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회장님과 스포츠-1] 외갓집에서 LG 야구선수 대접한 회장님
입력 2020-05-30 08:01 
1990년 3월 구본무 럭키금성그룹(현 LG그룹) 부회장(가운데)과 LG트윈스 선수단이 LG트윈스 창단을 축하하며 건배를 하고 있다.

재계는 한국 스포츠산업이 성장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프로야구를 비롯해 축구, 농구, 배구 등이 성장한 배경엔 재계의 관심과 지원이 있었다. 특히 재계 오너들은 직접 구단주나 협회장을 맡으며 스포츠산업을 키우는 데 일조를 했다. 재계 글로벌화와 함께 한국 스포츠도 성장해 K-스포츠는 한국을 대표하는 상품 중 하나가 됐다. 미국 방송사가 한국 프로야구를 중계할 정도다.
매일경제는 경일대학교 스포츠단과 함께 재계와 스포츠간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준비했다. 첫회는 고(故) 구본무 전 LG그룹 회장과 야구다.
고 구본무 전 LG그룹 회장이 타계한지 2년이 흘렀다. 구본무 전 회장은 고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와 고 구자경 회장에 이어 1995년 LG그룹 3대 회장에 올라 23년간 LG호를 지휘했다. 그는 '정도경영'을 몸소 실천하며, LG그룹을 글로벌 기업 반열에 올려놨다. 전자·화학·통신 서비스 등 핵심 사업을 자리잡게하고, 국내 최초 지주사 체제 전환도 주도했다.
"부정한 방법으로 1등 할 거면 차라리 2등을 해라", "기업은 국민 신뢰 없이는 영속할 수 없다", "경영환경이 어렵다고 사람을 안 뽑거나 함부로 내보내서는 안 된다" 등 그가 남긴 말들은 평소 그의 소신이자, 신념이었다. 구 전 회장은 지금도 여전히 재계뿐 아니라 국민들로부터도 존경 받고 있다.

구본무 전 LG그룹 회장의 2주기를 맞아 경영인 뿐 아니라 야구인들도 구 전 회장을 추모했다. 그는 경영인이기도 했지만 야구광으로도 유명했다. 특히 올해는 구본무 전 회장이 애정을 쏟은 LG트윈스가 창단 30년을 맞은 해다. 그는 그룹 회장에 오르기 전인 1990년 LG트윈스 창단과 함께 구단주에 취임했다. 그때 나이 45세였다. 당시 프로야구 구단주 8명은 구본무 럭키금성 부회장을 비롯해 이건희 삼성 회장, 박건배 해태 회장, 서성환 태평양 회장, 김승연 한화 회장, 신준호 롯데 부회장, 박용곤 두산 회장, 이봉녕 쌍방울 회장 등이었다.
90년만해도 구단주들의 모임인 KBO총회엔 재계 총수들이 참석했다. 1년에 최소 1번 이상 재계 총수들이 참석하는 총회가 열렸으며, 이 자리에서 총수들이 직접 프로야구 발전을 논의했다. 미니 전경련인 셈이다.
1990년 LG트윈스의 한국시리즈 우승 축하연에서 구본무 당시 럭키금성그룹(현 LG그룹) 부회장(맨 오른쪽)과 백인천 감독(가운데)이 우승을 축하하고 있다.
1990년 MBC청룡을 인수한 LG트윈스는 창단 첫 해에 한국시리즈를 제패했다. MBC청룡 시절 우승은 커녕 한국시리즈에 한번 밖에 진출 못한 구단에 기적같은 일이 발생한 셈이다.
LG트윈스는 초대 MBC청룡 사령관인 백인천 감독을 재영입한 것을 제외하고는 선수단에 변화가 거의 없었다. 야구계에선 전력이 그다지 좋지 못한 상태라는 평가를 받았다. 게다가 시즌 초반엔 최하위에 쳐져 있었다. 하지만 구본무 회장은 구단주로써 물심양면 선수단을 지원했다. 그 결과 LG트윈스는 창단 첫해 우승이라는 기적을 만들었다. 창단하자마자 한국시리즈 우승을 한 것은 프로야구 출범 첫 해인 1982년 우승한 OB베어스(현 두산베어스)를 제외하고는 리그 역사상 전무한 기록이다.
특히 그해 LG트윈스의 한국시리즈 상대는 재계 라이벌인 삼성이었다. KBO리그 원년 멤버인 삼성라이온스는 삼성그룹의 막강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한 번도 차지하지 못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LG가 삼성을 한국시리즈에서 한 번의 패배도 허용하지 않고 우승한 것이다. 40대 구단주의 야구 사랑과 전폭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일이라는 게 재계와 스포츠계 평가다.
구본무 럭키금성그룹 부회장 겸 LG트윈스 구단주(가운데)가 1990년 LG트윈스 우승 기념 행사에서 케이크를 자르고 있다.
1990년 창단 우승 이후 LG트윈스는 해태타이거즈와 함께 한국프로야구 최고 인기 구단 중 하나가 됐다. 프로스포츠 서울연고 팀 최초 우승, 김재현과 유지현 등 젊고 잘생긴 스타 배출, 화끈하고 신바람 나는 플레이가 절묘하게 어울어져 서울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홈구장인 잠실야구장은 늘 관중들로 가득 찼다.
