한 합병무효 소송은 다음달 2차 변론기일을 앞두고 있다.
"주가 의존하는 합병가치, 분쟁 야기하는 원인"
합병비율 산정 제도개선 논의…독립적 감독기관 창설 주장도
상장법인 간 합병 시 합병비율은 최근 한 달 간의 주가를 가중평균한 값을 토대로 하도록 자본시장법 시행령으로 정하고 있다. 대주주가 지배력 강화에 유리한 합병 비율을 만들기 위해 시세 조종 등의 잘못을 저지른 유인이 제도 자체에 포함돼 있는 것이다. 합병 비율과 절차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면서 이와 같은 현행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논의가 한창이다. 최근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과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합병 비율 산정제도의 문제점 및 개선 방향'을 주제로 공동 세미나를 개최하기도 했다. 11일 김 의원은 "더 진전된 논의를 거쳐 합의점이 찾아지면 법안 개정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상장법인 간 합병은 합병 가치 평가 시 주가를 유일한 기준으로 하는 것이 합리적인지에 대한 문제가 우선 제기된다. 시세 조종의 유인이 있을 뿐 아니라 주가가 대주주에게 유리하고 소액주주에게 불리할 때 합병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송옥렬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합병 가치 산정 시 주식의 시가 외 다른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또 상법상 합병은 주주총회 특별결의를 통해 결정하도록 돼 있지만 이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우회로도 얼마든지 있다.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당시에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불리한 합병안에 찬성표를 던지면서 논란을 샀다. 손창완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계열회사 간 합병 시 전체적 공정성 기준을 위해 소액주주의 과반수찬성제도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형균 디앤에이치투자자문 본부장은 "자본시장법 시행령을 개정하고 독립적 감독기구를 창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별다른 문제의식을 보이지 않고 있다. 제도상의 문제라기보다는 운영상의 문제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김기철 기자 / 문가영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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