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투자귀재의 굴욕…버핏이 투자한 이탈리아 보험사, 금융 당국 경고받아
입력 2020-06-02 16:24  | 수정 2020-06-03 17:07
버크셔해세웨이는 최근 한 달 간 주가 회복세를 보이다가 카톨리카·옥시덴털페트롤리움 소식이 전해진 1일(현지시간) 1%가량 하락했다.[출처=구글]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중국발 코로나바이러스19(COVID-19)의 매서운 여파를 맞고 있다. 미국 항공·은행 부문 주가가 떨어지자 일부 손실을 감수하고 주식을 내다팔아 현금을 회수했지만 이번에는 에너지에 이어 보험 부문이 또다른 근심거리로 떠올랐다.
이탈리아 보험규제국(IVASS)은 지난 달 27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종합보험회사 소시에타 카톨리카 디 아시쿠라지오니에 대해 올해 가을 안으로 자본금을 5억 유로(약 6818억 8000만 원)만큼 추가 확충하라는 지시를 냈다고 1일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IVASS는 코로나19에 따른 피해로 사람들의 보험금 청구가 늘어날 수 밖에 없는 상황임에도 카톨리카 측의 보험금 지급 능력이 일반적인 기준에 못미친다고 보고 이같이 지시했다.
카톨리카는 버핏 회장이 이끄는 버크셔가 주요 주주다. 버크셔는 지난 2017년 10월 카톨리카 주식을 사들여 현재는 해당 기업 지분의 9%를 보유하고 있다. 다만 IVASS가 카톨리카 측에 자본 확충 경고를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1일 밀라노 증시에서 카톨리카 주식은 16.89% 폭락해 1주당 3.43유로에 거래를 마쳤다. 카톨리카는 이탈리아 내 보험사 7위에 드는 회사로 시가총액은 약 6억 9000만 유로다.
코로나19사태로 생명 보험사 등 보험업계 수익성이 낮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여태까지는 보험사의 보험금 지급 능력이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지 않은 상황에서 IVASS가 카톨리카 측에 자본 확충을 요구한 것은 예상보다 상황이 나쁘다는 점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는 게 글로벌 금융시장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카톨리카에 따라면 회사의 보험금 지불 여력 비율은 지난해 말 160%였다가 지난 5월 22일을 기준으로 122%로 대폭 떨어졌다. 회사는 IVASS가 권장한 보험금 지불 여력 비율이 구체적으로 얼마인지 밝히지 않았지만 IVASS가 권장하는 이상적인 비율은 160~180%라고 로이터통신이 1일 전했다.

카톨리카가 위기를 맞은 이유는 코로나19사태로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지면서 자금 사정이 안좋아진 탓이다. 특히 IVASS는 카톨리카가 신용등급이 낮은 BBB마이너스(-) 이하 혹은 등급도 제대로 매길 수 없는 저질 채권 노출 위험이 크다고 지적하면서 오는 7월 말까지 대책을 강구하라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카톨리카 측은 높은 연봉을 받는 임원진 급여를 일부 삭감할 계획이다.
다만 카톨리카만 버핏 회장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은 아니다. WSJ는 보험업계는 코로나19 사태로 환자와 사망자가 늘어난 탓에 전반적으로 수익이 악화될 수 밖에 없는 구조이며 회장이 이끄는 버크셔는 다른 보험업에도 투자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최근 미국에서 번진 인종차별 시위가 일부 폭력 양상을 보이면서 상점·차량 파손으로 이어져 이에 따른 보험사 부담도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현재 버크셔가 투자 중인 또다른 보험회사는 자동차 보험사 게이코와 오스트레일리아 보험 그룹이다. 또 버크셔는 '세계 최대 재보험사'로 꼽히는 미국 제네럴 리(젠 리)를 자회사로 두고 있다. 재보험사는 일반 보험사들의 보험사다.