1994년 LG트윈스는 두 번째로 우승을 차지했다. 수많은 트윈스 팬들은 '무적 LG'를 외쳤고, 럭키금성그룹은 이듬해인 1995년 구본무 부회장의 회장 취임과 함께 그룹명을 LG로 바꾼다. 신임 구본무 회장의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대기업에서 CI와 사명을 바꾸는 것은 천문학적인 돈과 함께 그룹 미래가 걸린 중요한 의사결정이다. 국내 대기업들이 글로벌 진출에 발 맞춰 사명을 변경했는데, 가장 성공적인 사례 중 하나로 꼽히는 그룹이 LG다. 1994년 LG트윈스 우승과 구본무 회장의 야구단 사랑이 그룹 명칭 변경의 기폭제가 됐다는 주장도 있다. 물론 LG그룹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95년 럭키금성에서 LG로 그룹명칭이 바뀌기 전에도 LG 브랜드를 사용한 회사도 있었다. LG트윈스를 비롯해 광고회사 LG애드가 1984년 처음으로 LG 브랜드를 썼으며, 카드사 명칭도 LG였다.
재계에서는 그룹에서 가장 인지도 높은 조직 중 하나인 야구단의 우승, 신임 회장의 취임, 그리고 심플하고 세련된 영문CI가 최적의 타이밍에 절묘한 조화를 이뤄냈다고 평가하고 있다. 물론 최고의 조타수는 구본무였다.
1994년 LG트윈스 선수들이 두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축하하며 샴페인을 터트리고 있다.
구본무 전 LG그룹 회장만큼이나 야구단을 사랑하고 챙긴 대기업 오너은 꽤 있다. 그들 또한 충분히 평가받을 요소들이 많다. 그런데 구본무 전 회장의 야구 사랑엔 특별함이 존재했다. 바로 '인간미'다.
그가 전지훈련장을 찾아가 선수단을 격려하고, 매 시즌 전 선수단과 구단 프론트를 자신의 외가인 경남 진주 단목리에 불러 식사를 대접했다는 이른바 '단목행사' 등은 야구계에선 유명한 일화다. 또한 LG트윈스 구단 사무실 금고에서 잠자고 있는 아오모리 소주와 롤렉스 시계 등은 LG트윈스 선수들이 구 회장을 추억하는 단골 이야기거리다.
구본무 회장은 1995년 일본 오키나와 전지훈련장에 아오모리 소주를 사들고 찾아와 세번째 우승할 때 같이 마시자고 했으며, 1998년엔 LG트윈스 구단에 최고급 롤렉스 시계를 선물했다. 한국시리즈에서 세번째 우승하면 MVP선수에게 증정용하기 위한 선물이다. 그런데 LG는 1994년 이후 아직까지 우승 기록이 없다.
아울러 선수들은 구본무 회장의 챙김과 배려도 기억하고 있다. 구본무 회장을 만난 선수들은 구 회장을 만날 때마다 세심함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는 전지훈령장이든 단목행사든 선수들과 만날 때마다 1·2군 가릴 거 없이 선수 이름을 부르며, 집안대소사까지 물어봤다. 구본무 구단주와 함께했던 트윈스의 올드 멤버들이 유독 LG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이유다.
올해는 LG트윈스 창단 30년인 해다. LG트윈스의 마지막 우승은 구본무 구단주 시절인 1994년. 비록 25년간 우승을 하지 못했지만, LG는 여전히 가장 팬이 많은 구단 중 하나로 꼽힌다. 현재 성적은 NC다이노스에 이어 2등으로, 아직 시즌 초반이지만 정상 도전도 기대된다. 그리고 구단주의 야구에 대한 진심과 사랑은 대를 이어 여전히 진행 중이다. 고 구본무 전 회장(1990~2007년)에 이어 2대 구본준 전 LG 부회장(2008~2018년)을 거쳐 3대 구광모 LG 회장(2018년 6월~)이 LG트윈스 구단주를 맡고 있다. 또한 고 구본무 전 회장의 동생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은 KBO 총재를 맡기도 했다.
한편 LG트윈스는 지난달 창단 30주년을 기념해 30주년 기념 엠블럼과 캐치프레이즈를 발표했다. 30주년 엠블럼은 시비와 선악을 판단하는 정의로운 신수(神獸)이며, 나쁜 기운을 막아주고 행운과 기쁨을 가져다 주는 서울을 상징하는 수호자인 '해치'를 디자인 모티브로 사용했다. 새로운 캐치프레이즈 '무적 LG! 끝까지 TWINS!'다.
구본무 럭키금성그룹 부회장 겸 LG트윈스 구단주가 1990년 LG트윈스 우승 축하연에서 백인천 감독(오른쪽)과 함께 케이크의 불을 끄고 있다.
[정승환 재계·한상 전문기자/도움 정지규 경일대학교 스포츠학과 교수 겸 스포츠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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