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사병은 복무기간 줄어드는데…장점없는 ROTC 어이할꼬
입력 2020-05-30 06:01  | 수정 2020-06-06 06:37

28개월간의 군 복무를 마치고 지난해 6월 전역한 예비역 중위 최진호 씨(26·학군55기)는 거의 1년째 구직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ROTC를 하면서도 학원에 다니고, 아르바이트까지 하는 등 부지런히 살았지만 아직 안정적인 자리를 찾지 못해서다. 최 씨는 "다 같이 구직 활동에 목을 매는 것 같아 외롭지는 않다"라며 "이렇게 취업을 못 할 줄 알았으면 ROTC지원은 더 고민해볼 걸 그랬다"고 토로했다.
청년 구직자 수가 70만명을 넘어서는 등 취업난이 지속하는 가운데 사병 복무기간까지 18개월로 단축되면서 학군사관(ROTC) 후보생 지원자가 크게 줄었다.
복무기간이 사병보다 10개월이나 더 길지만 사회 진출에 유리한 점이 없고, 오히려 더 힘들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한 것으로 분석된다.
ROTC 5년간 지원자 1만여명 급감
ROTC는 'Reserve Officer's Training Corps'의 약자로, 대학생 중 지원자를 받아 졸업과 동시에 초급장교(소위)로 임관하는 제도다. 국내에는 지난 1961년 서울대와 고려대 등 16개 대학에 처음 창설됐다.

후보생을 이르는 공식 표현은 학군사관후보생이지만, 흔히 'ROTC' 또는 '학군단' 등으로 부른다. 단복을 입고 교정을 돌아다닌는 점이 한때는 매력으로 꼽혀 '캠퍼스의 로망'이라 부를때도 있었다.
ROTC를 통해 한 해 임관하는 장교는 약 4000여 명으로 전체 초급장교의 80%다. 이들이 최전방 소대장의 70%를 차지하고 있어 장교 양성 제도로 그 역할이 막중하다.
하지만 ROTC중앙회에 따르면 지난 2014년 기준 2만1595명이 지원해 3.7대1을 기록하던 경쟁률은 2019년 1만2500명이 지원해 2.5대1에 그쳤다. 5년간 약 42%가 감소한 셈이다. 지원자가 급감한 춘천교대 ROTC는 오는 2021년 아예 폐지될 수순이다.
지원자가 줄면 유능한 재원을 선발하기가 어려워진다. 아직 미달은 아니지만, 모집단이 적어진 만큼 선택권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소대원들의 목숨을 아무나 붙잡고 맡아달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회에서도, 군에서도 '진퇴양난'
지원자가 급감한 이유는 무엇보다 사병 복무기간이 단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군 복무기간 단축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 중 하나로, 지난 2018년부터 현재까지 ▲육군·해병대·의무경찰·상근예비역은 21개월에서 18개월 ▲해군·의무해양경찰·의무소방은 23개월에서 20개월 ▲공군은 24개월에서 21개월 등으로 단축된다.
반면 학군장교 복무기간은 여전히 28개월인 탓에 청년들로서는 ROTC 지원을 망설이게 된다. 사병으로 입대해도 최소 3~4학기는 휴학해야 하는데 장교가 되면 사회 진출이 1년이나 더 늦어져서다.
취업 전선에 뛰어들 때 다른 지원자보다 나이가 많은 점 또한 부담이다. '허송세월 보내지 않고 바쁘게 살아와' 한 살이라도 더 어린 지원자가 선발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한 학기 휴학도 부담스러울 청년들에게 군에서 1년을 더 보내라는 말은 구직난을 고려하면 참 못 할 말이다.
일각에서는 군 복무 전후로 자기 계발에 몰두하면 원하는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ROTC로 선발되면 대학 3학년부터 방학마다 충북 괴산군에 있는 '육군학생군사학교'에 가야 한다. 졸업 때까지 제식, 군인화 훈련, 장교 양성 교육 등을 받아야 임관할 수 있어서다.
학기 중에도 훈련에 참가해야 해서 학과 생활 외 경력을 쌓기도 어렵다. 대외활동·현장실습·인턴 등은 최소 3~6개월간 꾸준한 참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교환학생이나 어학연수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임관하고도 추가 교육을 받아야 하고, 또 실무에 적응하려다 보면 여유가 없다. 제 몫을 다 해도, 장교인 만큼 한 번씩 더 움직여야 해서다. 여유가 생겨 전역을 준비하려다 보면 대학 때 배운 전공은 기억나지 않고, 따놓은 자격증마저 유효기간이 만료되기 일쑤다. "열심히 산 것 같은데 증명할 방법이 없다"는 최 씨의 말에서도 이 같은 애로가 느껴진다.
장교로 군에 남겠다고 해도 그 또한 쉽지 않다. 장기 복무에 선발되지 않으면 복무 연장을 거듭하다 나이 제한에 걸려 30대에 옷을 벗어야 한다.
경력 많고 스펙 좋은 청년들도 일자리를 못 찾고 있는 때 예비역 대위·소령이 설 자리는 마땅치 않다. 이러나저러나 진퇴양난인 셈이다.
ROTC 전역자들 "취업 지원 더 신경 써줬으면"
매경닷컴과 만난 예비역들은 입을 모아 "나 자신을 생각했다면 ROTC에 지원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도 "군에서 취업 지원을 더 신경 써줬으면 한다"며 아쉬움을 보였다.
한 예비역 대위는 "나랏밥을 먹는데 책임감이 느껴져 열심히 일했다"며 "시간이 생기면 부대 일을 하나라도 더 했고, 장병들을 더 챙겼다. 제 할 일만 하는 장교는 지휘자로서 자질이 없는 것"이라 했다. 그러면서 "저희가 노력한 만큼 군에서 저희 전역 후를 지원해줬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다"고 덧붙였다.
다른 예비역 중위는 "전직 교육에 참석해도 문과 쪽 직종은 없고, 기술직이나 이공계열, 아니면 경호직이 대부분"이라며 "직업에 귀천은 없다지만, 양질의 직종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렇다고 각자가 준비할 수 있는 여건이 보장되지도 않았다"며 "건전지처럼 쓰이고 버려진 느낌이 든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예비역 중위는 "국방전직교육원 등에서 교육을 해주지만,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보다는 취업 커뮤니티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의견을 냈다. "취업은 개인의 일이고, 군 복무는 나라를 위한 것인 만큼 취업을 우선하지는 않았다"면서도 "그때로 돌아간다면 솔직히 안 할 것 같다"고 못 박았다.
한편 올해 ROTC(61·62기) 모집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예년보다 연기돼 진행 중이다.
지원서 접수는 오는 6월 5일에 마감되고, 필기·면접·신체검사와 신원조회를 거쳐 오는 12월 4일 최종 합격자가 발표될 전망이다.
자세한 내용은 육군학생군사학교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상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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