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中기업엔 `뉴욕 증시 그림의 떡`…폼페이오 "HSBC, 中에 굽신거려"
입력 2020-06-10 17:35  | 수정 2020-06-11 18:08

'글로벌 금융시장의 심장부' 미국 뉴욕 증시가 사상 최고 성적을 돌파하는 등 거침없는 상승세를 자랑하면서 기업들의 상장 신청이 몰리고 있지만 중국 기업 만큼은 상장을 미루거나 계획을 재검토 하며 뒷걸음 치고 있다는 소식이 나오고 있다. '중국몽'(中國夢·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내건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뿐 아니라 '아메리칸 드림'도 원하던 중국 기업의 뉴욕 증시 발걸음이 이른바 '홍콩보안법' 사태를 계기로 눈에 띄게 시들해지는 모양새다. 홍콩보안법 사태 속 미·중 갈등 한 가운데 선 홍콩에 대해 월스트리트 증권가에서는 '홍콩 달러 붕괴'에 베팅하는 투자자도 등장했다.
9일(현지시간) 글로벌 증시 데이터분석업체인 딜로직데이터에 따르면 올해 뉴욕 증시 중국 기업들의 기업 공모(IPO) 규모는 약 22억 달러로 30억 달러를 밑돌 것으로 보인다. 올해 들어 뉴욕 증시에 상장한 중국 기업의 IPO규모는 16억7000만 달러인데 앞으로 추가될 만한 금액은 5억 달러 정도다. 이는 지난해 중국 기업들 뉴욕 증시 IPO공모액인 35억 달러에 비하면 30% 줄어든 규모다.
중국 기업들은 기존에 계획한 뉴욕 증시 IPO일정 마저 속속 미루는 모양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에 본사를 둔 데처트 법률회사의 스테판 챈 파트너 변호사는 9일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요즘 부쩍 (중국 기업)고객들이 미국 내 IPO계획을 일단 보류하거나 미루고 있다"면서 "미·중 관계가 나빠지고 있는 것이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시장에서 어느 정도 성장해 자리가 잡힌 기업일 수록 IPO계획을 바꾸는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증시 상장을 위한 IPO자문사 선정을 시작으로 각종 법률 절차·작업을 하려면 몇 개월이 걸리기 때문이다.
IPO는 '증시 상장 첫 걸음'으로 통한다. IPO는 기업이 절차와 방법에 따라 자신의 재무 상황을 공개하고 공개적으로 자금을 모으기 위해(공모) 기준 가격을 산정(공모가 산정)한 후 증시 상장 일정에 따라 주식을 거래하는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데처트에 따르면 올해 뉴욕 증시 상장을 다루는 중국 메이저 회계업체 문의도 지난 해 대비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대신 대부분이 선전·상하이 등 중국 내 증시에 관심을 돌리는 분위기라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중국 기업들은 최근 글로벌 증시 IPO를 주도해왔다. 5년 새 중국 기업 IPO금액은 총 2790억 달러로 같은 기간 전세계 IPO의 3분의 2에 달하는 규모라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중국 기업 IPO금액의 절반이 홍콩·뉴욕 증시 상장 건이다. 다만 올해 들어 중국 기업의 뉴욕 증시 IPO움직임이 눈에 띄게 뜸해진 것은 중국발 코로나바이러스19(COVID-19)사태를 기점으로 깊어진 미·중 갈등이 홍콩보안법 대립으로도 번지는 등 양국 갈등선이 전방위로 뻗어나가면서 회계 부정·불투명성·중국 공산당 지도부 연계에 따른 경영 불확실성 등 이른바 '차이나 리스크'가 부각된 데 따른 결과다.
차이나 리스크를 분명히 보여준 가장 최근 사례는 '중국판 스타벅스'를 내건 커피 전문점 루이싱커피다. 지난 2017년 10월 베이징 창업을 시작으로 2019년 5월 나스닥 증권거래소에 상장한 루이싱커피는 창업 이후 가장 빠르게 뉴욕 증시에 데뷔한 중국 기업으로서 글로벌 투자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지난 4월 대규모 '매출 부풀리기' 회계 부정을 인정하면서 주가 대폭락 사태 속에 같은 달 9일 나스닥으로 거래 정지 통보를 받았고, 이어 5월 19일 나스닥으로부터 상장 폐지 통보를 받았다. 루이싱 측은 지난 12일 첸즈야 최고경영자(CEO) 사임 소식을 발표하면서 이어 19일 나스닥 측 통지에 반발해 청문회를 요청한 후 다음 날인 20일 부로 거래를 재개했지만 주가가 급등락을 반복하다가 9일 또 다시 10.81% 떨어진 4.29달러에 거래를 마감했다. 청문회는 통상 기업요청 후 30~45일 사이 열려 상장 폐지 여부를 결정한다.
