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오늘부터 달린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면역 운동`의 정석
입력 2020-05-21 11:36 
[사진 제공 = 남정형외과]

일상생활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았다. 얼마 전까지 확진자 수가 잦아드는가 싶더니, 사람들이 헤이해진 틈을 타 다시 조금씩 확산될 기미를 보인다. 인체에 기생해야 살아갈 수 있는 이 조그마한 RNA바이러스는 인간 삶의 형태를 송두리째 뒤엎어 놓은 뒤에야 종식될 모양이다.
사람이 많이 모여드는 밀폐된 공간은 아직까지 결코 안전하지 않다. 일상처럼 돌아가던 집과 스포츠센터를 다니던 사이클이 무너져 버리니 '확찐자'가 됐다는 소리도 들린다.
내 나이 또래의 부장급 지인 역시 평소 지병인 심장질환 때문에 체중 조절을 꾸준히 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심장병보다 코로나가 무서워 다니던 헬스장을 못 가고 있다고 한다. 점점 확찐자로 변하는 지인의 몸을 보면서 걱정도 되는 한편, 어째서 다른 운동으로 눈을 돌리지 못하는지 의문이 든다.
물론 마땅한 운동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도 이해가 간다. 사람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면서 단기간에 높은 운동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운동이 필요하다. 이 기준에 가장 부합하는 종목이 바로 '달리기'다.

달리기는 심장의 힘을 키워 전신에 혈액을 빠르게 순환시킨다. 폐를 통해 공기 중의 박테리아나 바이러스 감염을 제거한다. 공격하는 백혈구, 포식세포, 림프세포가 포함되어 있는 혈액을 적극적으로 순환시키면서 방어활동을 왕성하게 한다. 마치 국경수비대를 자주 이동시키면서 적을 방어할 수 있는 기회를 높이는 것이다.
순환이 활성화되니 땀이나 소변으로 유해물질 배설이 용이해진다. 꾸준한 달리기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하는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의 공격으로부터 우리의 몸을 굳건하게 지킬 수 있는 방어벽을 만들어준다.
오랜 시간 달리기를 해오면서 느낀 가장 큰 매력은 자기와의 대화 시간이 늘었다는 점이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일상에서 오롯히 나와 마주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외부 정보의 공급을 차단하고 땀을 흘리며 달리고 있다 보면, 세상의 겉옷이 벗겨지고 심연에 웅크리고 있던 순수한 자신을 만나게 된다. 하루 종일 쌓였던 나쁜 감정들, 해결되지 않는 답답한 현실들을 털어놓고 달리다 보면 어느새 문제가 해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달리기는 삶에 지친 우리 정신에 활력소를 불어넣어 주고, 잃어버린 자아를 찾아주는 소중한 시간이다.
달리기의 또 다른 커다란 장점은 '면역력' 강화에 탁월하다는 점이다. 달리기를 하면 근육과 피부, 장기 등에서 열이 생성돼 최고 42도까지 오른다. 탄수화물 일부 불안전연소로 인한 젖산이 축적되며 ph도 저하된다.
체온이 상승하고 몸이 산성화되면 체내에서 단백질 변성을 유발한다. 이때 우리 몸은 이를 막기 위해 열충격단백질(heat shock protein)을 발현시킨다. 열충격단백질은 단백질구조를 안정화시키며 변성을 막고, 피로물질을 만들어내 체력 회복을 돕기도 하고, 통증 완화 물질인 엔돌핀 생성을 촉진한다.
또 NK(면역)세포라는 림프구의 움직임을 활발히 만들어 항종양 기능을 갖는 체내 인터페론의 합성량을 증가시켜 체내 면역력을 극대화시킨다. 이러한 이유로 체온이 1도가 올라갔을 때 면역력이 5배까지 올라간다고 말하기도 한다.
참고로 열충격단백질(heat shock proteins·HSP)은 1960년대에 처음 발견돼 면역 및 항암 치료 등에서 계속 연구됐다.
몸의 정상세포는 열이나 자외선, 적외선, 저산소증, 감염, 염증 등의 다양한 스트레스 상황이 오면 단백질의 3차 구조가 공격당해 결합력이 떨어지고 생리적 기능이 깨지게 된다. 인체는 열충격단백질을 세포 안에서 스스로 발현시켜 이러한 단백질 분해를 막기 위해 노력한다.
적절한 거리와 시간에 맞게 꾸준히 달리기를 지속하면 심혈관과 폐기능이 좋아지고, 면역력이 강해지며, 관절과 척추가 건강해진다. 다이어트는 물론이거니와 항노화 효과도 높다.
이런 효과가 알려지면서 실제로 국내 러닝대회에 나가보면 여성 러너들 비중이 매우 높아졌음을 느낀다.
뿐만 아니라, 당뇨나 고지혈증 등의 만성 대사질환의 치료에 효과적인 방법으로 수명연장에 도움이 된다. 우울증이나 불안증의 치료에도 큰 효과가 있으며 기억력. 인지기능 향상을 가져온다.
달리기 하나로 워낙 몸과 정신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넓기 때문에 일일이 나열하는 것조차 어렵다.
달리기는 다른 운동처럼 특별한 장비가 필요 없고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되며, 여러 사람이 모여야 하는 것도 아니고 날씨에도 크게 영향 받지 않는다. 운동화 하나만 있으면 새벽에도 밤에도, 실내나 실외에서 달리고 싶으면 언제든 달릴 수 있다.
업무로 바쁠 때는 대중교통으로 출근했다가 두 다리로 뛰어 퇴근하던 시기도 있었다. 가쁜 숨을 토해내는 일이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는 나만의 방법이었다. 누구든 의지에 따라 쉽게 시작할 수 있고 생각보다 유지하기도 어렵지 않다.
러너들은 운동 삼아 뛰는 사람, 다이어트 목적으로 뛰는 사람, 건강이 안 좋아 뛰는 사람, 기분 좋기 위해 뛰는 사람, 고민이 많아 뛰는 사람, 목표가 생겨 뛰는 사람, 뛰는 게 삶이 되어 버린 사람 등 셀 수 없이 많은 이유로 달린다.
이미 러닝은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 있는 취미생활이다. 한때 반짝 뜨거웠다 식어버린 붐이 아니다. 뛰면 건강해진다. 그리고 행복해진다. 바로 그것이 우리가 또다시 도심을 질주하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지금부터라도 신발 끈을 질끈 묶고 한강변을 따라 힘차게 뛰어보는 것은 어떨까.
[사진 제공 = 남정형외과]
■ 남혁우(정형외과전문의, 의학박사, 스포츠의학 분과 전문의)
고려대학교 의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 및 전공의를 수료했다. 대한 스포츠의학회 분과전문의, 고려대 외래교수, 성균관의대 외래부교수 등을 역임하고 현재 남정형외과 원장이다.
아이스하키, 골프 등 운동 마니아였던 그는 목 디스크를 이겨내기 위해 달리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보란 듯이 목 디스크를 이겨냈다. 그 이후로 달리기에 빠져 지금은 철인 3종경기까지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남혁우 남정형외과 원장]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BN APP 다운로드