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강간 상황극' 꾐에 넘어간 성폭행범…"피해자 반항 연기인 줄"
입력 2020-06-05 15:22  | 수정 2020-06-12 16:05

'강간 상황극' 거짓말에 속아 성폭행을 실행한 남성에게 무죄가 선고된 배경 중 하나로 '피해자의 반항을 피고인이 연기로 오해했다'는 점이 제시된 것으로 오늘(5일) 파악됐습니다.

우연한 사정들이 이례적으로 겹쳐 실제 성폭행 사건이 벌어졌다는 재판부 판단인데, 법조계 안팎에서는 다양한 평가가 나옵니다.

전날 대전지법 형사11부(김용찬 부장판사)는 강간 상황극을 유도한 남성에게 속아 애먼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39살 오모 씨에게 죄를 물을 수 없다는 선고를 내렸습니다.

랜덤채팅 앱 프로필을 여성으로 꾸미고 강간 상황극을 충동질하는 29살 이모 씨 속임수에 넘어가 일종의 '강간 도구'로만 이용됐을 뿐 실제 범죄를 저지를 뜻이 없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재판부가 제시한 무죄 판단 배경 중에는 '피해자 반항이 크지 않아 (오씨가) 연기로 착각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재판부는 "오씨가 (이씨가 일러준 주소의) 피해자 집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을 때 피해자가 지인인 줄 알고 문을 열어줬다"며 "거칠게 강압적으로 성폭행하는 과정에서 피해자가 연기한다고 오해할 정도로 반항이 심하지 않아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씨에게 받은 주소가 실제 존재했고, 찾아간 집에 사람이 있었던 데다 거주자가 방문자를 착각해 문을 열어줬으며, 그 거주자가 여성이었다는 등의 이례적이고 우연한 사정들이 결합해 발생한 결과라고 설명했습니다.


재판부는 "강간 상황극으로 오해한 피고인 입장에서 강간범 연기를 하는 것을 넘어서는, 예컨대 욕설이나 폭행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강간 범행 의도가 없고, 범죄인 줄 알면서 고의로 저지른 일도 아닌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오씨는 112에 신고하려는 피해자 전화를 빼앗기도 했는데, 경제적 이유로 이용·처분하려는 의사 없이 단지 신고를 막으려는 차원이었다는 취지가 인정돼 절도 혐의 역시 벗었습니다.

온라인에서는 이를 두고 이틀째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체로 "형법 법리상 실행남(오씨)도 교사범(이씨)에게 속은 것"이라는 동조 의견과 "피해자를 고려하지 못한, 시대에 뒤떨어지는 판결"이라는 반발 의견으로 나뉩니다.


법조계에서는 다소 신중한 입장입니다.

한 형사전문 41살 변호사는 "이례적인 사건인 건 사실"이라며 "공소사실을 뒷받침하는 검찰의 증거나 논리보다는 강간할 뜻이 없었다는 피고인 주장이 법리적으로 더 타당하다고 재판부가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50살 변호사는 "선고대로라면 피해자는 있지만, 직접 가해자는 없는 구도가 된 셈"이라며 "결과만 놓고 보면 국민 법 감정과 다소 멀게 느껴질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놨습니다.

검찰은 항소할 뜻을 밝히며 "사안의 성격이나 피해 중대성에 비춰볼 때 법원 판단이 타당한지 의문이 있다"는 입장을 전했습니다.

한편 오씨가 피해자를 성폭행하도록 유도한 이씨에게는 징역 13년이 선고됐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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