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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현정의 직구리뷰]그저 웃다가 ‘사라진 시간’
입력 2020-06-10 09:41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현정 기자]
기묘하고도 강렬하다. 그럴듯한 외피에 입담도 수려하지만 알고 보면 빈 깡통이다. 끝없이 나오는 가득한 찬들에 배불리 먹은 것도 같다가도 보고나면 헛헛하니 속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미스터리의 옷을 입은 개성갑 블랙 코미디, 영화 ‘사라진 시간(감독 정진영)이다.
베테랑 배우 정진영의 감독 데뷔작인 '사라진 시간'은 의문의 화재사건을 수사하던 형사 형구(조진웅)가 자신이 믿었던 모든 것이 사라지는 충격적인 상황과 마주하면서 자신의 삶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를 그린다.
어느 날 밤, 한적한 시골마을, 외지인 부부가 의문의 화재 사고로 사망하고 해당 사건 수사를 담당하게 된 형구는 수상한 낌새를 눈치 채고 추적에 나선다. 그러던 중 하루아침에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뒤바뀌는 충격적인 상황에 놓이게 된다. 집도, 가족도, 직업도 모든 게 사라져 버린 것. 과연 그는 자신의 삶을 되찾을 수 있을까.
장르를 규정하기 어렵다”는 정 감독의 말처럼 영화 속에서 다양한 장르가 버무려져 있다. 파격적인 시도와 다양한 도전, 코미디와 휴머니즘 여기에 미스터리, 판타지까지 섞어 독특한 호흡을 보여준다.
그나마 확실하게 잡은 건 ‘웃음. 베테랑 연기자들의 찰진 연기력과 실험적 연출이 버무러져 다양한 종류의 웃음을 유발한다. 하지만 나머지는 요소들에는 적잖은 아쉬움을 남는다. 기대 이하의 완성도.
미스터리한 플롯은 흥미로운 소재로 전반부 기선 제압에 성공하지만 그 실체(?)가 드러날수록 헐거운 전개, 구멍이 숭숭 난 개연성 때문에 몰입이 안 된다. 애초에 수습을 안 하려고 했던 영화라고 하지만 난해하고 낯선 영화의 색깔에 적잖은 당혹감이 밀려온다.
영화는 개봉 전부터 ‘미스터리로 큰 주목을 받았지만(그 매력으로 낚았(?)지만) 사실상 그 부분엔 큰 기대를 걸지 않는 게 좋을 듯싶다. 어느 것이 진정 자신의 삶인지 혼란스러워 하는 형구를 통해 ‘나는 누구인가? ‘진정한 자아 ‘삶의 정체성이라는 근원적 물음을 던지지만, 그 질문의 답은, 미스터리의 진실은 이 영화를 즐기기 위해서는 크게 의미를 두지 말아야 한다. 그게 될지 모르겠지만.
무엇보다 비밀을 지닌 외지인 교사 부부 배수민과 차수연의 서사는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황당하다. 난해한 건 도전과 모험으로, 수습 불가한 건 관객의 몫으로, 그럼에도 묘한 마력도 있는, 처세술이 상당한 개성파 영화의 탄생이다. 깊고도 긴 망상의 늪, 감독은 애초에 헤어 나올 생각도, 손을 내밀 생각도 없이 자신 만의 세계에 오롯이 집중한다. 오는 18일 개봉.

kiki2022@mk.co.kr[ⓒ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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