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낮은 보험약가 규제에 국내 신약 허가 자진취하
입력 2020-06-11 14:23 

국내 제약사 동아에스티가 글로벌 신약을 목표로 개발한 슈퍼박테리아 항생제 '시벡스트로'가 낮은 약가 탓에 허가 5년만에 국내 시장에 출시 한번 되지 못하고 사라진다. 정부의 낮은 보험약가 제시로 급여화 협상이 지지부진하자 국내 출시를 미뤄왔던 제약사 측이 해당 약품에 대한 품목허가를 자진 취하한 것이다.
11일 동아에스티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동아에스티는 시벡스트로 주사제와 알약 형태 정제 등 제품 2종에 대한 품목허가를 지난 9일자로 취하했다. 시벡스트로는 지난 2015년 국산 신약으로 인정받아 품목허가된 제품으로 기존 항생제에 내성을 보이는 슈퍼박테리아를 없애는 항생제다. 황생포도상구균을 포함해 각종 그람 양성균에 의한 급성 세균성 피부질환 치료 등에 쓰인다.
동아에스티는 지난 2004년부터 시벡스트로 개발을 시작해 2006년 전임상시험을 완료한 다음 2007년 미국 트리어스 테라퓨틱스(현 머크)에 해당 기술을 이전했고 2014년엔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신약 허가를 받기도 했다. 이례적으로 국내보다 미국과 유럽 등 해외에서 제품 허가를 먼저 받은 뒤 2015년 4월 국내 식약처를 통해 알약 시벡스트로정이 국산 24호, 주사제 시벡스트로주가 국산 25호 신약으로 각각 허가받았다. 현재까지 국산 신약은 총 30개로 지난 2018년 CJ헬스케어(현 HK이노엔)의 위·식도 역류질환 치료제 '케이캡'이 30호 신약으로 허가받은 게 마지막이다.
시벡스트로는 2015년 허가 직후 보험급여를 통해 시장 출시를 노렸지만 낮은 보험약가를 제시한 정부 측과 협상에서 마찰을 거듭하며 5년 넘게 시장에 출시되지 못했다. 정부가 과도하게 낮은 약가를 제시하면서 원가 대비 수익성이 낮은 제약사 입장에선 국내에 제품을 출시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비록 지난 2016년 초 시벡스트로는 보험급여를 받았지만 해당 보험약가 수준에 만족하지 못한 제약사 측이 급여 등재 후 2년이 지나도록 출시를 미루면서 규정에 따라 지난 2018년 보험급여가 삭제된 바 있다. 이 때문에 시벡스트로는 국산 신약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만 슈퍼박테리아 치료제로 사용돼 왔다.

이번에 동아에스티가 아예 품목허가까지 자진 취하한 건 식약처 규정에 따라 허가 후 6년 안에 3000건에 달하는 '시판 후 마케팅 조사'(PMS) 자료를 제출해야 하는데, 제출 기한인 내년 6월까지 이 조건을 채우기가 어렵다고 제약사 스스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PMS는 제품 시판 후 소비자들이 복용하는 과정에서 다른 부작용 등은 없는지 추적검사하는 것이지만 시벡스트로는 시장에 출시되지 않아 PMS 보고서를 단 1건도 제출하지 못했다. 품목허가 취하는 정해진 수순이었던 셈이다. 동아에스티 관계자는 "현재 미국 머크사가 현지에서 판매하고 있는 시벡스트로와 비교해 국내 약가는 3분의 1 수준으로 책정돼 매우 낮은 편이었다"며 "적응증도 확대되지 못하는 등 여러 제약이 많아 국내에 제품을 출시할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시벡스트로의 국내 품목허가는 추후 재신청이 가능하지만 제약사 측은 이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 회사 측은 "품목허가를 우리 스스로 취하했기 때문에 당장은 재신청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며 "후속 추진 계획도 아직 마련된 게 없다"고 전했다.
[서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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