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현실성없는 자금계획서 규제…실수요자만 `끙끙`
입력 2020-06-10 17:19  | 수정 2020-06-10 19:10
# 올해 결혼을 앞둔 직장인 김 모씨(35)는 서울 서대문구에 신혼집을 마련하기 위해 자금조달계획서를 작성하다 깊은 고민에 빠졌다. 김씨가 구입하려는 아파트는 매매가 5억원으로 주택담보대출 2억원(40%)을 포함해 보유 예금 2억원을 합쳐도 1억원이 부족하다. 김씨는 부족한 1억원을 신용대출로 받을 계획이었는데 주위에서 신용대출은 주택 구입 자금 용도로 활용할 수 없다고 해서 혼란에 빠진 상황이다.
최근 자금조달계획서 제도가 강화되면서 신용대출을 주택 구입에 활용해도 되는지가 확실치 않아 혼란에 빠진 실수요자가 늘어나고 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금융당국은 원칙상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초과하는 주택 구입 목적의 신용대출을 허용하지 않고 있으며, 향후 위반 사항이 적발되면 기존 주택담보대출까지 전액 회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국토교통부도 자금출처 조사 과정에서 신용대출 편법 활용을 면밀히 들여다볼 방침이어서 실수요자들은 자금조달계획서 작성 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10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LTV 규제가 계속 강화되면서 주택담보대출만으로는 내 집 마련이 어려워 신용대출이나 마이너스통장을 활용하려는 실수요자들에게 자금조달계획서 작성이 큰 난관이 되고 있다.
특히 자금이 부족한 20·30대 신혼부부의 경우 신용대출을 쓰지 않으면 집을 마련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 자금출처 조사에서 문제가 될까봐 고민이 많다. 현재 서울의 아파트 중위 가격은 9억원을 돌파했으며 투기지역 LTV 40%를 적용하면 5억4000만원의 보유 현금이 있어야 신혼집을 마련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대부분 젊은 실수요자들은 신용대출이나 부모의 지원, 회사에서 나오는 임직원 대출 등을 모두 받는 이른바 '영끌대출'로 주택 구입 자금을 마련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원칙상 LTV를 넘어서는 범위의 주택 구입용 신용대출은 허용이 안 된다는 방침이다. 만약 주택 구입 목적으로 신용대출을 받으면 LTV 한도에서 이를 차감하도록 돼 있다.
물론 이 같은 규정을 피해 실제 일선 창구에서는 '생활비 대출' 등을 명목으로 기존 법규를 우회한 편법 신용대출을 해주는 경우도 많다. 금융당국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주담대를 받기 수개월 전 미리 신용대출을 받거나 마이너스통장을 만든 뒤 추후 계약금이나 잔금으로 활용하는 식이다. 이 경우 주담대를 받는 은행과는 다른 은행이나 제2금융권에서 신용대출을 받기 때문에 금융당국이 이를 일일이 관리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올해 들어 국토부 특별사법경찰과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관계자 등으로 구성된 '부동산시장불법행위대응반'이 신설되면서 자금조달계획서에 기반한 사후 조사가 가능해졌다. 국토부는 향후 생활자금용으로 신용대출을 받아 주택 마련에 쓴 사례가 적발되면 금융당국에 이를 통보하고 시정 조치한다는 방침이다.
국토부 부동산시장불법행위대응반 담당자는 "그동안은 개인 신용대출에 대해선 가이드라인이 확실하지 않은 측면이 있었다"며 "앞으로는 편법 신용대출 문제도 금융당국과 협의해 더 면밀히 들여다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사회초년생이나 신혼부부가 부모에게 지원금을 받아 주택 구입 자금에 보탤 경우 자금조달계획서에 어떻게 적어야 할지도 애매한 부분이다. 먼저 증여로 처리할 경우엔 직계존비속 증여세 면제 한도인 5000만원 이상을 지원받으면 증여세 납부내역을 함께 제출해야 한다.

시장에선 집값이 20·30대가 주택담보대출만으로 마련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른 상황에서 신용대출까지 규제하는 것은 정부의 지나친 간섭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팀장은 "신용대출은 각 은행이 자율적으로 조절하는 형태로 취급하는 것이 맞는다"고 지적했다.
[정지성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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