올해 미·중 갈등이 격화된 이후에도 중국 클라우드 서비스 업체인 킹소프트가 지난 달 8일 나스닥에 상장했고, 이달 들어서는 7일 '중국판 마켓컬리' 다다넥서스가 나스닥에 상장했다. 이번 주에는 홍콩에 본사를 둔 모바일 데이터 거래 플랫폼 유클라우드링크와 중국 광저우에 본사를 둔 암진단 관련 업체 버닝록비이오테크 등이 나스닥에 상장한다.
미국은 단순히 중국 기업의 뉴욕 증시 상장을 제한하는 것에서 나아가 중국 편을 두는 글로벌 기업에 대해서도 공개 비판에 나설 정도로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 4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은 루이싱 커피 사태 등을 겨냥해 "미국 투자자들은 회계 부정을 일삼는 중국 기업에 주의해야한다"면서 "중국 기업을 겨냥한 나스닥의 상장규제 강화 조치가 전세계 거래소의 본보기가 돼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어 9일에는 HSBC 은행을 향해 "중국 공산당 지도부에게 굽신대는 창피한 기업(Corporate Kowtows)"이라면서 "매우 치욕적"이라고 비판했다. 9일 장관 비판은 앞서 3일 피터 웡 HSBC 홍콩·상하이 지역담당 CEO가 중국 관영매체 신화통신 인터뷰를 통해 "HSBC는 홍콩 보안법을 지지한다는 청원서에 서명했다"면서 "해당 법은 홍콩이 글로벌 금융 허브로서 지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하며 중국 지도부의 홍콩 보안법 강행을 찬성한다고 밝힌 데 따른 반응이다.
이런 가운데 월가에서는 중국 기업에 대한 '차이나 디스카운트'를 넘어 홍콩 달러화 붕괴에 베팅하는 움직임이 나온다. 미국이 중국 측 '홍콩보안법' 강행에 반발해 홍콩에 대한 무역·투자 등 특혜를 취소할 것임을 암시하면서 홍콩의 '아시아 금융 허브' 위상도 추락할 것이라는 예상에서다.
미국 해지펀드인 해이먼캐피털의 카일 바스 회장은 최근 홍콩 달러 붕괴에 거액을 베팅했다. 9일 블룸버그 통신은 바스 회장이 "전부 따거나 아니면 전부 잃는 방식(all-or-nothing wagers)으로 과감히 도전했으며 홍콩 달러 붕괴에 베팅하는 옵션 계약은 레버리지가 최대 200배에 달한다"고 익명의 관계자를 인용해 전했다. 바스 회장은 지난 2008년 모기지론 붕괴 사태에 따른 글로벌 금융위기를 미리 예상하고 전례없는 승부수를 띄워 거액을 번 헤지 펀드 투자자로 유명하다.
바스 회장은 구체적으로 얼마를 베팅했는지 밝히지 않았다. 18개월 내 홍콩달러화가 미국 달러 대비 극도의 약세를 보이면 바스 회장의 베팅이 성공해 이익이 200배에 달하게 되지만 실패하는 경우 회장의 베팅에 투자한 사람들은 자금 전부를 잃게 된다. 다만 해이먼캐피털이 관련 펀드를 출품한 지난 1일 당시 회사 설명에 따르면 홍콩달러화 가치가 40%떨어지는 경우 투자자들이 투자금의 64배 이익을 얻을 것으로 알려졌다.
바스 회장은 베팅은 금융 부문 '홍콩 엑소더스' 조짐이 일고 있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지난 8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5월 28일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홍콩보안법 초안을 통과시킨 후 홍콩 펀드매니저와 트레이더들이 '홍콩 이탈'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시아 금융 허브'인 홍콩은 규제가 적고 세금 부담이 낮아 아시아에서 헤지펀드들이 선호해왔다. 홍콩을 기반으로 한 420곳 이상 펀드 회사들이 총 910억 미국 달러(약 108조 9643억원)를 운용해, 업체 수 측면에서는 싱가포르에서 영업 중인 헤지펀드보다 80곳 이상 많고 운용 자산 측면에서는 싱가포르와 일본, 호주 펀드사를 모두 합친 것보다도 많다.
단순히 금융 업계 뿐 아니라 일반 홍콩 시민들도 해외 계좌를 마련해 돈빼기에 나서는 모양새다. 8일 로이터통신은 HSBC와 스탠더드차터드(SC), 시티은행 홍콩 지사 관계자들을 인용해 "홍콩 보안법 초안 통과 후 이들 은행에 해외 계좌를 개설하겠다며 상담을 요청해온 홍콩인들 문의가 25~30%늘어나는 식으로 자금 이탈 움직임이 눈에 띄고 있다"고 전했다.
[김인오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