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9억 넘는 분양가에 대출 막혀…`그림의 떡` 청약
입력 2020-06-03 17:38  | 수정 2020-06-03 21:37
전 평형 9억원이 넘는 르엘신반포 파크애비뉴 투시도.
서울에서 20년째 전세살이 중인 주부 강 모씨는 '청약'으로 내 집 마련을 할 각오로 분양공고가 나올 때마다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그런데 올해 들어 서는 분양공고를 볼 때마다 실망감을 느끼고 있다. 서울에서 분양하는 아파트가 대부분 9억원이 넘기 때문이다. 분양가가 9억원 넘는 아파트는 중도금 집단대출이 제한된다. 분양가의 80%(계약금 20%와 중도금 60%)가량을 자납해야 하는데 5억~6억원을 현금으로 갖고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이달만 하더라도 서울 동작구 상도동 후분양 아파트 '상도역 롯데캐슬', 서초구 잠원동 '르엘 신반포 파크애비뉴' 두 곳이나 분양을 하지만 이들 아파트 모두 최소 평형(전용면적 49~59㎡)조차도 10억원이 넘어 청약할 엄두도 못 내고 있다. 후분양인 상도역 롯데캐슬은 당첨 후 4개월동안 계약금 10%, 중도금 10%를 내고 입주때 잔금 80%를 내는 구조이지만 그래도 전 평형이 9억원 넘는다. 강씨는 "서민 중 현금 5억~6억원을 들고 있는 무주택자가 얼마나 있겠느냐"면서 "정부가 밀어붙이는 청약규제는 서민들에게 약만 올리고 현금부자들에게만 기회를 주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서울에서 분양가 9억원 이상 아파트가 증가하면서 청약 실수요자들 사이에서 "9억원 넘는 아파트에 대한 대출 제한을 풀어 달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또한 중도금 대출이 가능한 9억원 미만 아파트 중에서도 신혼부부, 노부모 부양자 등 특별공급 물량이 늘면서 실수요자들이 지원하는 '일반 물량'은 더욱더 귀해지는 실정이다. 3일 한국감정원 청약홈에 따르면, 이달 서울에서 분양하는 아파트 두 곳 모두 전 평형이 분양가 9억원을 넘는다. 오는 8일 일반 청약을 받는 '르엘 신반포 파크애비뉴'는 일반분양으로 나온 98가구 중 전용 49㎡가 10억3000만원, 84㎡가 16억7500만원 등 모두 9억원을 넘는다. '상도역 롯데캐슬'도 최소평형 전용 59㎡가 9억7380만원으로 전 평형 9억원을 넘었다. 지난달 분양한 동작구 흑석동 '흑석리버파크자이'는 실수요자들 인기가 높은 전용 84㎡부터 10억원이 넘는 등 일반분양으로 나온 357가구 중 282가구가 9억원이 넘어 중도금 대출이 안 됐다.
지난해 7월부터 올해 6월(예정)까지 서울에서 분양한 아파트 가격을 분석한 결과, 일반 물량 총 7025가구 중 43%(3083가구)가 9억원을 넘는 아파트였다. 9억원 미만 아파트는 56%(3942가구)가량이었지만 이 중에서도 1633가구는 신혼부부, 노부모 부양자 등 특별공급 물량이어서 일반 실수요자가 대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아파트는 한 해 일반 물량의 32%에 불과했다.
서울 아파트 10곳 중 4곳은 중도금 대출을 받을 수 없다는 얘기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에서 분양된 아파트 중 9억원 넘는 비중은 23.4%에 불과했다. 1년 새 두 배 가까이 9억원 넘는 아파트가 증가한 것이다.
'대출이 안 되는 9억원'이라는 기준은 서민 실수요자들에게 청약을 포기하게 만드는 큰 '장벽'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통상 분양가는 계약금 20%, 중도금 60%, 잔금 20%로 구성된다. 9억원 미만 아파트의 경우 중도금 60%(약 5억4000만원)는 대출이 지원되기 때문에 계약금 20%(1억8000만원)만 마련하면 된다. 그러나 9억원 아파트의 계약금 20%와 중도금 60%를 모두 자비로 마련해야 한다. 9억원 넘는 아파트에 대한 중도금 대출 제한은 2016년 도입됐다. 당시 정부는 서울지역 전용 85㎡의 평균 분양가는 7억4200만원(중도금 4억4500만원)으로, 9억원 이상 아파트 대출 규제는 고가 주택만 타깃으로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9억원 넘는 아파트가 일부의 '고가 아파트'라고 하기에는 40%가량 비중이 올라간 만큼 대출 규제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선희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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