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공-취업 `따로국밥` 강요하는 대학정원 규제
입력 2020-06-09 13:16 

우리나라의 대학졸업자 가운데 절반은 전공과 관계없는 직업을 갖게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진행한 조사에서 한국 대졸자의 전공·직업 간 미스매치 비율이 50%로 집계돼 영국, 이탈리아 등과 함께 OECD 국가 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공과 직업이 불일치한다는 것은 교육 과정에서 그만큼 사회적 비용이 낭비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기술적 진보, 사회적 변화로 직업의 세계 역시 빠르게 바뀌고 있는 상황에서 전공·직업 불일치 문제를 해결할 교육개혁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9일 한국개발연구원은 이같은 내용을 담은 '전공 선택의 관점에서 본 대졸 노동시장 미스매치와 개선방향'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최근 OECD가 국제성인역량조사를 통해 도출한 최종학력상 전공과 졸업 후 직업 간 미스매치 자료를 인용해 우리나라의 미스매치율이 50%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자료에 따르면 영국, 이탈리아 등과 함께 미스매치 최상위 그룹을 형성했다. 반면 핀란드, 노르웨이 등 북유럽권과 독일, 오스트리아 등지에선 미스매치 정도가 30% 안팎의 낮은 수준으로 집계됐다. 참여국가 전체 평균은 39.1%였다.
KDI는 미스매치의 주요 원인으로 우선 대학·전공에 대한 정원 규제를 들었다. 정원규제가 대학·전공 서열화와 맞물리면서 많은 학생들이 희망하지 않는 전공을 선택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특히 수도권 집중현상을 완화하기 위해 도입한 수도권 대학 정원 규제를 부분적으로라도 완화해야 한다고 KDI는 강조했다. 전체 정원이 대학의 희망보다 낮은 수준으로 고정되면서 학과간 정원 조정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KDI가 한국교육개발원 대학통계 자료를 기초로 4년제 대학의 전공별 경쟁률에 따른 입학 정원 조정 여부를 분석한 결과 비수도권 사립대학에선 경쟁률이 1 늘어날 때 입학정원이 0.26% 증가했지만, 수도권 사립대학에선 사실상 조정이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경직성이 대학 서열화와 맞물리면서 학생들이 자신이 선호하는 전공을 포기하고 상위권 대학의 다른 전공을 택하는 모습으로 이어진다고 KDI는 밝혔다. 한요셉 KDI 연구위원은 "전면적 해제는 지역균형발전 맥락에서 영향을 면밀히 검토해야 하지만, 적어도 부분 해제는 현재도 가능하다"며 "기존의 정원 규제 자체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KDI는 보건·교육 등 특수전공에 대한 정원 규제도 전공 선택의 쏠림 현상을 일으킨다고 지적했다. 의사, 교사 등 자격·면허가 필요한 직업군의 대학 정원이 고정되면서 이미 인기있는 이들 직업의 희소성이 더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밖에 노동시장에 관한 정보가 충분히 제공되지 못하고, 전공을 선택하는 시기가 획일적이라는 점도 문제의 원인으로 꼽혔다. KDI가 대학 신입생 1000명을 대상으로 전공 변경 희망 여부를 설무조사한 결과 자신의 전공을 바꾸고 싶다고 응답한 비중이 28.2%에 달했다. 같은 조사에서 일반고 학생들이 자신이 선택한 계열을 후회하는 비율도 전체의 20%를 넘는 21.2%로 집계됐다.
한 연구의원은 "현재 한 학교당 1인이 배정되는 진로전담교사는 학교당 학생 수에 따라 추가 배치하고, 진학·진로 상담시 취업률 외에 소득정보 등 보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전공 선택의 시기를 다양화하고 전공 선택·변경의 자유를 확대하는 등 유연성을 제고해야 한다"면서 "대학 자율성의 원칙에 따라 각 대학이 내부 논의를 통해 전공별 정원을 조정하고 학생들의 선택권을 높일 수 있도록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백상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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