최근 버핏 회장의 고민을 더 깊게 한 건 미국 석유회사 옥시덴털페트롤리움이다. 1일 옥시덴털 이사회는 '현금 유동성 확보'를 이유로 분기별 주주 배당금을 추가 삭감한다고 발표했다. 앞서 지난 3월 옥시덴털은 코로나19에 따른 석유제품 수요 감소와 국제 유가 하락을 이유로 주주 배당금을 86%대폭 깎아 주당 11센트를 지급하겠다고 했는데 이번 추가 삭감으로 주당 1센트만 배당금으로 지급될 계획이다. '주당 1센트' 배당금은 6월 15일 기준 주주들을 대상으로 오는 7월 15일에 지급된다.
이날 1일 뉴욕 증시에서 옥시덴털 주가는 6.64%오른 결과 1주당 13.81달러에 마감했다. 주주 배당금을 깎으면 자금 여건이 개선되는 효과가 있다는 투자자들의 계산에 따른 결과다.
다만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는 버핏 회장이 옥시덴털 주식을 처분할 지 여부에 관심을 두고 있다. 지난 4월 15일 버크셔는 석유·셰일업체 옥시덴탈페트롤리움으로부터 현금 배당을 받는 대신 2억 달러 규모 보통 주를 발행받기로 했는데 이는 당시 옥시덴탈이 버크셔에 지급해야할 1분기 우선주 배당금에서 10%낮춘 금액이고, 당시 옥시덴탈 주식은 연초 대비 68%폭락한 상태였다.
앞서 지난 달 2일 버크셔는 '분기 실적 보고서'를 통해 올해 1분기(1~3월) 회사가 497억 4600만 달러 (약 60조 8891억원) 순 손실을 냈다고 발표했다. 1839년 창업 이해 최대 적자다. 팬데믹 탓에 버크셔가 대거 투자한 금융·항공·에너지 분야 기업이 고전한 결과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버핏 회장이 이끄는 버크셔가 어떤 주식을 사고 파는 지 하나 하나가 관심사다. 버핏 회장은 성장성이 있다고 판단한 기업 주식을 까다롭게 선별해 사들인 후 좀처럼 팔지 않고 장기 보유하는 보수적인 투자방식, 즉 '가치 투자'로 유명하다. 또 주주총회를 통해 자신의 가치 철학을 공유하는 '오마하(버크셔 본사 소재지)의 현인'으로 불려왔다.
다만 회장의 장기 투자 선호 경향에도 불구하고 버크셔는 코로나팬데믹을 즈음해 보유 주식 대량 매도에 나섰다. 지난 달 11~12일 버크셔는 이틀에 걸쳐 US뱅코프 주식 49만 7786주를 매도했다. 버크셔는 '미국 최대 지역 은행'인 US뱅코프 주식 49만 7786주를 총1630만 달러(약 200억원) 정도에 팔았고, 남은 US뱅코프 보유 주식은 1억5050만 주다. 버크셔가 US뱅코프 주식을 매각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어 같은 달 16일에는 버크셔가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 보유지분을 대거 팔아치웠다는 외신 보도도 나왔다. 로이터통신은 "골드만삭스 주가는 1분기에 33% 떨어졌다"면서 "버크셔는 주가 하락세가 시작된 이후 지분매도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버크셔가 보유 중이던 골드만삭스 1200만주의 84%를 매각한 결과 3월 말 해당 기업 보유 주식은 190만주로 줄었다. 버크셔는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골드만삭스 지분을 매입하면서 주요 대주주로 올라섰는데 팬데믹을 즈음해 대량 매도한 셈이다.
버크셔는 올해 2~4월 델타항공 등 항공사 주식을 부분 매수·매도하다가 결국 전량 매도하기도 했다. 앞서 2일 코로나팬데믹 탓에 온라인으로 열린 버크셔 연례주주총회에서 회장은 회사가 보유한 미국 4대 주요 항공사(아메리칸·델타·사우스웨스트·유나이티드항공) 주식을 전량 매도했다고 밝혔고 이후 뉴욕 증시에서 해당 기업 주가가 급락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버핏의 시대가 저물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다만 버핏 회장은 언제든지 원하는 시점에서 대규모 투자를 할 현금을 손에 들고 있다.
올해 1분기 버크셔가 보유한 현금성 자산·단기 투자금은 1373억 달러로 직전 분기인 2019년 4분기(1280억 달러)보다 93억 달러 늘었다. 1년 전 같은 기간에 비하면 231억 3000만 달러 늘어난 액수다.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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